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농촌 곳곳에서 산업폐기물 시설, 환경오염 공장 등이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다. 입지선정 절차 같은 것도 없다. 민간업체들이 여기에 추진하겠다고 하면 그 자리가 ‘입지’가 된다. 주민건강 영향, 환경오염 우려, 주민생활상 피해 등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 서울에서 이런 사업이 추진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이런 사업을 벌이는 주체 중에는 지역 업체도 있지만, 대기업이나 사모펀드가 등장하는 경우도 꽤 있다. 당장 표면에 드러난 것은 중소규모 업체나 브로커 수준의 업체지만, 뒤에는 대기업이 숨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업체들이 인·허가를 받으려고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 수상한 점들이 많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행정처리를 한 경우도 있고, 중앙정부의 유권해석이 특정 업체를 위해 변경되는 사례까지 있다. 그리고 이런 사업들을 추진하는 업체들이 소송대리나 자문 등을 의뢰한 곳들을 찾아보면 서울의 대형로펌들이 자주 등장한다.

농촌에서 이런 사업을 벌이는 업체들이 대형 로펌까지 선임한다는 것은 그만큼 막대한 이윤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산업폐기물 매립장은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이 50% 이상 나오는 경우도 있고, 의료폐기물 소각장도 순이익률이 20~30% 이상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행정관청이 인·허가를 거부하거나, 뒤늦게 문제점을 인지하고 인·허가를 취소하면 업체들은 소송을 제기한다. 업체들이 선임한 대형 로펌들이 내세우는 변호사들을 보면 전관(前官) 출신들이 눈에 많이 띈다. 대법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고등법원·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들이다. 기존에 선임한 대형 로펌이 있는데도, 갓 퇴직한 판사 출신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하기까지 한다. ‘전관예우’를 염두에 둔 것으로 의심되는 행태다.

이렇게 농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무죄판결을 받는 장면은 별개가 아니다. 이 회장 변호인단에도 김앤장 등 대형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고 한다. 당연히 ‘전관’ 출신들도 포함됐을 것이다.

물론 돈이 많은 측이 변호사들을 많이 선임하는 것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 문제는 국민세금으로 급여를 주면서 전문적인 경력을 쌓도록 했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퇴직 뒤에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행태다. 소위 말하는 ‘전관예우’ 문제다.

전관예우는 검찰·사법부·행정부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전관예우는 없다’는 반론도 있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전관예우가 실제로 있냐 없냐’가 아니다. ‘전관예우가 있을 것이다’라는 사회적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실제로 돈 있는 측이 전관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관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법에 대한 신뢰, 정부에 대한 신뢰, 검찰과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손상시키고 있다.

올해 2월5일자 법률신문에 따르면 김앤장의 1년 매출액은 1조4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김앤장을 제외한 12개 로펌의 매출액도 지난해에 6.5% 증가했다고 한다. 이런 대형 로펌들의 호황도 전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형 로펌들은 점점 더 많은 전관들을 영입해서 활용하고 있다. 심지어 그 전관들이 회전문 인사를 통해서 고위공직으로 복귀하는 상황이다. 온갖 실정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덕수 국무총리도 김앤장 고문으로 19억원의 급여를 받았던 사람이다.

얼마 전 어느 원로학자로부터 “헌법을 개정할 때 전관예우 금지 조항을 넣으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듣고 공감한 적이 있다. 그런 내용까지 헌법에 넣어야겠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법 앞의 평등’이나 ‘공정’을 얘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헌법에 전관예우 금지조항을 넣어서라도 이 잘못된 현실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haha9601@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