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 12일, 미국 배우 노동조합(SAG-AFTRA)이 파업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로써 지난 5월2일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는 미국 작가 노동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과 함께 63년 만에 영상산업에서 동반파업이 일어나게 됐다. 경향신문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언론이 맷 데이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파업에 동참 의사를 밝힌 소식을 전하며 이들을 배우‘조합’, 작가‘조합’으로 일컫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상·미디어산업의 대표적 노동조합이다.

미국 작가노조의 뿌리는 1912년 결성된 작가 조합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에 1921년 결성된 드라마 조합, 영화작가 조합 등이 합쳐져 1954년 미국 작가노조가 출범했다. 한편 1927년에는 몇몇 제작자와 배우들의 주도로 미국 영화 아카데미가 설립되는데, 우리에게는 주로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 조직은 영화산업 내 교섭 수행을 주요 역할로 자임했다.

이들 노조는 1930년대부터 제작사와 단체교섭을 벌였는데, 1935년 사용자의 단체교섭 의무를 법제화하는 연방노동관계법(NLRA)이 제정되자, 제작자들은 영화아카데미와의 협약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산업환경을 만들어 내려 했다. 일례로, 영상의 크레딧에 누구의 이름이 올라갈 것인지를 제작사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등이었다. 이러한 불공정 협약에 반대하는 작가노조는 1936년부터 아카데미상 보이콧, 독자적 단체교섭 요구 등 투쟁을 벌였고, 1937년 연방노동관계위원회로부터 교섭대표노조로 승인을 받아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90년 전에도 제작사들은 영상산업의 작가들은 ‘근로자’가 아니라 ‘자영인’이라고 주장하며 단체교섭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제작사들은 작가들의 노무는 “본질적으로 창의적이며 전문적이어서 기계적이고 단순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노동법이 적용되어서는 안 되며”, 작가들은 “고소득자”이며 “출퇴근 시간이나 근무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고, 고정급을 받지 않으며, 자신의 구상대로 원고를 작성할 수 있으므로”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거의 1세기 전의 주장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사법부와 정부에 의해 지겹게 반복되고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1937년 연방노동관계위원회는 영상산업 작가들을 근로자로 인정했다. 위원회는 작가 업무의 전체적 내용을 제작사가 정하며, 비록 작가들의 출퇴근 시간 등이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업무에 전념할 의무가 계약에 규정되어 있는 점 등을 중요하게 봤다. 또한 영상산업에 종사하는 다른 근로자들, 특히 계약직이나 일용직 근로자들의 노무제공형태와 이들 ‘프리랜서’의 노동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도 인정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취업규칙이나 계약서상 출퇴근 시간 및 근무장소에 대한 명시적 규정을 받지 않더라도, 사용자가 업무의 전체적 내용을 정하고, 그 업무 수행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투여할 수밖에 없다면 실질적으로 종속적 노동자로 인정한 것이다. 또 프로젝트 단위로 고용이 간헐적, 불안정하게 이루어지는 산업 전체의 노무제공의 실태가 프리랜서의 노동에 반영돼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 100년간 미국 작가 노조는 영상·미디어산업의 변화에 발맞춰 조합원들의 노동권을 옹호하기 위해 싸워 왔다. 1930년대부터 영상 크레딧에 누구의 이름이 올라갈 것인지를 단체협약을 통해 정하도록 했고, 2007~2008년 3개월여 파업을 통해 원고료 인상 및 재영상분배금에 대한 권리를 쟁취했고, 올해 파업에서는 AI(인공지능) 활용 규제 및 이에 대한 작가·배우의 권리 보호를 요구하고 있다.

1만1천여명이 소속된 작가노조의 파업에 배우노조의 파업까지 가세하면서 40억달러(약 5조원)가 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이나 정치권 어디에서도 노조에게 파업 철회를 협박하거나, 귀족노조의 떼쓰기라고 돌팔매질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저임금·장시간·위험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건설과 화물 비정규 노동자의 단체교섭과 파업을 ‘특권 카르텔’ ‘건폭’이라 매도하며, 사람 잡는 구속·기소와 손해배상 책임 추궁에 정부와 사법부가 앞장서는 나라에서 보는 미국 작가·배우노조의 파업 소식은 정말로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이 느껴진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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