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개월째 대법원의 해고무효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현대미포조선 김석진(45·사진)씨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지난 2월28일, 김씨의 해고무효소송 상고심을 맡았던 대법관이 퇴임하던 날, 대법원 앞 1인 시위를 중단하고 귀향했던 그였다.

“대법관이 바뀌면 결국 판결은 다른 대법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지난 2월 주심 대법관이 바뀌면서 최종 판결까지 다시 2~3개월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가족이 있는 울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최종판결이 날 때까지 다시 1인 시위를 계속해야죠.”

8년에 걸친 그의 지난한 복직투쟁은 97년 노조활동을 하다 해고당하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판정이 모두 기각되면서 ‘복직될 수 있다’는 희망조차도 사라졌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법원에 해고무효소송을 낸 결과 1심과 2심 모두 원직복직 판결이 나왔다. 원직복직의 실낱같은 희망은 대법원 판결에 묶여 있지만 3년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법원은 ‘묵묵부답’이다.

두 딸의 아버지로서,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모셔야 했던 가정형평상 가장인 김씨가 8년간 복직투쟁을 이어온 것은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른다. 두 딸과 아내, 주위의 동료들이 그의 투쟁을 지지해주고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힘겹게 버텨온 것.

“회사에서 온갖 악선전을 했어요. 1, 2심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회사 동료들 모두 ‘잘릴 만하니까 해고됐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억울하죠. 아니 원망스러웠죠. 17년간 회사에서 열심히 일만 했는데…. 어느날 해고통보가 날아왔다고 생각해보세요. 버티는 겁니다. 결코 잘못해서 해고된 것이 아니다. 내가 ‘옳다’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민사소송법 199조에 따르면 대법원 상고심의 경우 상고후 5개월 이내에 판결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법사위에 있는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2001년까지 대법원에서 처리된 부당해고 민사소송 사건이 처리된 기한을 확인한 결과 평균 1년3개월. 그런데 김석진씨의 경우는 3년3개월의 시간이 흐르도록 왜 판결이 지연되는 것일까.

김씨는 답답한 마음에 지난 4월25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해고무효확인 사건과 관련,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민원을 접수했다. 그리고 지난 4월28일 담당부서인 법원행정처로부터 한 장의 공문을 받았다.

‘재판의 대해서는 재판독립의 원칙에 따라 담당재판부 이외에 제3자는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한편, 재판에 대한 불복도 법에 정해진 절차에 의해서만 할 수 있다.’

누구도 그의 복직판결이 왜 지연되고 있는지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지난달 26일 ‘원직복직’ 피켓을 들고 또다시 대법원 정문 앞에 섰다.

이날 새벽 서울로 올라오는 차안에서 둘째딸 소연이가 싸준 도시락을 보고 서럽게 울었다는 그는 ‘아빠 힘내세요’라는 가족들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다고 했다.

“대법원 앞에 가면 ‘자유, 평등, 정의’라는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대법원이 아직 판결을 내리지 않았지만 전 대법원의 권위가 웅장한 건물이 아닌 그 신념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매일매일 1인 시위를 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80년 울산공고를 졸업하고 처음 가진 직장. 전세계 기능올림픽 나가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꿈이었던 그의 소박한 꿈이 '회사쪽의 부당한 해고'로 인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다시 일터로 돌아 가게 되면 누구보다 힘든 곳에서 열심히 일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그.

8년간의 기나긴 김석진씨의 복직투쟁은 대법원의 판결만이 종지부를 찍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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