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나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의 의무를 공장에서 이행했다. 일터는 지방의 어느 공단에 있었다. 작은 회사였지만 국내 굴지의 유명 가전업체에 부품을 독점 납품하는 강소기업이었다. 출근 첫날 뿌옇게 분진이 날리던 현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강소기업이지만 직원은 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사장의 지인과 그 지인의 친인척인 3~4명의 관리자만 한국인이고 나머지 생산직원은 산업기능요원과 이주노동자, 그리고 필요할 때 불러서 쓰는 일용직이었다.

현장의 동료들은 처음에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차가웠다. 생산과장과 동료들은 무뚝뚝하게 필요한 말 이외에 일절 하지 않았다. 작업 과정에서 궁금한 걸 물어봐도 시큰둥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한 달여가 지나 생산과장과 술자리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나에게 이제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워낙 금방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아 현장 직원들이 새로 오는 사람에게 처음에는 정을 잘 주지 않는다고 했다. 나보다 일찍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동료에게 왜 그리 많이들 일찍 그만두냐고 질문했다. 동료는 현장이 더럽고 힘든데 누가 진득하게 오래 일하겠냐고 반문했다.

철판에 유약을 스프레이나 전기로 도장해 1천도가 넘는 소성로에 제품을 코팅하는 작업으로 공장 안은 분진이 뿌옇게 날렸다. 생산 과정 내내 방진마스크를 써야 했는데 답답하면 벗고 일해도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장 안은 타는 듯 더웠고, 곳곳이 위험지대였다. 스프레이와 분체 도장기 주변으로 미세한 유약가루가 날려 공장 안의 안전보건 표시를 모두 뿌옇게 덮었다. 청소하는 이가 없이 화장실은 암모니아 냄새로 머리가 아팠고 휴게실이 없어 점심 후에 분진 가득한 공장 한쪽에 포장박스를 깔고 잠을 잤다.

무거운 제품의 운반 때문에 내가 담당하는 제품 검사 및 출하 현장에서는 지게차 운전이 필수였다. 운전면허도 없던 나로서는 난감한 상황을 맞이했는데 공장장은 지게차 운전을 속성으로 알려주고는 지게차를 몰아 보라고 했다. 마뜩잖았지만 일이 바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동료를 칠 뻔도 했고 공장 안의 시설을 망가뜨리기도 했으나 납품이 우선이라 회사에서는 그냥저냥 눈감아줬다.

문득 이런 기억이 떠오른 것은 지난달 31일 국회에 모인 중소기업들의 집회 때문이다. 이들은 올해 1월27일부터 상시근로자 5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에 전면 적용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을 유예해 달라 호소했다. 이들은 50명 미만 사업장은 사업주 혼자 일인다역을 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비할 예산과 인력 없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소속 중소기업의 80% 이상이 중대재해처벌법 대비가 안 됐다고 밝혔다.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3년의 시간이 흘렀다. 2022년까지 한 해 평균 800여 명이 넘는 산재 사망자가 발생했고 그중 80% 이상이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인력과 예산이 없고 납품기일 맞추기에 바쁘니까 그냥 면허 없는 직원에게 지게차를 몰게 하고, 분진과 위험물이 혼재하는 사업장의 환경 개선은 나중으로 미루는 동안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산재 사망사고의 잠재적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고 이들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무시될 이유는 없다. 정책적으로도 이들이 더 시급한 대상이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도와 안전보건체계를 마련하고 법을 위반한 기업에는 엄격하게 법 집행해야 할 정부는 계속 손을 놓고 있자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불안전 일터를 구직자들이 외면한다는 것이다. 일터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중소기업에 눈길을 주는 구직자는 더 이상 없다.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계기로 적어도 내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위협하는 유해위험요인이 무엇인지 체크하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한다.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leesey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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