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 34조와 35조에 최저임금제도 실시 근거를 뒀으나, 당시 우리 경제가 제도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이 규정을 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저임금을 제도적으로 해소하고 더불어 노동자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도 도입이 불가피해졌다. 결국 우리 경제가 이 제도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해 1986년 최저임금법을 제정해 1988년 1월1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최저임금제도는 일정 수준 이상의 생계를 보장함으로써 노동자 생활 안정에 기여하는 등 노동시장 내 저소득층의 소득수준을 높이는 대표적 제도로 역할을 해 오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제도는 최저임금선에 위치한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높이며 소득분배를 개선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함에 따라 이중노동시장 구조를 해소할 방안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지난 19일 최저임금위원회는 2024년 최저임금을 시급 9천860원으로 결정했다. 110일간의 논의, 총 열다섯 번의 회의, 열 번의 수정안을 거쳤음에도 2023년 최저임금의 2.5%(240원) 인상에 그쳤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을 올해 3.5%, 2024년 2.5%로 전망하고 있으며 내년이면 상여금·복리후생비가 100% 산입되는 산입범위 여파로 인해 실질임금은 삭감될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에 극단적으로 포괄임금제와 주 69시간제가 결합하게 된다면 노동환경은 악화할 것이 분명하다.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행태를 보면 저임금을 해소하고 노동자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최저임금제도 목적을 인지는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의 위선적인 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앞세워 ‘이분화된 노동시장의 임금격차를 줄이겠다’고 선포한 바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최저임금 인상이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남성노동자의 임금수준 역시 끌어올리지만, 최저임금선에 주로 여성노동자가 집중된 우리나라 특징으로 인해 결국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시장 내 임금격차를 줄이게 된다. 이는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체 임금노동자 중 중위임금 3분의 2에 미달하는 저임금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010년 남성 중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16.1%였으나, 여성은 무려 40.5%였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 인상됨에 따라 여성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역대 가장 큰 폭인 5.3%포인트 감소한 30%였고, 2019년 최저임금 10.9% 인상에 힘입어 다시 한번 4.9%포인트 감소한 26.1%를 보였다. 동일기간 남성 중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12.1%에서 11.1%로 1%포인트 감소한 것에 그친다. 이처럼 최저임금의 인상은 남성 저임금 노동자 비중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으나, 여성 저임금 노동자를 줄이는 효과가 매우 크다. 즉 이분화된 노동시장의 임금격차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도달할 수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2024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2006년 이후 두 번째로 낮으며 오히려 실질임금은 하락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많은 연구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지만, 반대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연구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객관적 통계를 통해 이미 증명된 사실은 최저임금 인상에도 노동시장 내 최저임금선에 집중된 5명 미만 사업장 등 영세사업장 내 고용은 증가세를 띄고 있으며,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올려 노동시장 내 소득양극화를 축소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경영계의 주장과 달리 국세청 자료를 보면 최저임금의 지속적인 인상에도 사업장 폐업률은 감소세로 보고된다. 즉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자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이기적인 발상이 아니라 노동자에게는 적정 수준의 소득보장을 하고, 소득양극화와 성별 임금격차 등 다양한 구조적 문제를 개선한다. 정부가 노동시장을 조금라도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노동개악을 멈추고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선과 함께 양극화를 축소하기 위한 최저임금 인상을 해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jhjang8373@inoch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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