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료원노조 위원장 조민근. 새로운 직함이 아직도 어색한 그는 사실 연세의료원 민주노조 건설 역사의 산증인이다. 연세의료원노조는 우리나라 병원 최초로 결성된 노조지만, 지난 18년간 구내식당 운영비리 등으로 ‘구린내’나는 노조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42년 만에 처음으로 실시된 직선제를 통해 당선된 조민근 노조위원장은 연세의료원노조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고 선언했다. 오랫동안 노조 비리 문제 해결을 촉구하다 당선된 그는 최근 연이어 터지는 한국노총 비리 문제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내가 ‘반조직자’?…건전한 야당일 뿐

조 위원장은 지난 83년 연세의료원 약제과에 입사해 2년 후부터 노조 대의원으로 노조활동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85년부터 91년까지 6년 동안 대의원 활동을 하던 그는 ‘조합원 위에 군림하는’ 노조 집행부의 모습에 크게 실망, 90년에 ‘노동조합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랑)’을 결성한다.

'노사랑'이 결성된 직접적인 이유는 89년부터 노조가 병원쪽으로부터 무상임대 형식으로 구내식당을 인수해 운영하면서 불거진 몇가지 의혹 때문.

‘조합원 복지 증진과 재원 마련’이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시작한 이 식당운영사업은 초기부터 불투명한 운영문제로 논란을 빚어 왔다. 지난해 식당운영권을 반납하기까지 10여년 동안 식당운영에 이의를 제기하다 노조로부터 징계를 당한 조합원만 무려 270여명. 조합원 10명에 1명꼴이다.

조민근 위원장도 그 중 한 사람. 그는 '노사랑'에 이어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식당운영 공개와 투명하고 민주적인 노동조합 운영을 요구하다 93년 결국 노조로부터 제명당했다.

이 사건 이후 조 위원장은 ‘노조위원장을 뽑는 권리를 조합원들에게 주지 않고 소수가 이를 대신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 아래 위원장 직선제를 추진하게 된다.

조 위원장은 93년 제명 이후 2003년 복권되기까지 ‘반조직자’로 낙인찍혀 노조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해야 했다. 대신 조합원들 가까이에서 그들의 ‘고충’과 ‘보람’이 무엇인지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건전한 야당’이라고 부른다.

2003년 집행부 내홍으로 구체적인 식당비리 의혹들이 노조 바깥으로 흘러나오고, 그 이듬해에는 개혁파 대의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연세의료원에도 개혁바람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그 결과 노조 결성 42년만에 처음으로 위원장 선출방식을 대의원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2004년 8월 대의원선거가 투표양식과 징계자 후보자격 문제로 파행으로 얼룩지며 연세의료원 민주노조운동은 또 한번의 위기를 맞았다.

당시 조민근 위원장은 8일간의 단식을 진행, 마지막 날에는 물마저 거부하며 ‘목숨을 걸고’ 싸웠다. 다행히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의 중재로 조민근 위원장이 이끄는 개혁모임의 요구들이 받아들여져 오늘날의 연세의료원노조가 탄생했다.

“병원이 한국노총 썩었다고 단위노조 목조른다”

지난 20일 취임식을 마친 조민근 위원장은 첫 사업으로 공인회계사에 의한 외부회계감사제도 도입을 추진, 올해 첫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이를 통과시켰다.

약력

1983년 연세의료원 약제과 입사
1990년 노동조합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운영위원

                식당운영 공개 요구와 투명한 민주적인 노조 
                운영 요구
1992년 노동조합 민주화 추진위원회 대표
                노조위원장 직선제 추진
1993년 노조조합원 자격 제명
2003년 직선제 추진 위원회 운영위원
                노조조합원 자격 복권
2004년 새로운 연세의료원 노조개혁을 위한 모임 대표
                노조 민주화를 위해 8일간 단식
2005년 연세의료원 노조 위원자 당선
노조개혁 없이는 새로운 노사관계를 수립할 수 없다는 그의 지론이 반영된 사업이다. 조민근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한국노총이 썩었다고 단위노조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지금 적어도 단위노조는 건강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 비리가 건전한 단위노조의 목까지 조르고 있어 답답하다”고 토로한 그는 “요즘 임단투 기간인데 사쪽이 사회적 여론에 편승해 노조를 무시하고 ‘노조는 썩었다’며 압박해오고 있어 앞으로 부당한 압력과 대우가 판을 칠 것이 뻔하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조 위원장은 “한국노총이 책임있는 자세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단위노조까지 몰살 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에서 비리는 일부 몰지각한 개인의 문제이지 개별노조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연세의료원노조만 하더라도 과거 세력을 몰아내고 새롭게 개혁하려고 하는데 지금의 노조비리국면이 계속 발목을 잡고 있어요. 한국노총에서 ‘적어도 단위노조는 건강하다’는 내용의 담화문이라도 발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그는 현재 전대 집행부들의 식당 부실운영에 따른 환수조치에 나서고 있다. “식당운영을 정상적으로 했을 경우 노조 통장에 100억원 이상의 돈이 조합원 재산으로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7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게 조 위원장의 설명이다.

조 위원장은 “전 집행부들의 자료 고의 폐기 등 어려운 조건에서도 조사가 거의 마무리 돼 이와 관련된 불법부당한 부분들이 많이 밝혀졌다”며 “검찰 고소 등을 통해 이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묻고 환수조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조합원 대출 등을 목적으로 마련한 기금에도 전 집행부가 부당하게 운영한 부분들도 잇달아 발견되고 있어 이 역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이같은 노조비리는 장기집권에 따라 스스로 부패한 결과, 결국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탓”이라며 “조합원을 등에 업고 노조가 권력화하면 그날로 노조는 끝장”이고 강조했다.

“병원규모는 국내 최대…노동자대우는 최악?”
“타 사립대병원들과 정책적 연대 추진”


조위원장은 당선과 함께 세브란스 새병원의 개원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조 위원장에 따르면 ‘서울에서 단일건물 면적으로는 최대’라는 위용을 자랑하는 병원이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밥도 굶고 화장실도 못가는 실정이다.

취임도 하기 전인 지난 12일 새병원에서 일하는 일부 조합원들이 찾아와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이 일하는 우리가 노예냐’며 ‘업무거부에 들어가겠다’고 해 노조에 비상이 걸렸다.

1천여 병상 규모의 병원을 신축하면서 그에 따른 충분한 인력충원을 하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직원식당부지마저 고급레스토랑으로 분양해버려 직원들이 싸온 도시락조차 먹을 공간조차 없어 굶어가며 일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병원이 지금처럼 경비절감에 모든 초점을 맞춘 채 직원들을 대한다면 노사관계는 결국 대결구도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쪽이 설비나 기계에 투자하듯 직원들에 대해서도 투자의 개념으로 마인드를 전환해야 한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때문에 조 위원장은 보건의료노조 소속이 대부분인 다른 사립대병원노조들과 정책 차원에서의 연대틀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그러나 조 위원장은 “상급단체 변경은 조합원들의 고유권리”라며 이를 확대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앞으로 남은 3년의 임기동안 조 위원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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