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진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 여수진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성소수자 노동권 활동 단체인 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퀴어동네)가 생긴 지 이번달로 꼭 1년이 됐다. 처음 1년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니까 한 번에 모이기 힘든 회원들과 워크숍을 떠났다. 행사를 준비하며 지난 활동을 돌아봤다. 지난해 2월, 퀴어노동권 문제에 공감하는 몇몇이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집회에서 만나 뜻을 다졌고, 같은해 7월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를 계기로 수습노무사 모임인 노동자의 벗 선후배 8명이 모임을 결성했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채 시작한 활동이 계속 바쁘게 이어졌고, 앞으로도 많은 일을 계획하고 있으니 뿌듯하면서도 감사한 1년이었다.

그동안 퀴어동네는 성소수자 노동상담을 했고 때에 따라 토론문을 썼다. 학회와 세미나, 기자회견을 마다하지 않았고 집회에도 부지런히 나갔다. 노동법 교육과 설문조사를 했고 책자를 만들 준비도 하고 있다. 활동은 여느 노노모 회원들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처음에 막막하게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연대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준 사람들 덕이다. 퀴어동네가 생기자마자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았고 여러 단체 활동가들이 우리 활동방향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었다. 퀴어동네의 성소수자 상담을 위한 웹사이트를 만들고, 1년도 안 된 단체에 사업비를 지원했으며 포럼 등에 초대해 의견을 들어준 이들도 있었다. 언제든지 함께 하겠노라고 응원해 준 노무사 동료들도 큰 힘이 됐다.

지난달에는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를 맞아 퀴어노동자를 위한 노동법 강좌를 열었다. 이름은 ‘우리끼리 노동법’. 이 글이 실리는 날은 그 마지막 강좌가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끼리 노동법은 교육을 통해 법 지식을 나누는 의미도 있지만 ‘퀴어끼리’ 모여 노동권을 이야기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퀴어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은 경험을 서로 나눔으로써 그 목소리가 언어화돼 더 크게 들리길 원하기 때문이다. 시작 전에는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가 응답해 줄지 전혀 알 수 없어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준비된 강의실을 꽉 채워줄 만큼 사람이 모였다.

우리는 퀴어가 직장에서 어떤 일을 겪는지 다 알 수 없다. 성소수자 집단 안에서도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 성별표현 차이에 따라 겪는 경험은 저마다 다르고, 한 사람이 다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성소수자가 공통으로 겪는 문제는 ‘성소수자인 나‘ 그대로는 노동의 자격을 얻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어떤 인터뷰에서 한 노동자는 커밍아웃할 수 없는 회사생활을 빗대 ‘항상 영어를 하며 사는 기분’이라고 했다. 말을 하기 전에 항상, 이 말을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어떤 단어를 말해야 하고 말하면 안 되는지 생각하고 검열한 후 말해야 하므로 너무나 피곤하다고 했다. 퀴어노동자에게는 미세차별, 남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인간관계에 대한 한계, 정체성과 다른 성별표현 강요, 차별적 괴롭힘과 혐오 등이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제약이 된다. 이로 인해 인간관계와 취업 승진과 커리어 등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것이 퀴어노동자가 일의 자리에서 겪는 어려움이다.

퀴어동네의 문제 인식은 ‘성소수자인 나’와 ‘노동자로서의 나’를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온전한 나를 포기하고 거짓말을 해야만 얻어지는 노동의 자격. 이런 차별도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

작년, 퀴어동네를 처음 소개했을 때 친구가 축하를 전하며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동네의 어원이 되는 한자 동(洞)은 물 수(水)에 같을 동(同)자를 쓴다. 같은 우물을 마시는 사람들, ‘동네’는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이 와서 같은 우물을 나누어 마시는 곳이라고. 함께 우물을 마시는데 어떠한 자격도 두지 않는 것이 평등이라 믿는다.

1주년 워크숍의 다음 날은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회원 8명이 모두 함께 을지로에 나가 깃발을 올렸다. 행진하다 보니 어느새 동료와 친구들,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함께해 8명보다 더 많은 사람이 퀴어동네 깃발과 함께 걷고 있었다. 찜통 같은 날씨였지만 발걸음에 더욱 힘이 났다.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 걸을 수 있기를 바라며 또 한 해를 보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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