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라는 단어는 이제 한국노총에서 익숙해져 버린 단어다. 지난해 4·15 총선에서 녹색사민당이 패배한 이후 한국노총은 ‘최대 위기’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 당시 사퇴한 위원장이 현재는 검찰에 구속된 몸이 됐다. 1년이 지난 현재 ‘위기’는 한층 더 가속화됐다.

지난 1일 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백헌기 한국노총 신임 사무총장(49·사진) 역시 현 상황을 “한국노총 59년 역사상 최대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 위기의 근원을 “조합원과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불행한 일들”이라고 지적했다. 백 신임 사무총장은 “이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현장 조합원의 정서에서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 조직 통합과 토론 문화의 정착이 무엇보다 시급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는 모두가 함께 할 때만 가능한 일”이라며 “나 역시 사무총장으로써 이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개혁의 실천이 내가 해야 할 일”

“마음이 무겁다.” 그가 인터뷰를 시작하자 꺼낸 첫 마디다. 이 말은 한국노총의 연이은 위기 상황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고 규약 개정으로 개혁의 토대를 만든 지금 이것을 추진해 나가야 하는 역할에 대한 부담감이기도 했다.

“한국노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혁신단에서 수많은 토론을 진행해 혁신안을 만들었다. 내 역할은 이것을 산별과 지역, 산하 단위노조들과 함께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한국노총이 이 같은 노동운동을 펼쳐나가는 데 힘이 되고자 한다.” 사무총장에 임하는 그의 마음가짐이다.

그는 한국노총의 현 위기를 4·15 총선 패배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조합원의 정서에 부합하지 못하고 산별 위원장 중심의 상층부가 독단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 결국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 그는 “한국노총에서는 조합원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해 오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조합원 중심의 노동운동을 펼쳐야 하고 조합원들이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들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 조합원과 함께 하는 노총, 국민과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노총, 이를 통해 강한 노총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 그가 밝힌 포부다.

“변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살아남을 수 없다”

“한국노총은 59년간 조직을 유지해 온 저력이 아직 남아 있다. 국민과 조합원, 언론들은 한국노총이 만든 혁신안이 과연 대의원대회에서 통과될 것인가 의구심을 가졌다. 그러나 한국노총 혁신안은 대의원대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통과됐다. 이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자구심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츌이기도 하다. 위기는 이미 발생한 일들에도 있지만 앞으로 변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상황에도 있다. 한국노총은 새롭게 거듭나는 조직이 돼야 한다.”

그는 이 같은 위기의식을 반영한 듯 스스로를 “진보적 인사이기도 하다”고 표현했다. 최근까지 한나라당 노동위원장을 맡았던 경력에 비춰본다면 스스로를 많이 변화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노동운동에서 보수와 개혁, 진보는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조합원을 위해, 조합원과 함께 열심히 일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조합원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진보라면 나 역시 진보주의자일 수 있다.” 그가 건넨 설명이다.

그는 이어 “나에 대해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하며 개혁 추진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조합원과 함께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 나를 비판하고 있는 개혁적인 사람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용득 위원장, 잘 해 왔다. 같이 가겠다”

산별위원장으로서 바라본 지난 1년간의 이용득 집행부의 활동에 대해서 그는 “전체적으로 한국노총의 위기를 극복해 온 집행부”라는 평가를 내렸다. 4·15총선 이후 터져 나온 내부 불만들과 위기감들, 이같은 어려운 시기에 한국노총을 잘 이끌어 왔다는 것.

특히 사회연대 및 현장 강화라는 이용득 위원장의 기조에 대해선 “이전 집행부와는 매우 다른 노선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칭찬했다. 그는 “이용득 위원장이 취임해 현장과 함께 하는 운동, 시민단체와 함께 하는 운동 그리고 대화와 투쟁을 병행하는 운동을 해 왔다”며 “이는 지난해 총선 이후 불어닥친 한국노총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같은 운동 방식은 이전 한국노총의 운동방식과는 매우 달랐다”며 “이전에 보지 못한 한국노총의 새로운 노선”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어 그는 “이용득 위원장과 함께 이번에 마련된 혁신안들을 체계적으로 실천해 나가면서 한국노총이 새롭게 거듭나는 단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앞으로 위원장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번 혁신안에 대한 구체적인 후속 프로그램을 위원장, 부위원장 등 임원들 및 사무총국 간부들과의 논의를 통해 곧바로 마련, 실행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무총국에 대한 외부 불신도 해결 과제”

사무총장은 먼저 내부의 살림과 사무총국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무총국에 대해서도 “외부에서 불신받고 있는 것들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말을 꺼냈다. 먼저 그는 산별(연합노련)위원장으로 바라봤던 사무총국에 대해 “여전히 외부에서는 사무총국에 대한 불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간부들을 바라보는 안 좋은 시선들도 있고 조직적인 분란이 있다는 이야기들도 한다. 사실 함께 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 역시 일정 부분 그런 생각을 갖기도 했다”고 먼저 밝혔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 중에 일부는 사실이기도 하고 일부는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기도 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과거의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간부들이 합심해서 이를 극복해 나가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며 사무총국에 대한 외부적 불신감을 극복하기 위해 간부들과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역설했다. 인적 개편보다는 내부의 협력을 통해 한국노총의 위기, 사무총국에 대한 불신들을 극복해 나가겠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는 사무총국 개혁을 위해 무엇보다 총국 내에 토론 문화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가 강조했다. 그는 “사무총국 개혁을 위해선 내부의 민주적인 절차가 확보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임원과 간부, 간부들 간의 토론문화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50여개의 업종이 한 노련에 묶여 있어 ‘작은 노총’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연합노련’의 위원장을 한 경험이 사무총장 역할을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 “동종 업종, 혹은 단일성을 갖는 노조와는 달리 연합노련은 노동조건과 이에 따른 이해관계들이 매우 다른 50여개의 업종으로 이뤄져 있다”며 “위원장으로서 지난 5년 동안 연합노련을 잘 이끌어 온 만큼 이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80년대 초반에 노동운동 시작
그가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 것은 지난 82년 한국공항노조에서 조직부장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는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고 불이익을 감수만 하고 있는 공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89년도에 한국공항노조 위원장에 당선돼 4선 위원장을 거쳤다.


연합노련 위원장직을 맡아 일해 온 것은 5년째이다. 2000년 총선에서 김락기 전 위원장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그 해 6월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이어 2002년과 2005년에 각각 재선돼 3선째 노련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로 2000년도 6월 노련 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발생했던 농업기반공사노조의 파업 투쟁을 승리로 이끈 경험을 꼽았다. 그는 “그 당시 농업기반공사가 노사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아 조합원 6천여명이 파업에 돌입한 일이 있었다”며 “일주일 동안 파업을 벌였지만 합리적인 투쟁을 벌여 이탈자도 없고 구속된 사람도 없이 투쟁을 승리로 이끈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소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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