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왜 정권퇴진 운동에 나섰을까. 고 김태환 충주지부장의 죽음이 매우 충격적이긴 하나 한국노총이 정권퇴진 운동에 나선 것을 두고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의아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무모한 투쟁 전략 아니냐고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같은 우려에도, 이용득 위원장은 지난 18일 열렸던 집회에서 “한국노총은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투쟁, 정권 퇴진 이외에는 선택할 게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20일 오후 9시께 한국노총에서 만난 이용득 위원장은 슬픈 낯빛에 매우 지쳐 있는 표정이었다.

노동부는 수수방관, 충주시 “노동부 움직여 달라” 공문 보내와

“김태환 동지는 지역지부장 중에서는 나하고 가장 가까웠던 동지 중 한 사람이었고, 한국노총 발전은 물론 노동계 전체 발전을 위해 폭넓은 사고를 가지고 고민을 나눴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참변을 당했다는 게 너무 안타깝고….”

애도의 말을 전하며 끝내 말을 다 잇지 못한 이 위원장은 우울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담배를 한 대 빼어 물고는 한참을 있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고 김태환 열사가 죽은 지 일주일이 지났고 내가 평양에서 돌아온 지, 20일 현재 4일째다. 노동부, 청와대 노동담당자들, 아무도 나에게 애도를 표하는 전화 한 통 안했다. 충주지방 노동사무소장 한 명이 슬쩍 와서 절 한 번 하고 간 게 전부다.

그런데 내가 충주에 도착한 다음날인 17일, 아침을 먹으러 인근 식당에 갔는데 아무 관련이 없는 충주시민들이 나한테 와서 조의를 표하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한 마을에서 누가 죽으면 항상 조문을 하고 애도를 표하는 게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이고 상식이다. 그런데 노총 간부가 한국노총 59년 역사상 처음으로 투쟁의 현장에서 이런 참변을 당했다. 그런데 어떻게 정부가 이렇게 몰상식하고 부도덕적일 수 있는가.”

이 위원장은 이런 말을 전하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의 말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난 17일, 충주시청에서 한국노총 충북본부로 공문을 보냈다.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노동부와 경찰 그리고 사용자들에게 협조 요청을 했는데 전혀 협조가 되고 있지 않다고 한국노총이 노동부가 협조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18일 밤에 이 공문을 작성했던 담당 과장이 와서는 공문을 돌려 달라고 하더라. 달라 안준다 노총 간부들하고 실랑이까지 벌였다.

이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17일 오후에 김영주 열린우리당 노동위원장이 현장에 왔다가 노동부 관계자들이 아무도 없으니까 노동사무소에 연락해 질책한 뒤 이뤄졌다. 그런 다음에 노동사무소가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시청에서 다시 공문을 달라고 한 것이다.”

이 위원장의 말은 결론적으로 자신이 평양에서 오기 전이나 온 이후에도 사실상 이번 사건과 관련해 노동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노동자가 투쟁 현장에서 사용자쪽이 고용한 인력에 의해 살해’ 당했는데 노동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노동부조차 나서지 않았다는 것은 노총 위원장으로서는 전혀 이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이런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도 보이지 않은 이 정권은 과거의 살인 정권과 아무런 차이가 없지 않느냐”며 “당연히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위원장은 이번 사고에 대해 정부 관계자 및 경찰들의 인식 수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였다.

“아니 사람들이 차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데 차량으로 이들을 조금씩 밀면서 이들을 흩어버리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경찰들도 차량으로 밀어서 사람들을 흩어놓겠다는 행동들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정부 관료나 경찰들의 인식 자체가 아주 몰상식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이것은 살인 방조행위가 아닌 살인 교사행위에 가깝다”고 목소리를 높인 뒤, “이같은 풍토 속에서는 더이상 어떤 말을 해도 소용없다”며 “투쟁으로 바꿔낼 수밖에 없다”고 말을 이었다.


“경찰, 피 묻은 차량 세차 묵인했다” 의혹

이 위원장이 이날 인터뷰를 통해 처음 공개한 경찰의 이후 행동은 더욱 충격적이다. “경찰이 레미콘 차량을 출발하도록 지시했다”라던가 “사건을 일어나도록 방치했다” 등의 주장은 이미 한국노총이 공개적으로 경찰에 책임을 묻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경찰이 사건 직후 인근 휴게소에서 가해자의 아버지가 피로 물들어 있는 가해자 차량을 물로 세차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 있다는 주장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이같은 일은 당시 사고 현장에 있었던 조합원 중 일부가 이동하다 직접 목격한 일이라고 이 위원장은 전했다.

“고 김태환 열사가 레미콘 차량에 깔려 사망한 직후 그 차량은 그대로 달아났고 경찰은 조합원들이 항의한 이후에야 뒤를 쫓았다. 지금까지 경찰들의 진술은 처음 ‘300m에서 잡았다 500m에서 잡았다’로 계속 번복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경찰이 사건이 발생한 30여분 후께 잡은 차량을 약 1km 떨어진 인근 휴게소까지 같이 가 세차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 조합원 세 명이 이를 직접 목격했다.”

이 위원장이 전한 조합원들의 목격담에 따르면 이들은 심지어 가해자의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던 중 경찰이 ‘이 차량은 사고 차량임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으며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사건 발생 30여분 후 현장을 떠나 이동 중이었으며 경찰과 사고 차량은 사건 현장에서 500m 떨어진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먼저 이들이 휴게소에서 잠시 머무르는 동안 경찰과 사고차량이 휴게소에 들어와 사고 차량을 세차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들은 가해자의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는 중 사고 차량이 아버지의 소유였으며 이것을 아들이 몰다가 사고를 낸 것까지 파악하게 됐다”고 이 위원장은 전했다. 이들은 경찰의 제지를 받은 뒤 곧 사고 현장으로 차를 돌려 이 이야기를 다른 노총 관계자들에게 증언했다는 게 이 위원장이 전한 이후 사태의 전말이다.

“제발 국회에서라도 사건 진실을 밝혀달라”

이 위원장의 표정과 억양은 이 시점에서 점차 격양돼 가고 있었다. 자신이 한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보도해 달라는 당부까지 이어졌다. 이 위원장은 “이거야말로 경찰이 사건을 은폐 축소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고 언성을 높였다. 어떻게 사고 차량에 조합원의 접근은 막으면서 가해자의 아버지가 세차를 하도록 그대로 놔둘 수 있냐는 것. 이 목격담을 들은 사람들은 경찰에 대한 불신이 더욱 강해졌고 경찰의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들이 결국 한국노총으로 하여금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게 했다. 사건 이후에 상황들과 조합원들의 증언들에 따르면 노동부는 이 사건을 방관으로 일관했으며 경찰은 사건을 은폐, 축소하고 방치했다는 게 한국노총 쪽의 주장.

이 위원장은 “사건 과정과 사건 이후에, 경찰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과 노동부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후 대책 마련 과정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선 국회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며 “우리가 내부적으로 종합한 정보, 그 의혹들을 낱낱이 밝혀내고 그 책임자를 끝까지 쫓아가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이 ‘노무현 정권 퇴진’을 주장하며 김대환 장관과 청와대 노동라인에 대한 해임을 요구한 것은 이전부터 쌓아온 이들과의 불신도 상당히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특히 그는 김대환 장관이 고 김태환씨가 죽은 지 이틀째 되는 16일 한 조찬 모임에 참석해 한 발언을 전해 듣고 더욱 분노감이 컸다고 전했다.

“김대환 장관이 한 조찬 모임에 참석해 ‘그 사람의 죽음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현장에 내려가지도 않을 것이고 노동부와 상관없는 일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게 자신의 원칙이라고 밝혔다고도 한다.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선 ‘안됐다, 조의를 표한다’라고 말하는 게 인간적인 상식 아닌가.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라도 있으면 그런 식의 표현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안됐다.”

이와 함께 그는 그동안 노동현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노동부와 노총 간의 불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나쁜 놈이란 나뿐이 모르는 놈”이라는 소설가 이외수씨의 말까지 들먹이며 이 위원장은 “바로 김대환 장관이 그 나쁜 사람”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김 장관은 자기가 하는 것은 무조건 선이고 남이 하는 것은 무조건 악이다. 남의 이야기는 귀동냥도 안 한다. 장관이 그런 입장이니까 노동사무소도 신경도 안 쓰는 것이다.” 이어진 이 위원장의 말이다.

노총과 정부 노동라인 불신 심각, “대화 해결 노력 모두 허사됐다”

특히 그는 사회적 대화 틀 구축과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해 힘써왔던 자신의 모든 노력들이 헛된 것이었다는 자조 섞인 한탄도 했다.

“내가 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사회적 대화 틀을 완성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노동부는 가만히 있는데도 사회적 주체로서 모든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러나 현 노동부와 청와대 노동팀과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노동부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해 왔던 것도 상식적인 일이 아니었는데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노동부가 도와주기는커녕 훼방만 놓아 왔다. 이제 이 정부와 모든 부분에서 결별하고 투쟁하는 한국노총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것이다.”

결국 노총과 노동부를 포함한 정부 노동라인 간의 불신이 노총이 ‘대화’를 접고 ‘투쟁’에 나서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만들었다는 게 이 위원장의 설명. 그는 “어떻게든 꼬여 있는 노사정 관계를 ‘투쟁’보다는 ‘대화’로 풀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책임성 없는 정부 하에서는 ‘대화’로 우리 조합원을 지킨다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투쟁만이 정권을 바꿔낼 수 있다면 조합원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투쟁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투쟁을 위한 투쟁이라도 하겠다”

표정은 침울했지만 격앙된 그의 표정, 높아진 목소리 등 그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이건 장난이 아니다’라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내가 평양에서 돌아온 지 이제 4일째, 투쟁의 초기 단계다. 사람들이 착각을 해도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총파업도 어렵고 전국집회도 하기 힘들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이제부터는 그동안 정부와 함께 했던 모든 사업과 위원회 등을 단계적으로 전면 거부해 나갈 것이다. 전국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현수막을 내걸어 열사투쟁을 확산시킬 것이다. 그 다음에 대표자들 모두가 삭발투쟁에 들어가고 10만 단위 전국 집회를 거쳐 최소 50만명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전개할 것이다.”

구체적인 투쟁 계획이 뒷받침 되고 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듯 거침없이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어 그는 “투쟁을 위한 투쟁이 돼도 좋다”고까지 했다. “비정규 법안 등 모든 현안 문제는 현 시점에서는 우선순위 뒤에 둘 것”이라고도 했다. “고 김태환 열사의 관을 들고 서울로 상경해서라도 진상규명을 이뤄내고 한국노총의 요구 사항을 관철시켜낼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노총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모든 상황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겠다는 게 이 위원장의 이어진 결의의 말이다.

이 위원장의 말대로라면 이건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노사정 관계는 이미 무언가 거대한 변화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파국에 치달았다는 증거다.

“96, 97 노동자 총파업 때 상황실장을 맡았다. 그때는 더욱 한국노총이 파업이 안 되는 곳이라고 인식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합원들이 그때보다 훨씬 의식화 돼 있고 깨어 있다. 그 당시 투쟁보다 더욱 큰 투쟁들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앞으로 한국노총은 유재섭 수석부위원장을 본부장으로 해서 ‘투쟁상황본부’을 꾸리고 이 상황본부에 의해 움직여질 것이다. 모든 간부들은 상황본부장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고 임무를 수행하는 체제로 바뀔 것이다. 내 임기가 2년8개월 남았다. 이 기간 동안 투쟁하는 한국노총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각인시켜 줄 것이다”

심각한 갈등,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이같은 한국노총, 이 위원장의 분노는 곧 정권에 대한 질타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권은 한 마디로 사람을 잘 못쓰고 다음에 그 사람에 대한 각종 활동에 대해 검증이 없는 무책임한 정권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양대노총이 사회적 대화 틀 구축을 위해 애를 써왔지만 노동부 장관은 계속 훼방만 놓아 왔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자신이 쓴 사람 이야기나 들었지 다양한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 않은 것이 바로 이 정권이다.” 이같은 발언들이 바로 이 위원장이 현 정권을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어 “정권 퇴진 운동을 하는 것은 너무 무모한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 많지만 이런 상황들을 설명하면 모두가 공감의 의사를 표했다.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부도덕한 정권이다. 최소한 애도의 뜻을 전하고 사건 해결을 위해 성의를 다해보겠다는 말 정도는 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역설했다.

“대통령은 불신임 당할 이유도 없고 ‘설마 사람 하나 죽었는데 퇴진 운동이야 하겠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제기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노총은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서 이 정권이 정말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짓을 했다는 것을 역사에 남도록 심어주겠다는 결의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한 달이든 두 달이 되든 우리의 요구 사항이 수용되지 않는다면 장례식도 치르지 않고 열사투쟁을 계속 진행해 나갈 것이다.” 그가 밝힌 이번 사태에 대한 굳은 의지다.

말을 잇던 이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는 더이상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말은 “조합원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에 나서겠다”는 말 만큼이나 이 위원장의 심정을 잘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 위원장은 끝으로 이렇게 말한 뒤 입을 꾹 다물었다.
“경찰은 경찰대로 노동부는 노동부대로 불감증,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그러면서 사회를 개혁해 내겠다고 참여정권이 나섰는데 어불성설이다. 이런 상태라면 이런 사건들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걸 막기 위해선 정말 한국노총이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 결심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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