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2024년에도 정부의 에너지 전환계획은 변함없이 ‘재생에너지 배제, 원전 친화 정책’ 기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안보 강화, 원전 생태계 조기 완성 등을 통한 튼튼한 에너지시스템 구현”이라는 목표 아래, “원전 생태계 복원 조기 완성을 위해 원전 분야 예산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원전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수주 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원전 생태계 강화를 위해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 등을 위한 예산배정에 중점을 뒀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 등 명시적인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은 없었다.

사실 ‘재생에너지 대신 원전’을 선택한 정부의 산업전략은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일관되게 추진해 온 몇 안 되는 전략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정책결과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3기가와트(GW) 미만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지난해 태양광 신규 설치 실적이다. 이는 지난 5년 동안 실적 가운데 가장 낮다. 반면 지난해에 독일은 14기가와트, 미국은 33기가와트, 그리고 중국은 무려 200기가와트가 넘을 정도로 주요국들의 태양광 신설 규모는 사상 최고를 갈아 치우고 있는 중이다.

기후대응 차원이나 산업정책 면에서 볼 때 이는 글로벌 추세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1.5도씨 이하로 지구 온난화 수준을 제한하기 위해 제시한 에너지 전환전략에 따르면, 전 세계 발전량 기준으로 2030년까지 태양광과 풍력은 핵발전의 4배, 그리고 2050년까지는 무려 9배가 돼야 한다. 신규투자금액을 기준으로 봐도 재생에너지는 핵발전의 약 10배 가까운 글로벌 투자 비중을 2050년까지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한마디로 핵발전에 비해 재생에너지가 기후대응뿐 아니라 시장성 측면에서 봐도 10배 정도 규모가 크다는 얘기다.

이 시점에서 1970년대 오일쇼크가 발생했을 때 북유럽의 두 복지국가, 스웨덴과 덴마크가 걸었던 전혀 다른 선택을 새삼 주목해 볼 만하다. 먼저 스웨덴의 경우 당시 석유가격이 급등하자 대안으로서 지금의 윤석열 정부처럼 원전건설을 선택했다. 그 결과 스웨덴은 전력생산 비중에서 2018년까지 원전이 무려 42%에 이를 정도로 커지게 됐다. 그나마 최근에는 풍력발전의 대대적 증설로 겨우 30% 밑으로 떨어졌다.

덴마크는 달랐다. 덴마크는 원전 거부를 처음부터 명확히 했을 뿐 아니라 1985년에는 아예 정부가 원전건설계획 자체를 금지했다. 대신 당시에는 거의 백지상태였던 풍력발전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이전부터 덴마크가 특별한 풍력기술이나 관련 기업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덴마크 풍력의 역사는 사실 1978년 트빈드(Tvind) 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이 힘을 합쳐 제작했던 ‘트빈드크래프트(Tvindkraft)’라는 풍력터빈에서 시작됐다. 지금껏 작동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풍력발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는 “유럽에서 풍력에너지의 모든 것이 시작된 곳으로, 과학 및 엔지니어링 커뮤니티에서 여전히 잘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및 국가의 발전과 공동체 및 결의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라고 지금도 소개된다.

학생들과 교사들의 프로젝트는 곧 전설적인 풍력 기술자 헨리크 스티에스달(Henrik Stiesdal)에게 영감을 줘 현대적인 육상풍력과 해상풍력 모델을 만들도록 했으며, 세계 1위 덴마크 풍력터빈 기업 베스타스(Vestas) 같은 기업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지금도 덴마크는 전력생산에서 풍력이 절반을 넘는 5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지만 원전은 없다.

또한 베스타스 오르스테드와 같은 세계 굴지의 풍력발전기업을 보유하면서 세계 풍력시장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오일쇼크로 에너지 전환을 강요받던 45년 전에 덴마크가 원전 대신 풍력을 선택한 결과 풍력산업의 세계적인 선두국가가 됐지만, 스웨덴은 아직까지 원전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전 비중을 줄이려 악전고투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과연 스웨덴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bkkim21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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