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첫 화에서 선문답의 화두 같은 아리송한 장면을 보여준다. 사무실에 나타난 벌레를 요란스레 무서워하는 직원들과 벌레를 잡아 그냥 꾹 눌러 죽이는 파견직원 이지안(이지은 분)의 대비가 그것이다. 이 장면은 기독교식으로 보면 지안이 곧 신과 같은 위치에 오른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다른 생명을 함부로 거둘 수 있는 존재는 신뿐이기 때문이다. (극에서 지안은 과거에 사람을 죽인 적이 있으나 정당방위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드라마는 지안이 도준영 대표(김영민 분)의 부정한 청탁을 받고 동훈(이선균 분)을 도청하면서 본격 전개된다. 도준영에게 동훈은 제거해야 할 대상. 징계의 구실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훈을 죽이기 위한 지안의 도청은 엉뚱하게도 동훈을 살리는 쪽으로 복무하기 시작한다. 동훈이 직장과 일상에서 하는 모든 내밀한 말들과 심지어 숨소리까지(그리스신화에서 영혼을 뜻하는 프시케의 어원이 ‘숨’이다) 다 들으며, 동훈을 한낱 이용대상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주체로 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달리 실제 노동현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노동감시는 주로 CCTV에 의한 것이다. 노동현장에서 CCTV는 인격을 가진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노동자를 일개 상품으로 물화하여 결함을 찾아내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해고노동자의 징계사유를 증명하거나 재직노동자들의 근무태도를 감시하기 위한 것 등이 그것이다.

정보주체인 노동자의 동의를 받지 않았고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등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설치 목적 외 CCTV 영상의 수집 및 이용은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다(개인정보 보호법 15·18·25조 등 참고). 이처럼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형사소송에서 증거능력이 배제된다(형사소송법 308조의2). 반면 민사소송에서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이 자유심증주의(민사소송법 202조)에 근거해 법관의 재량에 의해 인정되고 있으며(대법원 2009년 9월10일 선고 2009다37138 판결 등), 행정소송과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절차 역시 민사소송의 법리가 준용되므로(행정소송법 8조2항 참고), 실제 노동쟁송에서 CCTV 영상은 노동자 징계 사건의 증거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실정이다.

형사소송법에서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취지는 적법절차의 준수 및 수사기관의 위법수사를 방지하는 데 있을 것이다. 반면 민사소송의 경우 수평적 관계에 있는 사인들 간의 다툼인 점에 착안해 이 같은 규정이 부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 개인과 사용자 간의 관계는 수평적이라고 보기 힘들고, 증거의 접근성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더하여 헌법상 보장되는 인격권 침해의 문제도 고려되어야 한다. 버스나 택시 기사의 징계 사건에서는 CCTV 영상이 증거로 사용될 시 당사자인 기사뿐 아니라 제3자인 승객들의 초상 및 활동 정보까지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 조영훈 공인노무사
▲ 조영훈 공인노무사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일까.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은 동훈을 도청하며 아이러니하게도 동훈이란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됐다. 그리하여 전지, 전능, 전선하다고 정의되는 신처럼 동훈의 모든 것을 알고, 신출귀몰할 능력을 발휘해, 동훈을 번번이 위기에서 구했다. 반면 현실의 노동현장에서는 한 노동자가 실수하거나 잘못한 순간만을 절취해 징계를 정당화하는 데 CCTV 영상이 곧잘 이용된다. 굳이 푸코를 인용할 필요도 없이, 징계 목적으로 사용되는 CCTV의 존재는 그 자체로 노동자들에게 자기통제의 효과를 가져온다. 온종일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 사람의 정신건강에 미칠 영향은 명약관화하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는 1944년의 필라델피아 선언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공인노무사 (libero1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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