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환춘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산업안전 분야 활동가들의 오랜 바람 중 하나는 ‘모든 노동자에게 모든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 교육기관 등 교육서비스업에는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관리책임자·관리감독자를 둘 필요가 없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개최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 경우에도 ‘청소·시설관리·조리’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업무의 위험성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는데, 이들이 고용노동부 고시인 ‘공공행정 등에서 현업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기준’(현업고시)에 따른 ‘현업업무 종사자’다. 예를 들어 현업업무 종사자로 지정되면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위가 구성돼 노동자가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사업주 입장에서는 현업고시로 인해 안전보건관리책임자·관리감독자를 두는 등 안전보건관리체제 구축, 안전보건관리규정 작성 및 준수의 책임이 부과된다. 제조업을 예로 들면 안전보건관리책임자는 공장장, 관리감독자는 부서장이나 직장·반장 정도의 직책을 의미하는데 이들이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관리 업무를 수행한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라는 직책도 있으나 이들은 보좌 또는 지도·조언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산업안전 문제에서 권한과 책임을 가지는 주체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관리감독자가 된다.

교육현장에서 현업고시가 적용되면 산업안전보건법상 보호범위가 확대돼 모두가 환영할 것 같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최근 경남에서 조리업무와 관련해 영양교사·영양사(이하 ‘영양교사 등’)가 현업고시 적용을 놓고 경남도교육청과 다투는 일이 발생했다. 경남교육청은 안전보건관리체제 구축과 관련해 영양교사 등에게 ‘산업안전보건업무 이해와 실무 역량 향상 연수’를 받으라고 지시했고, 전교조 등 노동조합은 영양교사 등을 ‘업무담당자’로 지정해 산업안전 관련 업무와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노동조합은 연수방식 변경 등을 요구했으나 경남도교육청은 계획된 연수를 강행했다.

학교현장에서 안전보건관리책임자·관리감독자는 어디로 사라지고 영양교사 등이 안전보건관리체제 구축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일까? 노동부에 따르면 각 교육감이 ‘사업주’, 행정국장이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되고, 학교장이 ‘관리감독자’가 된다. 문제는 교육청이 영양교사 등을 학교(기관)별 업무담당자로 지정하면 이들이 관리감독자인 학교장의 지시를 받아 산업안전보건 업무를 수행한다는 노동부의 행정해석에서 발생했다. 즉 관리감독자인 학교장 업무의 ‘위임’은 불가하나 ‘업무지시’를 통해 하급자가 관리감독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무방하다는 것이다. 조리업무에 한정하면 영양교사 등이 업무담당자가 돼 본래 관리감독자인 학교장이 담당해야 할 산업안전 관리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위임’은 아니나 ‘업무지시’를 한다는 것의 결론은 책임 전가다. 행정해석에 따르면 관리감독자인 학교장이 영양교사의 직무에 대해 적법한 업무지시를 내리고 최종 확인·감독을 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관리감독자의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법상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반면 산업안전과 관련한 실질적 업무를 수행한 영양교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양벌규정의 적용에서 ‘행위자’로 평가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업주인 교육감과 관리감독자인 학교장이 부담해야 할 산업안전보건법상 형사책임을 영양교사 등이 법상 아무런 근거도 없는 업무담당자가 돼 떠안게 되는 것이다.

학교현장에서 조리업에 현업고시 적용을 통해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된다는 것은 인력과 자금을 투여해 안전보건관리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이지, 학교 구성원들에게 ‘안전보건관리책임자’ ‘관리감독자’ ‘업무담당자’라는 명칭을 붙이자는 것이 아니다. 각 지역 교육현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와 책임을 지는 주체는 교육청과 학교장이다. 산업안전 분야에서 노동자 참여 확대와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 전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교육청과 학교장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교육청과 노동조합이 지혜를 모아 학교현장의 산업안전을 위한 방안을 도출해 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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