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효중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현장)

“그 일을 하는 이유가 뭐야?”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나 술 한잔 하던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던진 질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는 내가 노무사로 살고 있는 이유를 가볍게 물어본 것인데, 나는 그 질문에 간단 명료하게 답변하기가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단순한 질문에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을 만큼 내면이 정돈돼 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해 당황했던 것이다.

“그 일을 선택한 계기는 뭔데?”

앞선 질문에 “그냥 뭐…”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던 나에게 이 친구가 한 번 더 질문했다. 이 질문에는 그래도 답할 내용이 좀 있었다. 대학 졸업할 즈음에 구조조정 투쟁현장에 방문했다가 300일 넘게 고공농성하던 노동자를 봤던 것이 계기가 됐다. 그 이후에 노동자 권익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등.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됐지만 내면에는 위 두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노무사 일을 선택한 계기’는 그나마 답할 거리가 있었던 반면 ‘노무사 일을 하고 있는 이유’에는 쉽게 답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당혹감이 계속됐다. 몇 년 전 내가 노무사를 선택한 계기가 됐던 투쟁현장의 그 장면이, 내가 현재 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으로까지 자리잡지는 못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때 투쟁에 헌신하던 분들이 그냥 멋있게 느껴져서 별 생각 없이 이 일을 선택했던 것은 아닌지, 지금의 나는 너무 철학 없이, 개념 없이 무의미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순간이 좀 있나?”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눈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 같은 사무실 선배 노무사가 또 당황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후배 노무사들이 우리 사무실에 견학 차 오기로 한 날이었는데, 내가 노무사로서 보람을 이야기하면 좋을 것이라는 취지에서 하신 질문이었다. 그날 후배 노무사들을 마주했던 저녁식사 자리가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부담스러워. 그냥 윤 노무사가 그동안 해 온 일들을 말하면 되는 건데.”

후배 노무사들을 무사히(?) 보내고 나서 선배 노무사와 술을 한잔 더 했는데, 사실 오늘 식사자리가 너무 부담스러웠노라고 고백한 나에게 선배 노무사가 한마디 했다. 그동안 수행해 왔던 노동자 상담과 사건, 노동조합 자문활동 등을 상기해 보면 될 일을, 왜 스스로를 거창하게 포장하지 못해서 움츠러들고 있느냐고 일침을 가한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니 노무사로서 보람 있었다고 떠올릴 장면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해고 사건이 마무리된 후 “서울 가면 소주 한잔 사겠다”며 어깨를 툭 치던 의뢰인, 권고사직을 당한 후 몇 주에 걸쳐 대응한 끝에 업무에 복귀한 뒤 “노무사님 덕분에 든든했다”고 전화해 줬던 내담자, 이런저런 작업을 함께한 뒤 “고생했다”며 술 한잔 따라 주던 노동조합 위원장, 등등.

그동안 노무사로서 일상에 펼쳐진 장면들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너무 쉽게 지나쳐 왔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노동자가 맞닥뜨린 부당한 상황에 함께 대응할 수 있다면,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위해 하는 활동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모든 것은 몇 년 전 나에게 노무사를 했던 그 투쟁현장의 장면과 동등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거창한 철학이나 특별한 개념이 아니라, 내 일상에 펼쳐지는 장면들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것이 나를 지탱하는 진정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내면의 당혹감이 시원하게 해소된 것 같지는 않다. 아마 노무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충분히 농익지 못한 탓이다. 그러니 앞으로 주어지는 일들에 충실하면서, 그 일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마음에 새기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내면에 의미 있는 순간들을 쌓아가다 보면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 내가 이 삶을 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조금씩 더 확신을 얻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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