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주 금요일, 재판과 상담 사이 바빴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하고, 사무실에서 상담해야 했기에 장맛비를 맞으며 분주했지만, 무엇보다도 그사이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느라 나는 바빴다. 노동조합 없이 노동자협의회를 통해서 임금 등 근로조건을 사용자와 교섭해 왔던 사업장에서 산재요양 노동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요양 기간 중 상여금 등 산재요양보조금을 청구한 사건이었는데, 상고이유서를 작성하면서 나는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교섭해서 노사합의서 등 협약으로 규정해 놓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2. 이 나라에서 오랜 기간 삼성그룹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는 안 된다’는 ‘무노조’ 경영원칙을 고수했다. 조선소에서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인 노동자들에게 지급해 오던 상여금 등을 2016년 수주 급감 등 경영악화를 내세워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법원에 그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유감스럽게도 1, 2심 모두 그 청구가 기각됐다. 1심에서 기각되자 항소해서 부산고등법원(창원)에서 2심 항소심 사건이 진행됐는데, 나는 바로 이 항소심 사건을 변론했었다. 1심에서 패소하고 사무실에 찾아와 사건을 맡아달라고 하던 때도, 재판을 마치고 법정 밖에서 만났을 때도, 최근 대법원에 상고해달라고 상담했을 때도 원고들 대표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노동조합이 아니라서, 노동자협의회라서 노동자들이 제대로 권리를 확보하고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고 줄곧 말해왔다. 그들의 말에는 분노와 절망, 원망이 섞여 있었다. 산재요양 중인 노동자에게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는 급여 외에 회사가 상여금 등 산재요양보조금을 지급해 근무 시 지급받는 급여 수준과의 격차를 줄여왔던 것인데, 갑자기 회사가 경영 악화를 내세워 지급하지 않는데도 노동자협의회가 막아주지 않았던 것에 분노하고, 적극적으로 노동자협의회가 나서주지 않는 상태에서 소수로서 막강한 사용자 자본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데 절망하며, 다른 조선사업장처럼 노동조합이 조직돼 활동하고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원망했다. 당연한 분노와 절망, 원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을 대리해서 소송하고 있어서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당신은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만큼 객관적이다. 삼성중공업에서는 다른 조선사업장 사례를 보고서 1989년부터 산재요양중인 노동자에게 상여금 등 산재요양보조금을 지급해 왔지만, 유감스럽게도 노동자협의회는 임단협 등 노사 협상을 통해 그에 관한 노사합의서를 체결해 두지 않았다. 지급한다는 노사합의서만 있었더라면 그 지급을 청구한 소송은 원고 노동자들의 승리로 마무리됐을 것이다. 아니, 소송하기 전에 회사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상여금 등을 산재요양중인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 않기로 하는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노동자협의회라서 노동조합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았다’고 믿을 만큼 객관적이다.

3. 이렇게 노동자협의회를 말하고 있자니 얼마 전 사무실에 찾아왔던 한 노동조합이 떠오른다. 삼성그룹사였다가 매각돼 한화그룹사로 된 사업장이었다. 우리 법률사무소에서 그 매각 과정에서 노동자위원회의 조직, 활동을 자문했었다. 오랫동안 삼성그룹사로 있다 보니 매각 당시 노동자들은 노조하기를 주저했다. 매각 과정에서 노동자의 고용 등 권리를 확보하고 지켜내야 할 텐데, 그걸 위해 활동해야 할 노조하기를 주저했다. 노동자의 고용 등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노조해야 한다고 교육하고 자문했다. 그렇지만 노조하기를 주저하면서 노동자위원회를 조직해서 활동하는 걸 택했다. 노조 규약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규약 마련에 단체협약과 같은 노사합의서 체결을 자문하면서도 결국은 노조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 한화그룹 사업장에서 얼마 전에 노동자위원회에서 활동하던 노동자들 일부가 노동조합을 조직했고, 그 위원장 등이 찾아와 노동자위원회와의 갈등을 말했다. 당연히 나는 노조해야 한다고 했고, 노동자위원회 위원장 등을 만나 노조로 통합하는데 적극 나서라고 조언했다. 이제는 매각 당시와 달라 더는 주저할 게 아니니 노조로 통합해야 한다고, 통합된 노조를 자문해 주고 싶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아무리 노동조합처럼 조직하고 활동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노동조합에 준해서 취급될 수 있을 뿐이지, 노동조합일 수는 없다. 노동자협의회, 노동자위원회 등 회원인 노동자를 위해서 활동하는 조직의 명칭을 갖다 붙인다 해도 노동조합과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다. 바로 노조하길 주저하는 강이고, 그것으로 노동조합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노동조합과 별반 다름 없이 활동한다고 해도 노조하기를 주저하는 간부와 회원 노동자의 노동자협의회, 노동자위원회는 노동조합의 길을 갈 수가 없다. 사용자 자본과 대립이 격렬할수록 노동조합의 길에서 멀어지게 된다. 한 번 고개를 돌려보라. 어느 노동자협의회(위원회)가 노동조합의 길을 가고 있는지 찾아보라. 이 나라에서 하나도 노동자협의회는 노동조합의 길을 가고 있지 않다고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혹 당신은 노동조합이라고 모두 노동조합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노동자협의회와 다름없는 노조도 있고, 심지어는 그보다 못한 어용노조도 수두룩하다며 노조를 말하는 나를 비난할 수도 있겠다. 요즘 임금피크제를 상담하고 소송하다 보니 노조를 비난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노조가 동의해 주지 않았으면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지 않았을 것인데, 노조가 해줘서 정년을 앞두고 수년 동안 수십 퍼센트 삭감된 임금을 받게 된 것이니 그 적용 대상자들에겐 노조는 노동자를 위해서 활동한다고 볼 수가 없다.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때는 과반수 노조가 있는 경우 그 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다(근기법 제94조 제1항 단서).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은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받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대부분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는 노동조합 조합원 범위에서 제외된 고위직급의 노동자들이라서 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일까. 노조가 동의해 주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사용자가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임금을 삭감할 수 없는 것인데, 가만히 있지 않고 노조가 동의해 줘 사업장마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돼, 적용되고 있는 것은 그 적용 대상자들이 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일까. 적어도 임금피크제를 두고서는 노동자협의회와 다를 게 없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금융기관들에서, 공공기관들에서 운영되고 있는 임금피크제는 과반수 노조의 동의로 도입된 것들이다. 총액인건비를 묶인 조합원의 임금 권리를 위한 것이든, 높은 평가를 받아 성과급을 많이 받기 위한 것이든, 아니면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사용자의 압박에 의한 것이든, 어쨌건 노조가 동의해서 도입된 것이 분명하다. 임금피크제는 노동자의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제도다.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저하하는 것에 동의해 준 것이다. 조합원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합원이 나이를 먹게 되면 적용을 받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분명히 임금피크제에 있어서는 노동조합은 자신의 길을 가지 못했다. 임금피크제를 두고서는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임금 권리를 삭감시켰노라고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닐까.

4. 다시 말하지만, 노동자협의회는 노동조합이 아니고, 노동자협의회는 노동조합의 길을 갈 수 없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근로조건 및 사회경제적 지위의 유지와 향상을 위해서 교섭하고 쟁의하도록 조직된 유일한 노동자단체다. 당신이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제1항과 그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서 입법된 노조법 제1조만 읽어도, 바로 알 수 있다. 아무리 윤석열 정부에서 노사협의회제도를 개편해서 노동조합 활동을 무력화시키려 해도 이러한 노동조합의 길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였나. 지난 대선부터 오늘까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이 나라에서 대표적인 노동조합의 총연합단체들과는 달리, MZ 노조나 제3노총을 지향한다는 노조들에 대해서는, 각종 노동정책 추진에서 그 의견을 수렴한다며 윤석열 후보(대통령)는 물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집권 국민의힘 의원들까지 찾고 수시로 간담회를 가져왔다. 기업 활동을 위해서, 자주적이고 투쟁적인 노조 활동에 반감을 드러내면서 노동자의 자유를 억압하고, 연장근로 산정의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등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낮춰 사용자 자본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 정권인데도, 노동조합과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관계를 가져 가려는 모습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 오늘 이 세상은, 이 나라는 노동조합을 부정할 수 없기에 (국가)권력은 이런 모습을 연출해 왔던 거였나. 장맛비가 지겹게 내리는 2023년 7월 오늘, 이렇게 노동자협의회는 아니라고, 노동자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길을 가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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