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창립 10돌을 맞았다. 아니, 전신인 한국노동자교육협회 시절까지 따지면 20년의 세월이다. 그것은, 만만치 않은, 격동의 세월이기도 했다. 어깨가 더욱 무거울 수밖에. 24일 저녁 충정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실에서 이원보 이사장을 만났다.

“지난 10년이요? 변화가 많았죠.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크게 보면 정치·형식적 민주주의의 진전이 있었지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정체상태를 이룬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렇기에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루는 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앞으로 10년의 과제이기도 한 것이죠.”

격동의 10년, 노동운동의 발전과 함께 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걸어온, 또한 지켜본, 지난 10년에 대한 이원보 이사장의 평가다.

“연구소는 노동자편에서 실사구시 정신으로 정책과 이론을 생산할 것을 목표로 지난 95년 발족했지요. 지난 10년간 노동운동이 직접 부닥치는, 예컨대 산별교섭, 경영참가, 구조조정에 전략적 개입 등 당면한 문제에 집중해왔어요. 노동조합이 주체이되 못하는 일은 우리의 과제로 풀고자 했어요.”

그동안 성과도 만만치 않았다. 비정규직 규모와 상태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킨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정부와 한판 붙은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사회의 첨예한 쟁점에 대해 각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숨겨져 있는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했고 꾸준한 연구를 통해 가능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우리 연구소도 민주주의의 진전, 노동운동의 성장 등에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왜 안 남겠는가.

“아쉬운 점은 좀더 중장기적인, 전략적인, 이념적인 문제에 미흡했다는 점입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실마리는 25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창립 10주년 심포지엄의 주제에서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대주제는 ‘한국의 노동,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기조강연에 나선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의 ‘민주주의와 한국의 노동’.

“연구소 창립 전후의 변화를 보자는 의미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노동운동은 성장, 도약, 승리, 패배 등이 되풀이 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격을 달리하면서 변화하는 집약되는 것 같아요. 노동운동의 합법칙성이란 게 짧은 기간 동안 발견됩니다.”

이 이사장은 덧붙였다.

“또한 민주주의란 측면에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정치학적으로 접근해보자는 의미입니다. 노동에 국한해서가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의 변화를 보고, 그 변화 속에서 가장 핵심인자가 노동이며, 그 변화를 추동한 주요 인자는 노동이란 것이지요.”

이는 최근 노동운동의 위기 논쟁과 맞물려 볼 때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100년의 한국 노동운동사를 엮어내다

여기서 잠깐,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이원보 이사장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한국의 100년 노동운동사를 직접 정리한 <한국노동운동사>를 내놨다. 쉽지는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평소 노동운동사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또한 강의를 하다 보면 노동자들이 읽을 수 있는 정리된 노동운동사가 있었으면 했지요. 세계 각 나라는 한국의 노동운동을 주목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이를 조망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10주년을 맞아 기록이라도 남기자는 심정으로 지었습니다.”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을까.

“기존 노동운동사는 그 방대한 분량에다 접하기도 쉽지 않아 노동자 접근이 어려웠어요. 저자의 관점이 강하기도 하지요. 저는 ‘기록’에 초점을 맞췄어요. 가급적 해석을 배제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노동운동이 걸어온 발자취를 일별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노동자가 토론할 수 있는 근거가 됐으면 좋겠어요.”

중요한 것은, 노동운동의 합법칙성을 인정하는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리 강한 억압에도 노동운동을 절멸시킬 순 없었다, 노동자가 자기 역량으로 일어서는 ‘과정’과 시련 속에 살아남는다는 교훈을 주고 싶었다는 게 이 이사장이 말하는 집필 동기.

<한국노동운동사>는 아직 자본주의 시점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조선후기의 임금노동자 형성기부터 시작해 최근 96년 총파업, 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상황까지 세심하게 짚어내고 있다. 물론 관점을 가급적 배제했지만 논쟁거리도 충분히 있다.

“(서술 내용 중) 논쟁거리는 곳곳에 있지요. 예컨대 정부의 노동정책이나 70, 80년대 노동운동을 평가하는데 있어 이견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너무 관념적이거나 기존의 잣대로 보기보다는 운동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정리해내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원보 이사장은 앞으로 노동운동의 인물(주역)을 중심으로 한 정리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기존의 노동운동사가 사건 중심이기 때문에 사람이 빠져있는 점이 늘 아쉬웠다는 것. 생생하게 인물이 살아 숨쉬는 노동운동사 말이다.

이의 연장선에서, 지금의 곤혹스런 처지에 놓인 노동운동에 대해 그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 전체를 껴안아야”

“노동운동은 이제 노동자계급 전체를 껴안아야 해요. 아니면 스스로 고립될 겁니다. 비정규, 장애, 농민, 외국인, 고령자 등. 이들은 모두 근로대중입니다. 이들이 중심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체를 끌어안는 노동운동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다시 돌아오자. 이제 연구소는 10년을 지나 앞으로의 10년을 기약하고 있을 것이다.

“연구소는 민주노조운동을 지지하고 엄호하며 민주적 노사관계를 정립하는데 기여하는 기조를 유지하면서 중장기적인 접근에도 노력할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 편에선 연구소가 ‘뜨뜻미지근’하다는 지적도 있어요. 이념의 선명성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특히 언론은 그런 걸 바라기도 해요. 하지만 자칫 그런 ‘쌈박한’ 것을 원하는 요구에 휩쓸리면 ‘본질’을 흐릴 수 있어요. 본질이란 사회 진보와 변혁입니다. 다만 방법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봐요. 연구소는 그 본질과 방향을 향해 연구와 참여할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이원보 이사장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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