김영길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지난 4월8일 구속된 뒤 90여 일만에 노조의 품으로 돌아 온 김영길 위원장. 그리고 언론과의 첫 인터뷰. 2시간여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동안 노조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보고조차 받지 못해서 뭘 이야기해
인터뷰 시작 무렵부터 끝날 때까지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아침부터 (기자들의) 전화 받느라 혼줄이 났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있던 4일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론’이 언론에 공개된 날이다.“민주당, 민주노동당과 연정까지 고려했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김영미 당시 효성물산 노조위원장 “파업을 결단한 것은 노동자였다” 역사 속 진짜 주인공인 노동자의 결단과 용기가 제대로 평가되기를 12살 때 처음 서울에 올라와, 식모부터 공장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80년 노동야학에서 처음 노동운동이라는 것을 접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노조 만드는 것 자체가 ‘독립운동’이었던 시절, 가난해서 노동자가
제7기 도로공사노조 임원선거에서 기호2번 문경훈 후보가 56.7%의 지지를 받아 위원장에 당선됐다. 문경훈 후보는 지난 16일 열린 임원선거에서 총 조합원 4,540명 중 4,385명(96.6%)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2,485표의 지지를 얻었다. 다음달 25일 취임식을 앞두고 있는 문경훈 위원장 당선자를 만나봤다. - 앞으로 주력할 부
딱 한 명. 지난 6월14일부터 17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방북대표단의 일원으로 공무원노조가 참석한 수다. 공무원노조 대표로 평양에 발을 디딘 주인공은 바로 명태용(40) 공무원노조 통일위원회 정책위원장. 평양을 다녀 왔다는 사실에 명태용 정책위원장은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한국노총이 왜 정권퇴진 운동에 나섰을까. 고 김태환 충주지부장의 죽음이 매우 충격적이긴 하나 한국노총이 정권퇴진 운동에 나선 것을 두고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의아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무모한 투쟁 전략 아니냐고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같은 우려에도, 이용득 위원장은 지난 18일 열렸던 집회에서 “한국노총은 정권 퇴진 운동에
1989년 직제개편 등을 요구하며 서울지하철 파업을 주도해 해고된 뒤 지난 2003년 해고 14년만에 복직된 정윤광 전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이 오는 30일 정년퇴임을 맞게 됐다. 정 전 위원장은 또 최근에는 민청학련부터 노동운동까지 30여년에 걸친 투쟁을 기록한 '저항의 삶(부제·내가 살아온 역사)'이라는 책을 펴냈다. ⓒ 매일노동뉴스
15일 공무원노조 춘천시지부 제3대 지부장으로 당선된 박재규 신임위원장은 당선 후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지난해 노조 총파업 뒤 조합원들과 거리가 다소 멀어진 상황에서 현장 조합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박 위원장과 일문일답. - 당선을 축하한다. 소감은. “내년에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되는 상황에서 현
“임단협 협상을 거부하고 대체 용역 차량을 고용해 회사를 운영하던 회사 쪽이 결국 김태환 충주지부장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고인의 뜻을 이룰 때까지 끝까지 투쟁해서 꼭 승리하겠다.” 김태환 충주지부장이 사조 레미콘 회사 쪽이 고용한 대체 용역 차량에 치여 죽어간 14일. 이날 밤늦게 고인이 모셔져 있는 충주의료원 앞마당에서 충주 레미콘 파업을 주
‘위기’라는 단어는 이제 한국노총에서 익숙해져 버린 단어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녹색사민당이 패배한 이후 한국노총은 ‘최대 위기’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 당시 사퇴한 위원장이 현재는 검찰에 구속된 몸이 됐다. 1년이 지난 현재 ‘위기’는 한층 더 가속화됐다. 지난 1일 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백헌기 한국노총 신임 사무총장(49·사진) 역시 현
39개월째 대법원의 해고무효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현대미포조선 김석진(45·사진)씨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지난 2월28일, 김씨의 해고무효소송 상고심을 맡았던 대법관이 퇴임하던 날, 대법원 앞 1인 시위를 중단하고 귀향했던 그였다. “대법관이 바뀌면 결국 판결은 다른 대법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지난 2월 주심 대법관이 바뀌면서 최종 판
운수부문 노동자들을 아우르는 운수노조연대회의(운수연대)가 지난달 26일 공식 출범했다. 10만 운수노동자를 하나로 묶어내고, 이를 토대로 산별노조를 건설하겠다는 운수연대의 김연환 상임의장을 만났다. - 운수연대가 공식 출범했다. 운수연대는 어떤 조직인가. "지난 96년부터 운수산별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지는 등 운수노동자를 하나로 묶어내려는 노력들이
“그동안 노동계는 투쟁을 위한, 경영계는 단기적 방어를 위한 노동교육을 주로 해 왔습니다. 노사를 아우르는 생산적, 상생적 교육이 절실한데, 여전히 교육은 컨센서스 형성과정이 아니라 갈등을 재생산하는 구조입니다. 이러다보니, 특히 기업별노조 체제에 익숙해 있는 현실에서 지금의 노동교육을 통해서는 ‘노동연대’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올해로 개
근로복지공단 노사가 상호간 고소·고발로 법정 공방을 벌이는 등 노사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근로복지공단노조(위원장 명록이)는 대구본부장에 대한 낙하산 인사 반대 집회로 집행간부 15명이 지난 12일 징계를 받은 것과 관련, 24일 공단을 부당노동행위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고소했으며,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 27일 제
지옥의 문’ 앞에 선생님들이 서 있다. 학생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고도 성에 안 찼던지 교육부가 이제 선생님들에게도 지옥에 들어가라고 강요하고 있다. ‘교원평가’를 빌미로 선생님들끼리 경쟁하라는 것이다. 최근 성적조작 비리사건으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자 교육부는 교원평가제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다음달 중으로 시범실시하고 내년부터 전국적으로
70여일간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기나긴 싸움이 끝났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자리에 박해욱 위원장은 없었다. 그는 27일 교섭 장소와 전국노동자대회에 잠깐 모습을 드러냈을 뿐 다시 자취를 감췄다. 지난 3월18일 파업 돌입 이후 일주일만에 체포영장이 발부돼, 파업과 동시에 수배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박해욱 위원장은 28일 와 만난
“이번 비리 사건은 사실 내재돼 있던 문제점들이 터져 나온 것이다. 노총 변화의 부작용이기도 하지만 이를 계기로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게 조직 내에 부과된 과제라고 생각한다.” 정광호 한국노총 사무총장 직무대리(노총 사무1처장, 철도산업노련 위원장)은 사무총국 내에서는 ‘총대 메는 사나이'로 통한다. 노총이 어려운 순간에만 항상 중책을 맡아왔기
10년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창립 10돌을 맞았다. 아니, 전신인 한국노동자교육협회 시절까지 따지면 20년의 세월이다. 그것은, 만만치 않은, 격동의 세월이기도 했다. 어깨가 더욱 무거울 수밖에. 24일 저녁 충정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실에서 이원보 이사장을 만났다. “지난 10년이요? 변화가 많았죠.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크게 보면 정치·형식
연세의료원노조 위원장 조민근. 새로운 직함이 아직도 어색한 그는 사실 연세의료원 민주노조 건설 역사의 산증인이다. 연세의료원노조는 우리나라 병원 최초로 결성된 노조지만, 지난 18년간 구내식당 운영비리 등으로 ‘구린내’나는 노조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42년 만에 처음으로 실시된 직선제를 통해 당선된 조민근 노조위원장은 연
박태순 대열보일러노조 위원장. 그리고 그의 뒤를 따르는 이름, 안산명예산업안전감독관협의회 의장. 노동자 안전보건 결정권 문제를 다루면서 그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오래된 명예산업안전감독관 경력과 그이상의 노력 때문이다. 그를 더 쉽게 설명하자면, 지난 2002년 처음으로 중국 이주노동자 노말헥산 집단중독을 밝혀낸 사람이다. ▲ 박태순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