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곳곳에서 산업폐기물 시설, 환경오염 공장 등이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다. 입지선정 절차 같은 것도 없다. 민간업체들이 여기에 추진하겠다고 하면 그 자리가 ‘입지’가 된다. 주민건강 영향, 환경오염 우려, 주민생활상 피해 등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서울에서 이런 사업이 추진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이런 사업을 벌이는 주체 중에는 지역 업체도 있지만, 대기업이나 사모펀드가 등장하는 경우도 꽤 있다. 당장 표면에 드러난 것은 중소규모 업체나 브로커 수준의 업체지만, 뒤에는 대기업이 숨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업체들이 인
명절은 누구에게나 평등한가?먼저 답하면 명절은 평등하다. 다만 우리 사회가 뒤틀려서 명절이라는 시간을 평등하게 제공받지 못할 뿐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여성은 일방적으로 더 많은 가사노동을 강요받는다. 다른 누군가는 연휴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일터로 나가 일하기도 한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이런 상황은 널려 있다.10여 년 전 방영한 TV드라마 의 한 장면에서 명절에 계약직인 주인공 장그래는 식용유 선물세트를, 같은 일터 정규직은 스팸 선물세트를 받았다.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서 한 계약직 직원이 “어유 됐어,
최근 서울 강남에서 한 음주운전자가 배달노동자를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운전자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 탓에 큰 공분을 낳으며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음주운전이나 신호위반 차량에 배달노동자가 다치거나 죽는 일은 매우 특이한 운전자로 인해 발생하는 희귀한 일이 아니다. 당장 어제(7일)만 해도 대구에서 음주 상태에서 배달노동자를 친 후 도망친 운전자와 조력자를 경찰이 검거했다. 지난해 연말에도 청주와 인천에서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에 배달노동자가 사망하거나 중한 부상을 입었다. 인터넷 검색만 해도 비슷한 사례
나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의 의무를 공장에서 이행했다. 일터는 지방의 어느 공단에 있었다. 작은 회사였지만 국내 굴지의 유명 가전업체에 부품을 독점 납품하는 강소기업이었다. 출근 첫날 뿌옇게 분진이 날리던 현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강소기업이지만 직원은 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사장의 지인과 그 지인의 친인척인 3~4명의 관리자만 한국인이고 나머지 생산직원은 산업기능요원과 이주노동자, 그리고 필요할 때 불러서 쓰는 일용직이었다.현장의 동료들은 처음에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차가웠다. 생산과장과 동료들은 무뚝뚝하게 필요한 말 이외에
1. 걸핏하면 카르텔이다. 카르텔이 문제라고 카르텔을 없애겠다고 카르텔을 때려잡는 것이 개혁이라고 핏대를 세운다. 이 나라는 어쩌자는 것인지 날마다 카르텔 타령이다. 대선에서 공약하더니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그렇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내 머리는 정리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분명히 이 나라에서 대통령이 대단히 애용하는 말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무슨 카르텔인가’ 하고 있으니 스스로 난감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많은 것들에 대해서 이 말을 사용했다. 솔직히 뭔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굳이 알고 싶지도
2024년에도 정부의 에너지 전환계획은 변함없이 ‘재생에너지 배제, 원전 친화 정책’ 기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안보 강화, 원전 생태계 조기 완성 등을 통한 튼튼한 에너지시스템 구현”이라는 목표 아래, “원전 생태계 복원 조기 완성을 위해 원전 분야 예산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원전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수주 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원전 생태계 강화를 위해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 등을 위한 예산배정에 중점을 뒀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 등 명시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은 없었다.사실 ‘
예전에 ‘청년 보수’로 이름을 날리던 이와 ‘법치’를 주제로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대부분의 한국 보수들이 그렇듯이 그 또한 ‘법치’(法治)와 ‘준법’(遵法)을 구별하지 못했다. 법치는 군주의 자의적인 통치로서의 ‘인치’(人治)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국가권력의 자의적인 행사를 견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반박에, 그는 국가가 아니라 ‘떼법’을 외치는 대중이 견제돼야 하기에 법치의 의미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해야 한다던 그는 지금도 ‘노사법치주의’라는 해괴한 조어를 숭상하며 노조·시민단체의 불법 시
“사회적 여론을 선도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인 노사정위원회에는 복귀하지 않겠다.”2017년 12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당선자가 선거운동 기간 중에 밝힌 내용이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노사 대표 4명, 정부 대표 2명, 국회 대표로 구성된 '신(新) 8자 회의'를 제안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그해 9월에 제안한 ‘8자 회의’와 비교하면 국회 대표를 넣는 대신 노사정위원장을 뺀 구성이었다. 민주노총이 줄곧 주장해 왔던 노정교섭에서 벗어나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는 건 진전된 내용이었다. 하
2020년 12월부터 4년에 걸쳐 격주로 에 써 왔다. 그 이후 70여 차례에 걸친 필자의 글은 모두 시대에 맞는 노조의 개념설계를 위한 것이었다. 현장경험을 되새겨 써 온 모든 내용을 종합하면 두 개의 그림으로 집약할 수 있다.첫 번째 그림은 노동·노조·노사관계를 보는 세 가지 시각에서 뻗어 나오는 것들을 설명하는 ‘유니온 트리(노조나무)’다. 일하는 시민이 권리 주인이 되는 일반적인 주체화 양식은 노조다. 시민이 주권자가 되는 방식은 투표해서 선출된 정치가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간접적 방식과 함께 결사체를 만들어 목
지난달 27일로 50명 미만 사업장에 3년간 적용유예됐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게 되자, 같은 달 15일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중소·영세 사업장 대표 간담회에서 “종사자가 5명 이상 개인사업주인 동네 음식점이나 빵집 사장님도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포함해 관련 부처 장관들은 중대재해처벌법 논의가 나올 때마다 같은 발언을 반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야당의 법 적용 유예기간 연장 반대를 “민생 경제를 도외시한 무책임한 행위”라고 몰아붙였다.지난달 23일 국회
‘34세 동성애자 佛 총리 됐다’ 지난달 10일 조선일보가 15면(국제면)에 얼굴 사진과 함께 보도한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새 총리 관련 기사 제목이다. 프랑스 총리는 국민이 투표로 뽑는 선출직이 아니라 대통령이 임명하기에, 그의 실력을 단언할 순 없다.내가 놀란 건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보다 34살에 불과하다는 거다. 더 놀라운 건 별 이력도 없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진행된 파격 총리 인선이 아니라 정부 대변인과 공공회계 장관을 거쳐 지난해 7월부터 교육부 장관으로 일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이성애자가 아니라고 밝힌 첫 프랑스
* 이 글은 드라마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드라마 는 첫 화에서 선문답의 화두 같은 아리송한 장면을 보여준다. 사무실에 나타난 벌레를 요란스레 무서워하는 직원들과 벌레를 잡아 그냥 꾹 눌러 죽이는 파견직원 이지안(이지은 분)의 대비가 그것이다. 이 장면은 기독교식으로 보면 지안이 곧 신과 같은 위치에 오른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다른 생명을 함부로 거둘 수 있는 존재는 신뿐이기 때문이다. (극에서 지안은 과거에 사람을 죽인 적이 있으나 정당방위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진부면 ‘곶은골’에서 태어나 봉평 창동리 계모 밑에서 자란 이효석은 100리 떨어진 평창에서 하숙을 하며 초등학교를 다녔다. 서울로 유학한 이효석에겐 고향에 대한 향수가 컸고 그 그리움이 ‘메밀꽃 필 무렵’을 낳았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봉평은 그렇게 메밀의 상징이 됐다
“선생님, 법적으로 판단을 받는다는 것은 진짜 사실이 무엇인지가 아니예요. 나의 주장을 어느 정도 증명하느냐의 문제인 거죠. 그러니 너무 개의치 마세요.”2024년 1월23일 오후 2시쯤 걸려 온 전화상담에서 한 이야기이다. 증거 수집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법적인 판단이 잘못됐어도 그 일이, 그 부당함이 거짓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말에 귀기울이고, 부당함에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무언가를 증명한다는 건 자신의 기억과 감정에 의심을 품고 하나하나 증거를 찾아내 설명해 내는 일이다. 이 과정
서울고법이 지난 24일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사용자임을 재확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월 서울행정법원이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린 후 정부와 재계는 이 판결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는데, 이번 고법 판결문을 보니 그런 비판에 대한 법원의 답변을 읽을 수 있었다.정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사용자’ 정의에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포함시키는 것이 단체교섭의 상대방인 사용자를 지나치게 확대함으로써 ‘제3자’인 기업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27일부터 상시 5명 이상 50명 미만 노동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2021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산업재해로 인정된 사망자 2천292명 중 50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1천843명으로 전체의 약 80%를 차지했다는 고용노동부 자료에 비춰 봐도,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신체를 보호를 목적(법 1조)으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은 당연하다. 2022년의 통계를 봐
급속도로 벌어지고 있는 산업의 플랫폼화와 디지털 전환으로 기존 일자리가 해체되면서 3.3% 기타소득 세금을 내는 시민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794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프리랜서라고 불리거나 플랫폼 또는 특수고용 노동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유하고 있다. 전형적 노동이 아닌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시민들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정부와 제도는 사회의 변화의 속도에 전혀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마저도 이들을 권리의 주체로 세우고자 하는 노력이 더딘 것이 현실이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3~
끝까지 엉뚱했고 몹쓸 아이디어를 냈다. 봉제인 백남정 본인도 주변도 죽음을 준비하던 때, 마지막 인사차 만났던 친구이자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 간부들에게 “하늘나라 가서 로또 번호 보면 가르쳐 주겠다” 하고는,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 쉰넷이었다.어느 봉제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연대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모임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바느질이 꼼꼼했던 재봉사였으므로 재봉사 모임은 기본이고 띠동갑 모임에 백두대간 종주하느라 다닌 산악회까지. 서울봉제인지회도 가두선전전을 보고는 스스로 찾아왔다. 모임에 들면 혼자만 다니
1. “노조가 위로금 지급을 요구했다고 하네요.” 지난 25일, 현대제철 통상임금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 선고가 있었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각종 법정수당 등 미지급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평균임금에 연차수당 포함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원고 노동자들의 승소로 확정됐다. 이날 대법원의 2호 법정에서 금속노조 현대제철의 인천·포항지회에서 지회장을 포함한 노조 간부들이 참석해서 주심대법관의 판결 선고를 들었다. 나는 원고들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법정에 갔다. 이날 판결 선고 뒤에 근처 카페에서
나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자’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울노동권익센터에 입사했다. 그러나 입사 이후에서야 내가 사실상 ‘기간제 근로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서울시 민간위탁기관으로, 3년에 한 번씩 수탁업체를 서울시가 심사하는데, 수탁업체가 변경되면 기존 업체와의 근로계약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설사 바뀐 업체로 고용승계가 된다고 하더라도, 근로계약의 상대방이 바뀌는 과정에서 어떤 혼란이 야기되는지 직접 겪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2024년 1월1일부로 서울노동권익센터 운영사업의 수탁기관이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