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

1.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 이 무슨 노조답지 않은 요구인가. 노동조합이면 노동조합답게 제대로 노조하겠다고 해야지, 노사협의회 설치를 요구해 투쟁하다니 한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이 나라에서는 당신이 한심하다고 여길지 모를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사용자가 사업장에 설치하지 않아서 노동조합이 하는 요구고 투쟁이겠지만, 그 사업장 대부분에서는 노사협의회로 취급되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를 노사협의회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서 사용자와 노동자, 노동조합은 긍정과 부정으로 나뉘고, 노사협의회가 아니라고 보는 노동조합은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고 요구해 투쟁하기도 한다.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는 이행명령을 받은 LG전자 경우가 그러했다.

2. “인사, 노무 등이 독립돼 하나의 회사처럼 운영되는 것도 아닌데 무슨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사업장이라는 거야.” 반복된 질문에 나는 짜증 섞인 대답을 하고 말았다. 회사가 에어컨·티브이·연구소 등 9개 단위를 정해서 노사협의회 설치를 추진하자 노동조합이 질문했고, 이에 우리 법률사무소 담당노무사가 거듭 질문했다. 도대체가 사업본부, 센터란 것들이 그 본부장, 센터장이 소속 근로자에 대한 인사, 노무 등에 관해서 대표이사 사장처럼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 단위로 노사협의회라니 도대체가 말도 되지 않는다고 나는 대답해야 했다. 회사에서 본부(5개)·센터(7개)·부문(7개)·기타(3개) 등 22개 조직 중 9개를 선정해 노사협의회 설치를 추진한다는 말이다. 가만히 들어보니 인사, 노무 등에 관한 일부 권한을 그 본부장, 센터장 등이 갖고 행사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근로조건의 결정권이 있는 사업장에 해당해서 그 단위로 노사협의회를 설치할 수 있다며 사측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LG전자에서 올해 상반기 내내 벌어졌던 일이다. LG전자사람중심 노동조합을 자문하고 있는 터라 이렇게 LG전자에서 노사협의회 설치를 둘러싸고 사측이 벌인 말도 되지 않는 일을 나는 알 수밖에 없었다. 대표이사 사장이 최종 결정권한을 갖고 있고, 사업본부장, 센터장 등은 단지 일부 사항을 전결해서 행사하거나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에 불과했다. 도무지 LG전자에서는 사업본부, 센터 등이 하나의 회사처럼 근로조건의 결정권이 있는 사업장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 대답은 처음부터 단호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과 담당노무사가 거듭 질문하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7월17일자 <매일노동뉴스>에서 “기업이 사업부문별로 노사협의회를 쪼개어 설치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노동부 판단이 나왔다. 소속 노동자 전체의 노동조건을 논의할 수 있도록 기업 전체 단위로 노사협의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취지다”라는 기사 첫머리를 읽을 때였다. “LG전자 노사협의회 쪼개기는 위법”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그동안 LG전자에서 노사협의회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까지 정리돼 있었다. 기능직과 사무직, 부분별 노사협의회 등 복잡한 것 같지만, 쟁점은 단순했다. LG전자에서 노사협의회가 적법하게 설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조가 진정을 냈고, 노동부가 사측에 설치하라고 했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노조가 문제삼기 전까지는 LG전자에서는 기능직과 사무직을 갈라 교섭대표노조인 기능직 중심 노사협의회을 두고, 이에 별개로 사무직은 ‘주니어보드(JB)’라는 이름으로 노사협의 기구를 설치해 운영했었다. 교섭대표노조가 회사 전체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아니다 보니 사측은 이렇게 구분해서 운영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노조 없는 사무직을 별도 기구로 하는 것이 인사, 노무관리에서 이득이라고 여겨서인 것 같기도 하다. 이름있는 대기업에서 이러는 게 처음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의 사업장 내 기능직과 사무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노사협의회를 분리해 운영하고, 거기다 사무직은 듣도 보도 못한 ‘주니어보드(JB)’이라니 말이다. 당연히 적법하게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고 노동부가 사용자인 LG전자에 명령했어야 했다. 노동조합 진정에 지난해 1월 노동부는 기능직과 사무직의 직종을 통합해 노사협의회를 설치하고 근로자위원도 적법하게 선출하라고 행정지도를 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사용자 LG전자가 9개로 구분해 노사협의회를 설치·운영을 추진한 것이다.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은 노사협의회를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사업(장)에 설치하되, 다만 예외적으로 지역을 달리해 설치하도록 할 뿐이다(4조). 지역을 달리해서 설치하는 것은 아니니 LG전자에서는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은 대표이사 사장을 통해 LG전자라는 회사에 있다. 회사 전체에 노사협의회를 설치해 운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조의 진정에 재차 노동부는 회사 전체로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고 이행명령했다.

3. LG전자 사건을 살펴보면, 노동조합은 “노사협의회를 달라”고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회사에 적법하게 노사협의회가 설치돼 운영하지 않으니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노동부에 진정했고, 오늘도 사용자를 상대로 요구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는 것은 이 나라에서 법으로 사용자에 명령한 것이다. 그러니 굳이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고 진정하고 요구하는데 매달릴 일도 아닐 수 있다. 특히 노동조합은 노사협의회와는 다른 노동자단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 나라에서 노사협의회를 보면, 사용자는 노동조합을 대신하는 것인 양 설치·운영해 왔다. 포스코·삼성 등 대표적인 대기업에서 노동조합과 노사협의회의 모양을 살펴보면 분명히 사용자의 이런 태도가 보인다. 실제로 임금, 복리후생 등 근로조건까지도 노사협의회에서 정하는 식이다. 노사협의회면 되는데 굳이 힘들게 노동조합할 필요가 있냐는 모습을 연출해 왔다. 노동조합이 있어도 이런 식인데 나머지 80%가 넘는 무노조 사업장에서 노사협의회의 모습은 가관일 수밖에 없다. 마치 노동조합처럼 취급받으면서 노동조합을 갈음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를 달라”고 진정하고 요구하는 것이니,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노동조합은 적어도 이상하다고 여겨야 한다. 이렇게 이상하게 된 것, 즉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 설치를 요구하고 진정하는 것은 노동조합이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하고 협약을 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는 소수노조로서 노동자, 조합원을 위해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보니 노사협의회를 통해서라도 돌파구를 찾겠다 하는 것이겠다. 다수노조인 교섭대표노조가 다행히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아닌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LG전자에서 사람중심노조가 그런 것처럼 “노사협의회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4. 노동조합은 노사협의회에 적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노사협의회를 활용한다. 사용자가 기를 쓰고 노사협의회로 노동조합을 갈음하려 들고, 실제로 대부분 사업장에서 갈음하지만 노동조합은 노사협의회와 친하다.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대표자가 위촉해 근로자위원을 정해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 구성에 참여할 수 있다. 둘째는 현실적으로 노동조합의 기능이 임단협 사항에 한정돼 노사협의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였을까. 결코 노동과 노동조합에 친하다고 말할 수 없는 윤석열 정부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임에 관해 과반수노조(대표)의 권한을 제한하려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와 친한 것을 떼놓으려고. 이런 두 가지 이유가 없어진다면, 즉 과반수노조가 아니어서 노사협의회 구성에 참여하기 어렵고,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 기능까지도 할 수 있다면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에 친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된다.

자문을 맡고 있는 노조가 최근 이런 질의를 했다. 과반수노조 지위를 잃어 더는 근로자위원 위촉권을 행사하지 못해 노사협의회 구성에 참여할 수 없다며 대응을 문의했다. 어떻게 해서든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출에 참여해야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질의다. 방법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수밖에 없다. 물론 노사협의회에 매달리지 않고도 노동조합으로서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쉽지 않지만 말이다. 노사협의회가 하는 기능을 노동조합이 행사하면 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근로자참여법, 어디에도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의 기능을 대신할 수 없다고 규정하지 않는다. 물론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의 기능을 하려고 사용자에 교섭을 요구한다면 사용자가 응할 의무가 없다고 할 테지만, 그것이 위법한 교섭 사항이 아니다. 임단협 등에서 끊임없이 포함시켜 해마다 요구해 하나하나 협약으로 체결하면 된다. 과반수노조의 지위 상실을 대비해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의 기능 사항들을 단체협약 사항으로 정해 둘 필요가 있다. 노사협의회 구성에 노조 참여권 제한하려는 시도까지 하는 지금부터라도 그래야 한다.

이렇게 보면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노동조합은 노사협의회의 기능을 빼앗기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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