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번 흔들리던 저 손은 대체 어딜 향했던가. 아무도 남지 않은 철탑에 어떤 그리움 남았나. 어느새 정들었나. 듣기로 동굴에 들어 쑥과 마늘을 먹으며 삼칠일을 버틴 곰은 사람이 됐다던데, 오늘 보건대 철탑에 올라 171일을 버틴 사람은 무얼 이뤘나. 응답 없는 세상 한구석 삐죽 솟은 철탑이 그저 앙상하다. 국정조사라고 적었던가, 거기 매단 현수막 바람을
기념, 어떤 뜻깊은 일을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는 일은 대개 기쁘기 마련이지만 때때로 가슴 먹먹한 일이기도 하다. 과거를 돌아보는 건 지금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저기 손팻말에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며 함께 살자는 외침이 가득하다. 123주년 노동절 기념대회 모습이다.
사람을 닮았지만, 사람이 아니다. 종일 허리 굽혀 사람을 반기지만 마네킹은 모형에 그친다. 자유의지와 감정 따위 인간의 조건을 갖지 못했으니 기계로 불린다. 밥벌이 엄중한 탓에 사람은 종종 기계처럼 일하지만, 기계는 아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는 당연한 말은 그래서 구호다. 갑 행세 누군가는 때리고 을 처지 누군가는 맞는다니 오늘 절실한 외침이다. 갑 놀
사랑도 명예도 남김없이 죽어간 사람들, 이름 없는 영정으로 저기 남았다. 흰 국화 몇 송이 거들었지만, 황천길은 그저 황망하다. 폭발하고 무너지고 침몰하던 사지에 내몰렸지만, 사고사에 그쳤다. 죽은 자가 많지만 죽인 자는 없으니 산재사망은 언제나 뜻밖의 불행한 일이었다. "산재사망은 살인이다"라며 노동계가 정명(正名)운동에 나선 이유다. 기업살인법의 다른
광화문에서 남대문 방향, 덕수궁 돌담길 따라 걷다 보면 꽃이 반긴다. 빨갛고 노란 그것들 먼저 아름다워 눈길 뺏는다. 가까운 건 크게, 저 멀리 것은 작게 보이기 마련이니 원근법이다. 소실점을 그어 본다. 선과 선이 만나는 거기 아득한 곳에 촛불이 반짝, 사람들 바짝 붙어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쌍용이며 용산·강정과 또 어디 송전탑 얘기다. 사
봄바람 살랑 불어 겨드랑이며 귓불이 간질간질. 훌쩍 떠나야 했지만 오후 1시까지 돌아가야 했기에 저들은 여의도 신데렐라. 꽃가지 바람 따라 흔들리고 봄볕 이렇게 눈부신데 왜 돌아가야만 하는지 알랑가몰라. 몰라, 알 수가 없어. 쌓이면 탈 날까 날리면 신 날까 그놈의 업무 스트레스. 봄볕 마침 좋다니 그래 오늘이다. 들썩들썩, 소풍 약속에 오전 11시37분부
기둥에 천장이 올라간 모양 천막은 끝내 안 된다니 비닐 덮고 사람들 비바람을 피한다. 제 머리며 목발을 기둥 삼아 천장을 떠받친다. 지난 10일 대한문 앞 쌍용차 농성장 모습이다. 그 자리 철거를 둘러싼 공방이 다만 시끄럽다. 집권여당의 국정조사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물 빠져 흐릿한 영정 화단 보호용 울타리에 걸어 놓고 사람들 농성을 하루 또 이어 간다
바람이 분다. 먹구름 짙다. 비가 또 웬걸, 눈이 내린다. 종잡을 수 없다니 얄궂은 봄, 그래도 4월이다. 북풍이 분다. 맞바람 친다. 햇볕 어느새 오간 데 없고 사방이 어두컴컴. 사정없는 된바람만 내내 드셌다. 황사가 날아오고 스텔스기 날아오니 웬걸, 미사일 덩달아 날아오를 태세. 총 잡을 순 없다고 사람들 길에 서니 황무지 4월은 잔인한 달. 이게 봄인
광장은 자주 화단으로 변했다. 국회 앞에서, 광화문에서 또 어디 사연 넘치던 길바닥에서 사람들 화분과 어깨동무해야 했다. 노랗고 빨간 꽃 뒤에 겨우 앉아 목소리 높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누군가 오랜 노랫말 읊었지만 흉하다 쫓겨난 건 언제나 사람이었다. 지난 4일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를 철거했다. 그 자리 화단이 들어섰다. 봉긋 솟아 그
덕수궁 돌담길 옆자리 어느새 뚝딱 숲이 우거져 새 한 마리 빠끔 숨었다. 가만 보니 저거 솟대라. 대가리 주둥이 온전치 못하니 그 아침 뭔 난리였나. 장대 허리는 뚝 부러져 저만큼을 겨우 솟았다. 솟대 머리는 날아갔다. 쑥대머리를 해갖고 사람들 난리통 그 앞을 지켰지만 태부족. 장승처럼 버텼지만 쑥 쑥 뽑혀 짐승처럼 사지 들려 경찰서 향했다. 농성촌은 쑥대
빨간 꽃 노란 꽃 신발 가득 피어도, 하얀 국화 하얀 상복 천막 안에 쌓여도,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농성은 계속된다. 분풀이 불장난에 풀풀 재로 남아도, 가로정비과 철거반원 들이닥쳐도, 국정조사 굳은 약속 흐릿해져도, 돌고 돌아 농성은 이어진다. 녹슨 관절 철탑에서 삐걱대며 오늘 더 위태로운데 이제 또 봄이라고 한 발짝 봄 마중 나선 신발은 안전
다리 꼬았다. 다, 다리 꼬았다. 임원 후보 신발은 각양각색, 그러나 모두 다, 다리 꼬았다. 목 높은 등산화의 시대는 저물고 바야흐로 운동화 전성시대. 험준한 산 헤매던 '파르티잔(partisan)'들 이제 광야에서 고난의 행군을 준비한다. 두령을 뽑고자 한날한시 모였으나 우여곡절 끝 무산이다. 뒷말이 벌써 무성하다. 그 자리 드높던 구호가 무상하다.
봄이라고, 평택시 칠괴동 어느 공장 앞 황량한 들판에 노란 꽃 피었다. 지속·불변을 꽃말 삼은 산수유 꽃이다. 지난 15일 문기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비지회장이 건강악화로 철탑에서 내려와 병원을 향했다. 농성 116일 만이다. 한상균 전 지회장과 복기성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은 남아 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어디 드높은 빌딩 앞. 꽃 한 송이 손에 쥐고 황상기씨 오늘 또 그 자리 지켜 섰다. 딸 향한 사랑 고백이 내리 6년이다. 메아리 없어 외사랑이다. 그래도 한없어 내리사랑이다. 끝 모를 황천길이 아직 멀어 황상기씨 오늘 또 꽃을 들었다. 손때 묻은 영정을 매만지고 닦고 또 매만진다. 꿈쩍 않는 검은 빌딩 앞 인도 한편에 영정 주욱 늘어놓고 황상
아마도 저곳은 오며 가며 수없이 점 찍어 두었던 곳. 문득 고개 들어 하늘 바라보다 시선 잠시 머문 자리. 구름 한 점 없어 맑은 날이면 노랗고 붉은빛 머물다 지던 탑. 더덩실 둥근 달 뜨고 지고 또 차고 빠지던 하늘길 어디 우뚝 서 변함없던 어느 성당의 종탑. 기어코 그 자리 올라 기약 없는 농성을 시작했다. 해고자 원직복직이며 단체협약 체결, 오랜 복음
우수조합원 시상식.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상복 터졌다. 묵직한 상패가 넷이다. 받고 옆에 잠시 두고 또 받고 두기를 여러 번, 다 받은 건 아니고 대리 수상이 셋이다. 저기 평택 철탑 위 사람들 몫이다. 박현제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장도 못지않다. 자기 이름 하나 없지만 두 번을 받았다. 그건 저기 울산 철탑 위 사람들 몫이었다. 박 지회장은
그 밥, 참 맛나겠다. 그리던 집 밥 아니라도 주린 속, 언 손 달래 주니 성찬이다. 반찬 달리 없어도 후루룩 뚝딱 국밥이 딱이다. 묵밥이다. 희망버스 승객들의 정성이다. 밥 먹기 참 어렵다. 그 앞 기자들 인수위원 따라붙듯 몰려든 경찰과 드잡이 한바탕 요란했다. 식은 국물 데우려던 가스레인지를 문제 삼았다. 취사금지구역이라고 덧붙였다. 밥 먹을 땐 뭣도
서울 삼청동엔 멋집도 맛집도 많아 사람이 붐빈다. 고풍스러운 한옥 사잇길 헤매다 보면 동네 똥개도 그럴싸해 보이니 희한한 곳. 저마다 카메라 걸고 줄지어 골목 사진가로 분한다. 어느덧 해가 뉘엿. 손 시리고 배는 출출해 돌아보면 거기 죄다 세련된 양식집 천지라. 팍팍한 주머니 사정 따위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들어설까 하다가 유리창 너머 메뉴판 살피다
몇 장의 풍경사진 혹은 인물사진. 2012년 노동의 초상이다. 보고 또 봐도 이해할 순 없다니 추상이다. 유행처럼 번진 ‘희망’ 한 마디 저마다 품고 사람들 희망텐트촌이며 희망캠프를 열었고, 희망뚜벅이 되어 희망발걸음 내디뎠다. 누군가는 대법원 판결에서 일단의 희망을 봤고 철 따라 목소리 드높던 정치인의 약속에서 희망을 찾기도 했다.
상가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화환이 빼곡했다. 특실은 널찍했고 영정 앞으로 정성스레 차린 과일이며 음식이 가지런했다. 흰색 무명옷 걸친 주름진 사람들 서성이다 엎드렸고 또 상차림에 나서다 조문객을 맞았으며 종종 저기 비상구로 나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왼쪽 가슴팍엔 까만 리본을 달았는데, 거기 얇은 상복 너머 한때 자랑이었던 조선소 이름이 언뜻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