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산업안전보건법에 지난해 1월부터 지방자치단체가 관할지역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생겼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난해는 5월 기준 전국 15개의 광역지자체와 10여곳 남짓한 기초지자체에서 산재예방 및 노동 안전보건 증진조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7월 현재는 대부분 광역지자체와 120여개 기초지자체·교육청에서 조례가 제정했다. 그 속도가 참으로 놀랍다.

그러나 속도에 비해 내용은 참으로 초라하다. 지난해부터 급속하게 확산된 지자체의 산재예방 조례 내용을 살펴보니 내용이 천편일률적이었다. 경기도 역시 화성시와 시흥시 등 10여곳 넘게 조례가 제정됐는데 하나같이 목적과 적용범위, 지자체장의 책무 등 주요 조례 내용이 복붙(복사하기+붙이기) 한 것마냥 대동소이했다.

지자체 특색에 맞는 산재예방 활동에 필요한 사항은 지자체의 법이나 다름없는 조례로 정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지금까지는 고용노동부에 맡겨두던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산재예방 행정을 지자체의 책무로 규정한 이유는 명백하다.

산업안전 기준을 마련하고 산재예방 정책을 독점하는 노동부 혼자의 힘으로는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산재와 이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자체는 선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취약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을 증진하기 위해 지역 특색에 맞는 노동행정을 펼치고 지역의 이해당사자인 노동계의 참여 확대를 동력으로 삼아 산재예방 정책 효과를 높이고자 했다. 이러한 지자체의 의지를 조례에 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몇몇 광역단체는 지자체의 책무가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되기 전부터 적극적으로 지자체 차원에서 산재예방과 노동안전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해 왔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와 경기도는 서로 경쟁하듯 2018년부터 산재예방과 노동안전보건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노동국을 신설해 노동 취약계층의 산재예방과 노동안전을 증진시켜 왔다. 지역 내 산재 취약계층의 산재보험료를 지원하고 휴가 지원사업을 펼치는가 하면 이동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이동노동자 쉼터를 선도적으로 시행하고 확산시켰다.

지자체의 적극적 노동행정과 이해당사자들의 참여, 그리고 이들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고용노동 행정의 인적·물적 한계가 맞물려 지금까지 국가사무로 규정돼 지자체의 손이 미치지 못한 산재예방 및 노동 안전보건 증진을 위한 정책에 지자체가 개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특별시나 경기도와 같은 광역지자체의 경우 조례의 적용 대상과 범위를 기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서 일하는 노무자로 넓혀 폭넓게 노동하는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의지를 표시한 경우도 있었다. 이해당사자인 노동계 등을 참여시켜 지자체의 산재예방 계획수립과 심의권한을 규정한 곳도 있었던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 대다수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 조례는 적용대상, 지자체장의 책무, 지자체에서 시행할 사업의 예시와 대표적 사업인 ‘노동안전지킴이’의 자격 기준과 활동 내용을 명시한 것이 조례의 전부다.

조례의 적용범위에서부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정책 수혜 대상을 좁게 규정한 지자체가 다수이며 산재예방 정책을 수립하도록 지자체장에게 의무를 지우고도 매년 이와 같은 계획이 올바로 실행되는지 점검의 의무조차 없는 조례가 대부분이다. 또한 경기도 성남시 등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면 대다수 기초지자체에서 산재예방 정책 수행을 위해 이해당사자와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고민도 부실한 실정이다.

해당 기초지자체는 예산과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지자체장에게 의무만을 부여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항변한다. 지역의 특색에 맞는 산재예방과 노동안전보건 증진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칠 지 고민하고 예산과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빠진 채 다른 지자체가 조례를 만드니 따라 만들고 상급 지자체가 만들라고 하니 그냥 대충 비슷하고 두루뭉술하게 조례 문구를 기획한다.

대부분의 기초단체가 일하는 시민의 죽고 다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해관계 단체들과 시민들의 원성이 자자해서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조례를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통해 시민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안전을 보호할지는 계획하지 못한 채 말이다.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leesey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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