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처음 ‘그런’ 언어를 마주한 날은 국회에서 변호사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민원인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은 채 욕설과 함께 자기 할 말만 했고, 끝내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선을 뽑았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는 레퍼토리는 진부한 축에 속했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사무실로 찾아오는지 여부 등 집요함의 수준이 다를 뿐 타인을 무너뜨리는 ‘그런’ 무례함은 다채롭게 끊이지 않았다. 소속된 일터가 바뀌어도 빈도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법률원에서 사건을 맡기 어렵다고 하자 소리를 지르며 위협했던 사람도 있었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각종 궁금증을 해소하던 분은 자신이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하면 짜증 섞인 고성을 퍼붓기도 했다. 일을 하며 수많은 보람과 성취, 따뜻한 우애와 돈독한 신뢰를 기쁨으로 경험했다면 그 뒤편에서는 ‘그런’ 슬픔도 부지기수로 있었다.

다행히도 내게는 전화선을 뽑은 나를 나무라지 않았던 선배보좌관이 있었고 소리 지르는 간부와 더 이상 마주치지 않도록 담당 업무를 바꿔 준 원장이 있었다. 반면 “매사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업무용이 아닌 개인 연락처 공개에 조심스러운 우려를 표한 동료는 열정과 헌신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각자 버티는 것으로는, 운 좋게 만난 선배·관리자의 선의에 기대서는, 설령 열정을 부여잡는다고 해도 모두가 내내 똑같이 괜찮은 것이 아님을 실감했다.

각자도생하지 말라고, 노동자가 맨몸으로 대응하지 말라고 만들어진 것이 법이다. 헌법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 인간이 존엄을 잃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국가가 법으로 정하라고 선언했고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개별 법령은 이를 구체화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기준을 단순히 정해 뒀다는 점이 아니라 그것을 ‘사업주’가 마땅히 조치할 몫으로 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마치 성역인 것처럼, 학교 안 노동이 제대로 보호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담장을 잘 넘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서야 급식실 노동자의 건강 문제,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제외 문제 등이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정도다. 다른 일터와 마찬가지로 교사의 노동도 안전보건 측면에서 고민할 것이 많은데 서울 서초구 한 초등교사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일을 통해서 뒤늦게 터져 나오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교사의 노동도 안전하고 건강해야 한다. 정부는 학교라는 일터, 교육이라는 노동에 관한 산업안전보건 정책을 수립·집행해야 하고, 사업주인 교육감은 노동자의 건강한 업무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 교사를 지도·감독하는 교장에게도 교사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교사의 노동이 교육에 관한 국민의 권리·의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어떤 특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노동의 자리와 달리 볼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동안 교사들이 빈번한 무례나 폭력에 노출되고 이를 홀로 감당하면서 정신질환 등으로 아프거나 고통 속에 사망하는 일들은 계속 발생해 왔다. 국가에 의해 공무상 재해로 다수 인정됐음에도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 노력은 더디고 소극적이다.

예를 들어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는 고객을 대면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고객의 폭언, 폭행,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한 건강장해를 겪지 않도록 조치할 의무를 부담한다. 교육청과 교장이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알게 된 경우” 보호조치 의무를 정한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은 교사의 보고·신청 여부 뒤에 숨어 이를 개인 간의 일로 치부할 우려가 있어 산업안전보건법과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학생이나 학부모를 ‘고객’이라는 일반용어로 부르기 불편하다면 다르게 칭해도 무방하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직종별 매뉴얼 중 유치원 교사에 대한 것이 있으니 이를 참고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교사 개인이 자신의 노동의 자리에서 홀로 ‘그런’ 슬픔을 감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같은 헛된 말들이 학교를 안전하게 할 리 없다. 일터의 안전을 외쳐 온 앞선 싸움과 연결됨으로써 부디 모두가 무사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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