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사회적 여론을 선도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인 노사정위원회에는 복귀하지 않겠다.”

2017년 12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당선자가 선거운동 기간 중에 밝힌 내용이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노사 대표 4명, 정부 대표 2명, 국회 대표로 구성된 '신(新) 8자 회의'를 제안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그해 9월에 제안한 ‘8자 회의’와 비교하면 국회 대표를 넣는 대신 노사정위원장을 뺀 구성이었다. 민주노총이 줄곧 주장해 왔던 노정교섭에서 벗어나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는 건 진전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노사정위(당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빠진 사회적 대화를 노사정위가 받을 수는 없었다.

2018년 1월11일,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은 이미 밝힌 대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경총과 대한상의, 고용노동부, 그리고 노사정위원회의 대표 6인이 참여하는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개최할 것과 여기서 사회적 대화 기구의 개편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의견을 모아 주신다면 사회적 대화기구의 위원 구성, 의제, 운영방식, 심지어 명칭까지 포함해 그 어떤 개편 내용도 수용하겠습니다.” 디데이는 1월24일이었다.

한국노총은 “본격적인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대화기구의 틀을 짜기 위한 논의에 함께한다”라는 의미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가하겠다고 밝혔다(2018년 1월11일). 민주노총은 “지금부터 내부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하기에” 참석할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2018년 1월11일). 김명환 위원장이 제안한 ‘신 8자 회의’에 대한 민주노총의 언급은 없었다. 그 이튿날 양대 노총 지도부가 만난 상견례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에게 노사정대표자회의에 같이 빠지자고 제안했지만 한국노총은 거부했다.

3주간에 걸친 민주노총의 번민

1월19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노총 지도부를 면담했다(대통령은 그 직전 한국노총 지도부를 만나 오찬을 같이 했다). 2007년 이래 11년 만에 이뤄진 대통령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공식 면담이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사회적 대화의 조속한 복원을 위해 역할을 해 줄 것을 민주노총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김명환 위원장은 “노동존중사회·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해 사회적 대화기구 재구축 논의”에 참여할 의지가 있다고 밝히면서 양대 노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노사정대표자회의의) 일정을 늦춰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참여 여부는 “구체적인 협의를 통해 결정하겠다”라며 다소 모호한 입장을 밝혔다(민주노총 보도자료, 2018년 1월19일).

노사정위는 노사정대표자회의를 1월31일로 연기했다. 민주노총은 1월25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사회적 대화기구의 재편을 논의하기 위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가한다고 결정했다. “노동시간 단축‧최저임금 관련 개악이 일방 강행될 경우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를 재논의한다”라는 단서도 달았다. 민주노총은 노·정 신뢰회복의 조건으로 한상균 위원장 석방과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철회 등 정부의 선 조치를 주문하고 있었다. 또한 양대 노총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되 ‘휴일 중복할증’을 허용하지 않기로 한 여·야 3당 간사합의안은 물론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도 반대하고 있었다.

민주노총이 불참을 통보한 건 이튿날 아침이었다. 조찬으로 열기로 한 대표자회의 실무진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전갈이었다. 국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최저임금 관련 개악을 강행할 움직임을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사무총장과 통화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한국노총 위원장한테 노사정대표자회의 불참을 제안하겠다는 것과, 향후 일정은 국회 일정을 감안해 조정할 테니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연기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원칙적으로 연기는 어렵습니다.” 노사정대표자회의는 한국노총이 참가하는 이상 예정대로 개최한다는 방침이었다. “여기서 늦추면 그야말로 국회발 토네이도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사사건건 정부의 정책이나 국회의 입법활동을 사회적 대화와 연계시킨다면 사회적 대화는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양대 노총 위원장이 심야에 회동했지만 합의를 끌어내지는 못했다(2018년 1월29일). “우리는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제안한 주체이며 따라서 불참은 있을 수 없다. 민주노총도 국회의 흐름에 종속돼 실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주영 위원장의 말이었다. 실무진 회의에서도 민주노총의 참여와 무관하게 1월31일 오후 1시에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노사정위원회에서 개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가하겠다고 노사정위에 통보한 것은 1월30일 저녁나절이었다. 김명환 위원장은 “2월 국회에서 근로기준법의 일방적인 개악을 막아 내기 위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노총과 근로기준법 개악 저지 공조를 재확인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근로기준법 개악 추진 중단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위해 참석키로 했다”고 밝혔다. 3주간에 걸쳐 불참과 참가 사이를 오락가락한 민주노총의 행보가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선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리는 당일 새벽 3시에 대표자회의에서 발표할 합의문 수정을 요구했다(민주노총 회의가 새벽 2시에 끝났다). 오후 1시에 열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앞두고 오전에 긴급 실무진 회의를 소집했고 오전 11시30분에야 합의문에 의견을 모았다.

사진부터 찍은 첫 노사정대표자회의

1월31일 노사정대표자회의 1차 회의가 노사정위에서 열렸다. 민주노총으로서는 2006년, 2009년에 이어 세 번째 추진하는 노사정대표자회의였다. 노사정위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노사정위원회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라며 감격해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사회적 대화기구 개편방안 이외에도 사회적 대화 의제 선정, 업종별 협의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사항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사회 양극화 해소,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 보장, 4차 산업혁명과 저출산·고령화 등 시대적 과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사정 부대표급으로 구성하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노사정위원회가 사무국을 담당하는 데도 합의가 이뤄졌다(노사정위 보도자료. 2018년 1월31일).

애초에 양대 노총은 물론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재편을 논의할 목적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열 작정이었다. 하지만 실무진 회의에서 의제 논의를 시작하자는 데 합의가 이뤄지면서 의제별·업종별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그리하여 문재인 정부의 노사정대표자회의는 이전의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구분되는, 그 자체로 사회적 대화기구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우선 당시 구성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의제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재편 이외에도 열려 있었고 주요 의제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의제별·업종별 협의회를 구성해 의제 논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한 것도 그 연장이었다. 또한 대표자회의-운영위원회 체계를 확립하고 노사정위가 사무국을 맡기로 하는 등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체계를 갖췄다. 회의는 월 1회로 정례화하고 6개 조직이 돌아가면서 개최하자고 제안한 것은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다.

에피소드 하나. 당일 대표자회의에서 회의 순서의 변경이 있었다. 애초에 잡은 회의 순서는 각 대표들의 인사말에 이어 상임위원의 경과보고, 안건 논의, 그리고 기념촬영 후 노사정위원장이 언론 브리핑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회의장에 들어가면서 사진부터 찍자고 제안했다. 회의 도중에 민주노총 위원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있으니 미리 사진을 찍어 두지 않으면 기록을 남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진 촬영 후 시작된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굳이 순서를 바꿔 사진을 먼저 찍지 않아도 될 뻔했다.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tjpark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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