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온 31.5℃에 습도는 80%, 또 하루는 36.7℃에 습도는 43%. 두 날짜 모두 온열질환에 노출될 만한 상태다. 하루는 습도가 너무 높아 체온이 올라가는 상태며, 또 하루는 폭염경보에 해당하는 온도다. 이곳은 쿠팡 물류센터였다. 정신없이 컨베이어가 움직이기에 노동자들은 온몸이 땀으로 젖도록 일을 한다. 컨베이어에서 일하지 않는 노동자도 하루 2만보 이상을 찍을 만큼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상하차를 하는 노동자들은 더할 나위 없이 노동강도가 높다
열흘 전쯤, 연일 쉴 틈을 갖기 어려웠던 에어컨이 멈췄다. 인터넷 친구들과 매뉴얼 조언에 따라 전원을 차단하고 기다리길 수 시간. 수 차례의 시도에도 더운 바람을 내뿜다 오류 코드를 깜빡이는 에어컨. 어쩐지 여름날의 ‘과로’를 토로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기계도 사람도 견디기 어려운 날들을 살아간다.주말을 지나 연락이 닿은 서비스 센터. 상담원과의 대화는 사과에서 시작해서 사과로 끝이 난다. 긴 통화 대기시간에 대한 사과, 고장으로 불편을 겪게 된 것에 대한 사과, 한 달 이후에나 가능한 방문 점검과 수리 일정에 대한 사과. 아침부
얼마 전 파업이 한창인 옥포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게서 임금체불 문제로 상담이 들어왔다. 사내하청업체가 폐업을 예고한 상황에서 5월분 임금을 대부분 지급하지 않고 있었던 것.폐업이 사실이라면 당시 하청업체의 재산은 7월10일 원청인 대우조선에서 입금될 도급대금이 전부였다. 이에 급하게 도급대금채권에 대해 채권가압류신청서를 작성하는데, 하청노동자 상당수는 큰 숫자 앞에(-)표시가 된 통장잔고를 보유 중이었다. 급여명세서에 적힌 실수령액란을 보니 왜 그런지 이유를 알 듯했다.5월 한 달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대가로 책정된 급여는 290
“비상식적인 언행으로 진정인을 압박하고 괴롭힌 사실이 인정되므로 위 판단요소 ②(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을 것)와 ③(신체적·정신적 고통 야기 등)에 해당하나 ①(관계의 우위)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어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 끝.”최근에 대리했던 직장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결과 통지문서의 일부다. 공교롭게도 이 건도 지난 7월5일자 노노모의 노동에세이(노동부 의정부지청의 이상한 법집행)에서 언급된 노동지청에서 처리한 사건이다. 위 신고사건 처리결과 통지에 따를 때 내 의뢰인은 괴롭힘 피해자는 맞지만 직장내 괴롭힘 피해
인간의 체제에서 그 어떤 법과 제도라도 완전한 것은 없으며, 나라마다 사회 상태가 다른데 제도만 이식해서 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장기 이식하듯 ‘제도 이전’을 할 수 없기에 긴 논의 과정이 변화를 이끈다. 가령 일본은 저출산-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나라로, 우리와 노동시장·노사관계·정치세력에 비슷한 점이 있어 종종 소개되는데 그 속도와 방식에 생각할 부분이 있다.한일 모두 법적 정년은 60세지만 가장 큰 차이는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이다. 일본 정년제는 정년까지 고용보장을 의미한다. 일본도 종신고용 시대가 끝났다지
1. ‘참담하고 부끄럽다’ 지난주 수요일(13일)에 읽었던 기사 제목이다. 포털뉴스에서 제목에 끌려 나는 마지막 줄까지 읽고서 문자메시지로 저장해 두기까지 했다. 18일 출근해서 를 펼쳤다가 이에 대한 칼럼을 봤다. 저장해 둘 만큼, 곰곰이 생각해 볼 정도로 곱씹고픈 뉴스였음에 틀림없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끄적거리기 시작했다.2.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상대로 연세대 재학생들이 고소와 민사소송을 잇달아 제기하자 졸업생들이 13일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후배들의 행위에 대한 선배들이 성명을 통해
사람은 홀로 모든 일을 해내기 어려워 공동체를 이뤘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간다. 대학이라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대학 캠퍼스 안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 학생·교수·교직원, 그리고 학교를 관리하는 노동자들이다.올해 3월부터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이 쟁의행위를 시작했다. 노조의 근로조건 개선 요구와 지방노동위원회의 권고안을 용역업체들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청인 용역업체들이 권고안을 거부한 이유는 원청인 학교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요구안을 들으면 놀라게 된다. 너무 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급
근로감독이란 말은 영어 labour inspection에서 온 말이다. 여기서 labour를 한국 정부는 노동이 아니라 근로로 번역하고 있다. 한국 노동법에서 ‘근로’는 정체가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근로기준법 하나만 보더라도 근로는 조항에 따라 노동(labour)이 됐다가, 일(work)이 됐다가 고용(employment)이 되기도 한다. 노동과 일과 고용은 엄연히 그 뜻이 다르지만 한국의 노동법에서는 노동과 일과 고용이 서로 뒤섞여 뒤죽박죽이다.재미난 사실은 labour inspection을 근로감독으로 번역하는 한국 정부가 근로
다큐영화 로 바빴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올해 노회찬 의원 4주기 추모주간은 저마다의 의미가 남다른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연극 〈산재일기〉를 전태일기념관에서 4일부터 10일까지 일주일 동안 공연했다. 13일에는 ‘6공화국을 넘어 새로운 공화국으로’라는 제목으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20일에는 한국수사학회와 함께 ‘노회찬의 말과 글’이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다. 곧 출간될 을 집필한 이광호 작가의 강연과 대담도 두 차례 열린다. 재단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들어갈 수 있는 온라인추모관에는 ‘소통
“에쓰오일에 불났다. 너네 직장은 별일 없제?” 친구가 보낸 문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문자와 동시에 전송된 동영상에선 몇 번 스쳐 지나간 에쓰오일 울산공장이 폭발사고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차에 전국 안전관리자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을 봤다. 많은 안전관리자가 ‘에쓰오일에서도 저런 큰 사고가 나냐’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에쓰오일은 안전관리 수준이 높은 업체다. 휘발성 물질, 석유류 제품을 취급하기 때문이다.폭발 화재사고는 전국 방송을 타고 말았다. 하청노동자 한 명 사망, 원·하청 노동자 아홉
“고개 빳빳이 드는 정치 하지 마세요. 나중에 ○됩니다. ㅋㅋㅋ”“안 되겠다. 곧 한 대 맞자. 조심히 다녀.”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성남시장을 하던 2010년부터 약 3년7개월간 수행비서를 했던 백종선씨가 이 의원을 비판한 민주당 의원들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백씨는 민주당 윤영찬 의원과 이원욱 의원에게 이 글을 남겼다. 백씨는 문제가 불거지자 사과했다.(조선일보 6월14일 6면 “‘한대 맞자’ 협박글 쓴 이재명 前비서, 논란일자 사과”)백씨는 사과 글도 의원들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앞으로 죽은 듯이 조용히 의원님의 열정을 세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신분이 보장된 정규직 신입사원의 대규모 공개채용은 이제 옛이야기다. 경제위기와 불안정한 경영환경으로 인력운영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은 경력직을 선호한다. 불가피하게 신규채용이 필요할 경우 신규채용 노동자의 능력과 적성을 파악하고 회사에 적응시키기 위해 정규직 채용을 유보하고 기간을 두는 것도 필수적이다.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신입사원 선발 방식이 대표적인데, 이명박 정부 이후 대기업과 공기업을 중심으로 채용형 인턴이라는 제도가 신규채용의 일반적 경로가 됐다.구직자가 해당 기업의 사업 환경을 이해하고 업무를
최근 한 SF소설을 읽다가, 참 진부하나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건 무엇인가?’종교를 믿는 이들은 신을 올려다볼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으며, 인간은 신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면 된다고 하면서. 그러면 이성이 반기를 들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다.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신의 말씀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뜻한 바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대답 역시 만족스럽지 않다. 인간은 이성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감정에 쉽게 휩싸인다. 이성으로 설명하기 힘든 무의식도 있다. 자칭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TV드라마 에서 원빈은 송혜교를 보면서 사랑을 돈으로 사겠다고 외쳤다.이 대사가 떠올랐던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집회신고에 대한 경찰의 계속되는 금지통고서를 보면서 문득 원빈의 외침이 떠올랐다. ‘집회의 자유….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하면 될까, 얼마나 줄이면 되겠냐?’6월 말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이달 2일에 있었던 민주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와 관련한 수많은 집회 및 행진 신고서와 그에 대한, 또 그만큼의 ‘금지’통고서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신고된 집회 등의 내용을 모두 파
자긍심의 달(Pride Month)인 6월이 되자 모든 것에 무지개가 덮였다. 내가 다니고 있는 베를린의 한 대학교 정문에도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렸다. 자주 가는 마트에도, 길거리의 흔한 술집에도, 카페에도, 서점도, 부동산 업체의 창문에도, 화장품 가게의 제품들에도, 아시아 마트의 사케에도 무지개가 입혀졌다. 지나다 들른 대형 옷가게에서는 무지개가 그려진 특별 제품들을 내놓았다. ‘좋은 의미니까’라고 스스로 정당화하며 생각이 없던 소비를 하나둘 했다.런던에서 열리는 성소수자 축제(London Pride)에 참여하고
1. “모두 다 부당한데요.” 지난주 한 방송사 작가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반 국민을 시청자로 하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취재해서 보도하고자 하는 것이니 내 대답이 그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도 굳이 이렇게 했다. 최근 대법원 판결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임금피크제에 관해서였다. 우리 노동현장에서의 구체적 실태와 문제점을 취재하고 싶다며 부당하다고 여길 만한 사례를 알려 달라고 했으니 나는 그에게 누구나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대표적인 사례를 알려주면 됐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사업장 이름을 말하
새 정부가 들어선 지 2개월이다. 보통 ‘새’자를 쓰면 기대감이 드는데, 요즘은 걱정만 쌓여 간다. 경제위기 시대에 긴축정책을 쓴다고 하지를 않나 국회 원구성이 되는 날 인사청문회 없이 장관을 임명한다. 너무 비상식적이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는가? 아니면 더 나빠지는가? 나아지다 나빠지다 하면서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가? 절망과 희망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멈춰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지 다짐을 하지만 복잡다단하다.한국노총 사무처장 출신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통해서 “현재 1주일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만든다. 인간은 인간이 창조한 것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비코는 이렇게 해서 역사철학을 개척했다. 필자는 대학 1학년 시절(세계사적으로 유명한 그 1968년이다) (에드먼드 윌슨 저)라는 책의 가장 앞 장에서 이 얘기를 접했다. 비코의 이 말에 자극받아 유물사관 같은 역사철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 책에서 또 칼 마르크스는 인류와 인간을 해방시키는 투쟁에 일생을 바친 혁명가였으며, 혁명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을 비롯한 저술활
비어 있는 내공농사짓는 사람에게는 농사에 필요한 내공이 있고 어부에게는 고기잡이 내공이 있다.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투자 내공이 필요하고 정치하는 사람에게는 정치 내공이 필요하다. 노동하는 사람에게도 내공이 필요하다. 단지 일에 대한 숙련이나 성실성만 가지면 일하는 기계가 될 수 있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해 노동에 대한 모든 권리를 챙기는 노동권 내공이 필요하다.태극권·당랑권·소림권·태권을 비롯한 무술도 훈련을 통해 연마하면 내공이 높아지듯이 노동권도 경험하면서 내공이 쌓인다. 그러나 모든 노동시민에게 보장된 노동권을 접하지 못한 사
이건 그냥 상상이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2024년 7월11일, 국회는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1주 12시간에서 한 달 50시간으로 연장하고, 1일·1주 단위 근로시간 한도를 근로자대표와 합의로 예외를 두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압승한 여당 소속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이 2024년 6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고 신속처리안건으로 의결한 지 한 달 만이었다. 야당과 노동계·시민사회가 극렬 반발했지만 여당 출신 국회의장이 사업장 규모별 시행시기를 조정하는 부칙을 중재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