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직제개편 등을 요구하며 서울지하철 파업을 주도해 해고된 뒤 지난 2003년 해고 14년만에 복직된 정윤광 전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사진>이 오는 30일 정년퇴임을 맞게 됐다. 정 전 위원장은 또 최근에는 민청학련부터 노동운동까지 30여년에 걸친 투쟁을 기록한 '저항의 삶(부제·내가 살아온 역사)'이라는 책을 펴냈다.

- 서울지하철노조 설립에 기여하고, 지난 89년 지하철노조 첫 파업을 주도했던 만큼 퇴임하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하철노조는 87년 노동자대투쟁 등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운동을 해온 기본 토대다. 이 토대가 퇴임 뒤에도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공식적으로는 직장에서 떠난다는 의미이다. 단지 그런 감회가 새로울 뿐이지 실감이 잘 안나 덤덤하다. 그러나 앞으로도 정치적인 사업이나 지하철 사업 등에 계속해서 참여할 것이기 때문에 퇴임은 그저 임금을 주는 곳이 없어졌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 최근 책을 냈다. 책을 내기로 결심한 이유는.
“내가 살아온 과정이 역사의 흐름 속에 존재하면서 일정한 역할을 해 왔다. 이것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전 과정을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퇴직을 맞아 책을 내려고 하니 정리된 만큼인 학생운동 시절이 대부분 기술됐다. 이후 노동운동의 어려운 과정들, 지하철노조를 만들고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한 역할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책을 내기로 결심한 것은 사회에 일정 정도 역할을 해온 사람들은 자기 역사를 남기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책을 낸 소감은.
“인간적인 면을 풍부하게 담지 못하고 딱딱하게 기술된 게 아쉽다. 그러나 책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부분은 민청학련 운동과 '서울의 봄'이 유신체제를 철폐하는 과정뿐 아니라 이후 노동자 민중운동으로 방향전환을 하게 했다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역사 서술이 안 돼 있는 것 같아 정확하게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민청학련 투쟁과 '서울의 봄' 투쟁은 노동자 민중이 투쟁에 참여하기를 구체화하고, 이들이 권리와 기본권을 쟁취하는데 학생들이 선도적으로 나서 조직화하겠다라는 것이었다. 이후 민청학련 세대가 대거 노동현장으로 들어가면서 노동자 민중적인 성격이 강화돼 YH노조 투쟁과 부마항쟁 등으로 발전했다라는 운동의 흐름을 규정할 필요가 있었다.”

- 현재 산별노조 건설이 노동운동의 핵심 키워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최근 이와 관련 궤도노동자연대를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2007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놓고, 노동운동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해결책으로 산별노조가 얘기되고 있는데, 산별노조가 하나의 방안이 될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노동운동은 근본적으로 노동자가 세상을 뒤집어 엎는 전망과 노동자 계급의 단결과 연대의식을 바로 세우는 전망 속에서 나가야 한다. 이 두 가지 전망에 대한 하나의 실천방안이 산별노조 건설이다.
그러나 문제는 산별노조를 잘못 만들면 관료화돼 자연스럽게 하부의 대중투쟁을 억압하고, 자본이 이를 착취하는 데 도와주게 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장이 조직되지 않으면 산별노조를 건설해도 상층만 모아놓고 속이 텅빈 산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적극적으로 일어서게 하는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활동가들이다. 이 중간 역할을 강화하고 양성하고자 했던 고민이 궤도노동자연대다.
또 전 노동자 계급의식과 투쟁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것이 비정규직인데, 이를 조직화하고 투쟁해 같은 계급의식을 가지고 함께 해나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산별노조를 만들면 자본도 단결해 통일된 행동을 한다. 그런데 노조는 개별사업장으로 투쟁을 한다. 이를 하나로 모아내 끊임없는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등 자본의 단결에 대항하고 공세적으로 나가야 한다.
이는 정책적인 문제와 결부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면에서 산별노조 투쟁은 앞으로 제도, 법 개정을 위한 정치투쟁이 될 것이다. 화물노동자의 노동3권 쟁취투쟁, 버스공영화 정책 등 전체 운수·교통의 공적인 경영과 공적인 소유까지 나아가는 방향성을 가지고 산별노조를 만드는 데 현장 활동가들이 앞장서자는 뜻이다.”

- 궤도와 관련해서는 궤도단일노조, 운수산별, 공공산별 등의 상이 있다. 가장 실현 가능하고, 올바른 산별의 상이라고 한다면.
“이 세 가지 경향은 완전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강조점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외부에서 봤을 때는 분열되고, 엇갈리는 길로 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현재 내부 논의 중에 있다. 그러나 결국은 공공산별을 만드는 것이다.
공공산별을 만드는데 화물, 버스, 택시 등을 제쳐놓고 가는 것도 불가능하며, 공공연맹에 있는 궤도, 항공 등 운수단위를 빼고 운수산별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금의 운수연대에 결합하고 있는 운수단위와 공공연맹에서 추구하는 산별이 하나의 틀거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시기와 경로 등으로 모두 2006년말 건설을 내걸고 있는데, 2006년말까지 공공운수산별을 만드는 것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공공연맹과 운수연대 간부, 활동가들이 빨리 공익적인 방향으로 상과 경로, 시기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을 마련해 공식적으로 결정해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상층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진다는 우려가 많은데, 현장 조직들이 적극적인 산별노조의 방향을 잡고 참여해야 한다. 현장 조직에 있는 활동가들과는 일정 정도의 논의를 하고 있고 이를 공식적으로 결합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 산별운동과 관련해서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병원지부노조의 보건의료노조 탈퇴와 공공연맹 가맹 승인 등이 산별운동의 문제점을 확대시켰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건의료노조는 관료화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조 2항 문제가 그것인데, 어느 산별이든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지 최고기준을 정하고 이를 무효화하는 건 없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반발하는 지부가 있고 갈등이 생기게 된다. 관료화는 노동자가 노동자를 억압하는 것으로 반드시 분열되게 돼 있다. 이런 산별을 만드는 것은 시정해야 하며, 이를 시정하는 선에서 보건의료노조와 서울대병원지부노조 문제가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 그러나 실제로는 서울대병원지부노조가 20일 18시를 기해 공공연맹에 가맹 승인되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민주노총이 해결하지 않으면 보건의료노조는 물론 민주노총도 어려움에 빠질 것이다. 민주노총이 중재해서 서울대병원 전 지부장의 징계를 철회하고, 10조2항의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최대한 힘을 모아서 시행하자고 하고, 절차와 과정에 있어서는 보건의료노조뿐 아니라 서울대병원지부노조도 성급했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하면서 풀 수밖에 없다. 또 공공운수산별을 만들 때도 이런 폐해가 생길 수 있는 여지는 철저히 예방하면서 가야될 것이다.”

- 이후 운동의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마디 한다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모두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회적 교섭과 채용비리, 내부의 갈등을 지도부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등 노동운동, 민중운동의 전체적인 위기인 것이다.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과감히 새로운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노동자들이 세상을 뒤집겠다는 생각없이 경제적인 요구나 정책세우기 등만 내세우면 그것조차 이룰 수 없다. 세상의 80~90%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이 세상을 연대와 해방의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전망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기 사업장 문제에만 빠질 게 아니라 전 업종으로 단결하고, 비정규직 문제에 힘을 모아야 한다. 현재 투쟁으로 먼저 나서고 있는 비정규직들이 잘 싸우기 위해 힘을 모아줘야 한다. 또 어용노조는 제명시키는 등 과감하고 근본적인 행동양식으로 조직을 쇄신해 변혁과 전계급적인 의식화 투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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