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지난 15일 오전 경북 문경, 사흘째 쏟아져 내려오는 비에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지역 농산물 가공업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도 물에 잠기고 토사에 파묻혔다. 4년 전, 세 딸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태국 출신 30대 여성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8월 경기도 화성에서도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다량의 토사물이 두 동의 컨테이너를 덮쳤다.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40대 중국 국적 이주노동자가 1층에서 몸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2020년 8월 경기도 이천에서 호우에 산양저수지의 둑이 무너지면서 1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들 중 80%는 인근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순식간에 물에 잠긴 이들의 숙소는 논밭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였다.

같은해 12월 경기도 포천, 30대 여성 이주노동자가 농장 비닐하우스 안 가건물에서 한파 경보가 발령된 영하의 날씨를 홀로 견디다 목숨을 잃었다.

그의 죽음 이후 이주노동자 주거권과 노동권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정부는 노사가 참여하는 '외국인근로자 숙식비 사업장 변경 관련 실무 TF'를 구성했으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과 요구를 반영한 실질적이고 민주적인 논의가 이뤄지지는 못했다. 정부는 올해 3월 수개월 만에 겨우 재개된 회의에서 노동계의 요구를 무시한 일방적인 안을 제출하고, 지난 5일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어 정부안을 졸속 의결했다. TF를 구성하게 된 배경인 주거권 개선 관련 주된 요구인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같은) 가설 건축물의 숙소 활용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은 제외됐다.

참사는 거듭된다. 지난달 어느 농촌지역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근로계약서에는 주택을 숙소로 제공한다고 적혀 있었으나 실제 그에게 제공된 곳은 비닐하우스 안 작은 컨테이너였다.

폭염과 혹한, 폭우와 가뭄, 감염병이 이어지는 기후재난의 일상, 여전히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냉난방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좁고 낡고 위험한 공간에서 일과 삶을 고되게 이어 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위험을 알 권리조차, 위험을 알고 대비하고 피할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충북 청주 오송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 수백 미터 남짓 거리에 있는 비닐하우스·컨테이너 숙소에서 생활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수해를 입었다. 이들은 지하차도 참사 당일에도, 그 이후 수일이 지나고도 지자체로부터 재난에 대한 어떠한 관련 안내를 받지 못했다. 바로 가까이에서 벌어진 참사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못했다.(오마이뉴스 2023년 7월19일)

긴급하고 정확한 재난정보 접근권은 생존권과 바로 연결된다. 이주노동자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적확한 재난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한국어 소통이 자유롭지 않은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제공하고 있는 재난정보들은 풀기 어려운 암호 같다.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등에 대한 국가 정보를 공유하는 국민재난안전포털(safekorea.go.kr)은 한국어와 영어로만 정보를 제공한다. 행정안전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어플리케이션 'Emergency Ready'과 '1339 Korea Travel Helpline'으로 외국인을 위한 재난정보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영어과 중국어, 일본어 3개 언어로만 재난 알림이 가능하다. 그마저도 오역으로 알림을 받은 외국인들에게 혼란을 주는 경우도 여럿 발생하고 있다.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서비스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재난 현황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재난 이후 피해 회복을 위한 지원 과정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고용노동부와 기상청 등이 폭염이나 폭우 등 기후재난에 대한 가이드를 제작하여 배포하고 있다지만 지역 곳곳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실제 어떤 정보들이 얼마나 가 닿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지역·업종·직종별 맞춤형 재난정보는 더욱 찾기 어렵다.

재난이 일상이 된 시기, 이주노동자들의 재난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다양한 국적, 다양한 언어를 가진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재난정보가 닿도록 하는 것이 이주민의 존엄한 삶과 일을 구현하는 데 중요한 걸음이 될 수 있다.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recherche@cnnod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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