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난해 가을 21년 서울살이를 마감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스무 해 넘게 이별했던 이산가족은 비로소 완전체가 됐다. 어린이집 다니던 큰딸은 20대 후반의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 큰딸은 저축과 동시에 부동산 시세에 부쩍 관심이 많다.

2001년 내가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할 때 부산의 32평 아파트를 팔면, 강남3구는 아니라도 북한산 자락에 24평 아파트를 샀다. 그러나 지금은 부산의 32평 아파트를 팔아도 서울은 고사하고 경기도에 10평 소형아파트도 못 산다. 큰딸은 그때 무리해서 인(in)서울 했으면 엄마아빠 노후는 편했을 거라 말하지만, 나는 그런 욕망에 휘둘리지 않은 게 무척 다행스럽다.

20년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도권 집값만 잔뜩 밀어올린 원흉은 두 거대 보수정당이다. 그다음 원흉은 언론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집값이 떨어졌다며 규제를 왕창 풀었는데도 조선일보는 지난 2월20일 경제섹션 1면에 ‘아파트만 규제 풀리니… 오피스텔 값은 더 떨어졌다’는 기사를 썼다. 오피스텔마저도 규제를 다 풀라고 정권을 겁박하는 꼴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오피스텔은 아파트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건설재벌과 부동산 투기꾼 비위를 잘 맞추니 오래오래 사랑받는 신문이 됐다.

조선일보만 그런 게 아니다. 경향신문은 지난 1월 9일 16면에 ‘급락 걱정 무색하게… 서울 아파트값, 지난해 2.96% 떨어졌다’며 1년 새 고작 3% 떨어진 아파트값을 걱정했다. 경향은 이 기사에서 지난해 말 서울 아파트 시가총액은 1244조 9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조원가량 줄었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2021년 말 서울 아파트값은 1년 전에 비해 20%가량 올랐다. 서울의 집값은 1948년 해방 이후 줄곧 이런 식이었다. 20~30년쯤 꾸준히 해마다 10~100%씩 상승하다가 어쩌다 한 번쯤 고작 2~5%쯤 떨어졌다.

동아일보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에 군불을 열심히 지폈다. 동아일보는 지난 1월 5일 2면에 ‘본보기집(모델하우스)에 문의전화 30% 증가… 둔촌주공 주변 떴다방 등장’이란 머리기사를 썼다. ‘떴다방’하면 그래도 80년대까진 부동산 투기의 주범이라며 몰아세우기 바빴던 우리 언론은 이제 ‘떴다방’마저 반갑다고 꼬리친다. 누구를 위한 언론인가.

지난 1월 3일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 발표를 받아쓴 우리 언론은 한결같이 ‘규제 확 푼다’며 반겼다. 경향신문은 1월 4일 1면에 ‘분양가 상한·실거주 의무도 폐지, 규제 완화 폭탄’이라고 1면 머리기사를 채웠고, 조선일보는 ‘대출·실거주·전매 규제 확 푼다’는 1면 머리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도 ‘기승전문재인정부’를 탓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 작은 제목을 ‘문 정부 대못 뽑은 1·3대책’이라고 달았다. 부동산이 급등했던 70년 넘는 세월 동안 민주당 정권은 제2공화국을 합쳐도 고작 16년에 불과하다는 팩트쯤은 잊은 지 오래다.

우리 언론이 왜 이다지도 부동산 경기부양에 용을 쓰는지 모르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확 늘리겠다고 장담했던 ‘공공분양’ 계획이 발표된 6월 초가 돼서야 언론의 속내가 드러났다. 동아일보는 지난 6월 8일 경제섹션 4면에 ‘한강뷰 서울 수방사 부지 등 공공분양… 올해 1만채 사전청약’이란 머리기사를, 중앙일보도 같은 날 같은 지면에 ‘뉴홈(공공분양) 사전청약 3000가구 확대… 한강뷰 알짜단지도 나와’라는 머리기사를 각각 썼다.

두 신문이 한강뷰를 극찬한 서울 수방사 부지에 들어설 공공분양 아파트는 18평도 안 되는데 분양가가 9억에 육박한다. 대한민국 청년 중 이걸 선뜻 살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분양 정보를 담은 광고인지, 홍보인지 모를 이런 기사 뒤엔 건설재벌의 신문광고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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