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법에 지난해 1월부터 지방자치단체가 관할지역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생겼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난해는 5월 기준 전국 15개의 광역지자체와 10여곳 남짓한 기초지자체에서 산재예방 및 노동 안전보건 증진조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7월 현재는 대부분 광역지자체와 120여개 기초지자체·교육청에서 조례가 제정했다. 그 속도가 참으로 놀랍다.그러나 속도에 비해 내용은 참으로 초라하다. 지난해부터 급속하게 확산된 지자체의 산재예방 조례 내용을 살펴보니 내용이 천편일률적이
실업급여에 대한 공격은 낯설지 않다. 2년 전 고용노동부가 5년 동안 3회 이상 수급한 경우 실업급여를 감액하는 방침을 밝힌 데에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여러 노동·시민단체가 반대 입장을 낸 바 있었다. 최근에는 실업급여를 두고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와 여성·청년들의 공분이 일었다. 정부와 국민의힘이 열었던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는 한 실업급여 담당자가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옵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도중에 해외여행 가요”라며 여성과 청년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실업급여 수급자에 대한
처음 ‘그런’ 언어를 마주한 날은 국회에서 변호사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민원인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은 채 욕설과 함께 자기 할 말만 했고, 끝내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선을 뽑았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는 레퍼토리는 진부한 축에 속했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사무실로 찾아오는지 여부 등 집요함의 수준이 다를 뿐 타인을 무너뜨리는 ‘그런’ 무례함은 다채롭게 끊이지 않았다. 소속된 일터가 바뀌어도 빈도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법률원에서 사건을 맡기 어렵다고 하자 소리를 지르며
지난 15일 오전 경북 문경, 사흘째 쏟아져 내려오는 비에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지역 농산물 가공업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도 물에 잠기고 토사에 파묻혔다. 4년 전, 세 딸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태국 출신 30대 여성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지난해 8월 경기도 화성에서도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다량의 토사물이 두 동의 컨테이너를 덮쳤다.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40대 중국 국적 이주노동자가 1층에서 몸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2020년 8월 경기도 이천에서 호우에 산양저수지의 둑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1.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 이 무슨 노조답지 않은 요구인가. 노동조합이면 노동조합답게 제대로 노조하겠다고 해야지, 노사협의회 설치를 요구해 투쟁하다니 한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이 나라에서는 당신이 한심하다고 여길지 모를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사용자가 사업장에 설치하지 않아서 노동조합이 하는 요구고 투쟁이겠지만, 그 사업장 대부분에서는 노사협의회로 취급되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를 노사협의회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서 사용자와 노동자, 노동조합은 긍정과 부정으로 나뉘고, 노사협의회가 아니라고 보는 노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뭐야?”얼마 전 오랜만에 만나 술 한잔 하던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던진 질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내가 노무사로 살고 있는 이유를 가볍게 물어본 것인데, 나는 그 질문에 간단 명료하게 답변하기가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단순한 질문에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을 만큼 내면이 정돈돼 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해 당황했던 것이다.“그 일을 선택한 계기는 뭔데?”앞선 질문에 “그냥 뭐…”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던 나에게 이 친구가 한 번 더 질문했다. 이 질문에는 그래도 답할 내용이 좀 있었다. 대학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 34조와 35조에 최저임금제도 실시 근거를 뒀으나, 당시 우리 경제가 제도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이 규정을 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저임금을 제도적으로 해소하고 더불어 노동자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도 도입이 불가피해졌다. 결국 우리 경제가 이 제도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해 1986년 최저임금법을 제정해 1988년 1월1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최저임금제도는 일정 수준 이상의 생계를 보장
“지옥 안 가고 천국에 가려면 착하게 살아” 서구의 종교는 죽음 이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들이대 인간을 계도했다. “역사가 너희를 심판하리라” 반면 동양에서는 후손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심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이 있었다. “이번 생에서 잘 살아야 다음 생에 좋은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어” 삶의 중단으로서 죽음 이후의 심판과 지속되는 삶으로서 역사적 심판이 겹치면 삶과 죽음이 섞여 힌두적 윤회가 된다.지금 작동하는 권력에 영향을 받거나 지금 옳다고 생각한 제도에 따르는 법의 심판보다 훨씬 넓은 사람들의 인식과 훨씬 긴 맥락에서
손해배상청구 소송 실무에서 직업이 없는 사람의 수입을 계산하는 경우 ‘도시일용근로자 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이 도시일용근로자 임금은 대한건설협회가 작성한 건설업 임금실태 조사보고서 중 ‘건설노임단가 보통인부 노임’을 이용한다. 이 조사보고서는 보통 상·하반기로 나눠 발표한다. 작업반장, 보통인부, 특별인부, 조력공, 비계공, 형틀목공 등의 1일 8시간 기준 노임단가가 기재돼 있다. 2023년 1월1일 기준 보통인부 노임단가는 15만7천68원으로 시급으로는 1만9천633원이다.건설업 임금실태 조사보고서는 일 단위로 계산되고, 도
윤석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가 후인 지난 15일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에서 그는 군수물자 지원, 인도적 자원, 정부 재정 지원과 재건 지원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으로 강력히 연대해 함께 싸워나갈 뜻을 밝혔다.이 말을 들으면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백의종군에서 풀려난 이순신 장군은 왜의 수군과 해전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조선 수군은 칠천량해전 대패로 매우 약화돼, 왕은 육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9천860원과 2.5%라는 숫자의 ‘허무함’ 또는 ‘황당함’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합의 없이 갈등적으로만 이뤄지는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해 노사 당사자들의 반성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말 조금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 공익위원들의 중재안이었던 9천920원을 선택할 수 없었을까.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최선의 결과가 아니라면 차악이 아닌 최악을 선택해도 괜찮을 걸까.‘최저임금 1만원이 아니면 받아드릴 수 없다’는 것은 사회운동적 구호로서는
지난해 가을 21년 서울살이를 마감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스무 해 넘게 이별했던 이산가족은 비로소 완전체가 됐다. 어린이집 다니던 큰딸은 20대 후반의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 큰딸은 저축과 동시에 부동산 시세에 부쩍 관심이 많다.2001년 내가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할 때 부산의 32평 아파트를 팔면, 강남3구는 아니라도 북한산 자락에 24평 아파트를 샀다. 그러나 지금은 부산의 32평 아파트를 팔아도 서울은 고사하고 경기도에 10평 소형아파트도 못 산다. 큰딸은 그때 무리해서 인(in)서울 했으면 엄마아빠 노후는 편했을 거라 말하
지난주 통계청의 6월 고용동향이 발표됐다. 2023년 상반기까지의 고용상황이 집계된 것이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만 1년의 고용성적표가 공개된 것이다.정부는 고용률이 역대 최고(63.5%)이며 취업자(+33만3천명)도 28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했다고 자평했다. 언론은 늘어난 취업자는 대부분 60대 이상 고령자(+34만3천명)이며 청년들의 경우 8개월째 취업자 감소가 이어지면서 6월에도 11만7천명 감소했다고 혹평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지난해 청년 취업자가 많이 증가했던 기저효과(2022년 6월 +10만4천명)의 영향이 크고
지난 12일, 미국 배우 노동조합(SAG-AFTRA)이 파업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써 지난 5월2일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는 미국 작가 노동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과 함께 63년 만에 영상산업에서 동반파업이 일어나게 됐다. 경향신문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언론이 맷 데이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파업에 동참 의사를 밝힌 소식을 전하며 이들을 배우‘조합’, 작가‘조합’으로 일컫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상·미디어산업의 대표적 노동조합이다.미국 작가노조의 뿌리는 1912
산업안전 분야 활동가들의 오랜 바람 중 하나는 ‘모든 노동자에게 모든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 교육기관 등 교육서비스업에는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관리책임자·관리감독자를 둘 필요가 없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개최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 경우에도 ‘청소·시설관리·조리’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업무의 위험성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는데, 이들이 고용노동부 고시인 ‘공공행정 등에서 현업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준’(현업고시)에 따른 ‘현업업무
무당층이 늘어나면 공백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거대 양당이 ‘누가 더 엉망인가’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선 더 그렇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위성정당을 자처하며 배지를 단 기본소득당이나 시대전환을 언급하고 싶진 않다. 기생 전략에 의존하는 이들에게 ‘제3지대’나 ‘대안’ 같은 수사를 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일련의 ‘신당’ 물결은 어떨까? 한동안 언론에 의해 ‘금태섭신당’으로 호명되던 ‘새로운당’이나, 삼성 자본 옹호자 양향자가 추진하는 ‘한국의희망’, 정의당발 여러 이탈그룹이 대두하고 있다. 이들로
1. 지난주 금요일, 재판과 상담 사이 바빴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하고, 사무실에서 상담해야 했기에 장맛비를 맞으며 분주했지만, 무엇보다도 그사이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느라 나는 바빴다. 노동조합 없이 노동자협의회를 통해서 임금 등 근로조건을 사용자와 교섭해 왔던 사업장에서 산재요양 노동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요양 기간 중 상여금 등 산재요양보조금을 청구한 사건이었는데,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면서 나는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교섭해서 노사합의서 등 협약으로 규정해 놓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2. 이 나라에서 오랜 기간 삼성그룹은 ‘내
성소수자 노동권 활동 단체인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퀴어동네)가 생긴 지 이번달로 꼭 1년이 됐다. 처음 1년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니까 한 번에 모이기 힘든 회원들과 워크숍을 떠났다. 행사를 준비하며 지난 활동을 돌아봤다. 지난해 2월, 퀴어노동권 문제에 공감하는 몇몇이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집회에서 만나 뜻을 다졌고, 같은해 7월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를 계기로 수습노무사 모임인 노동자의 벗 선후배 8명이 모임을 결성했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채 시작한 활동이 계속 바쁘게 이어졌고, 앞으로도 많은 일을 계획하고 있으니 뿌듯하면서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라며 그 기초를 부숴야 한다는 주장에 노동조합 경력으로 국회의원이 된 임이자 의원이 앞장서고 있다. 노조 경력을 가진 국민의힘 의원들도 ‘시럽급여’에 동조하는 형세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시럽급여’를 받아본 이는 없다.산재보험의 경우 1년에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이 고용노동부 공무원 출장비로 나간다. 안전보건 감독이라는 미명 하에 사용자가 노동자를 위해 낸 산재보험료에서 ‘삥땅’을 뜯는 것이다. 그러고는 산재보험 재정이 부족하다며 산재 인정을 엄격히 해야 한다거니, 산재 보상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느
지난 7일 토요일.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3차 집회를 개최했다. 필자도 ‘민변 집회·시위 인권침해감시 변호단’의 일원으로, 현장에서 위법한 공권력 행사를 감시하고 제지하기 위해 참석했다. 100명 이내의 인원이 참가해 넓은 인도의 절반 이하 범위에서 지극히 평화롭게 연좌해, 비정규직이 감내해야 하는 열악한 처우에 대해 성토하고 인간다운 노동조건의 보장을 요구했을 따름이다.공동투쟁이 남대문경찰서에 낸 1박2일 집회신고에 대해, 경찰은 밤 11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의 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