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동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얼마 전 파업이 한창인 옥포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게서 임금체불 문제로 상담이 들어왔다. 사내하청업체가 폐업을 예고한 상황에서 5월분 임금을 대부분 지급하지 않고 있었던 것.

폐업이 사실이라면 당시 하청업체의 재산은 7월10일 원청인 대우조선에서 입금될 도급대금이 전부였다. 이에 급하게 도급대금채권에 대해 채권가압류신청서를 작성하는데, 하청노동자 상당수는 큰 숫자 앞에(-)표시가 된 통장잔고를 보유 중이었다. 급여명세서에 적힌 실수령액란을 보니 왜 그런지 이유를 알 듯했다.

5월 한 달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대가로 책정된 급여는 290만원. 근무시간 대비로는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다. 그러나 건강을 돌보지 못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린 노동의 대가 치고는 너무나 적었다.

다른 이들의 명세서에 책정된 금액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근무일수와 경력이 가장 높은 사람도 300만원대 급여가 책정돼 있었다. 경력과 숙련도가 그들의 임금을 책정하는 데에는 큰 변수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청노동자들이 많이 일하는 도크의 작업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고용노동부·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옥포조선소는 한 해에만 500건 이상 산재신청이 이뤄질 정도로 유해한 작업현장이다.

평균 90데시벨(dB), 최고 110데시벨에 육박하는 작업 소음을 견뎌야 하고 그라인딩 작업이나 용접작업 등으로 쇠나 페인트 가루가 흩날려서 호흡하는 공기의 질도 좋지 않다. 30~50미터 고소부에서 작업하는 일이 빈번해 추락할 위험에 항시 노출돼 있다. 선박이라는 것이 쉽게 이야기하면 바닷가에 덩그러니 놓여진 거대한 쇳덩이이므로 여름에는 달궈진 쇠의 열기를, 겨울에는 살을 에는 겨울 바닷바람을 맞아 가며 일한다.

이렇게 써 놓고 봐도 부족한 것 같다. 사건 조사차 옥포조선소에 직접 가서 본 경험을 토대로 단언컨대, 이런 몇 문장의 글이나 영상·사진·통계 등의 자료로는 작업환경의 열악함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몇 사람은 쓰러져야 혹서기 작업중지권이 발동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고용불안은 덤이다.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구조가 횡행하다 보니 물량팀이라고 불리는 하청노동자들은 하루 일해서 하루 먹고산다. 그보다는 나은 계약직의 경우도 1~3개월짜리 계약을 맺고 일해 왔다. 지난해 조선하청지회의 투쟁으로 단기계약 빈도가 줄었다고는 하더라도 옥포조선소에 엄연히 존재하는 고용실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조선업이 위축되자 하청노동자들의 인건비부터 깎여 나갔다. 2010년대 초중반의 임금에 비해 60~70% 수준으로 낮아졌다. 재계약이 무산될 수 있으니 부당한 처우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하청업체들은 몇 푼이라도 더 남겨 먹겠다고, 노동자들의 4대 보험료를 체납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그로 인한 불이익은 고스란히 하청노동자들의 몫이 돼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이 조선소를 떠나게 됐다. 심한 때는 한 해에 4천명 넘는 하청노동자가 현장을 떠났다. 그렇게 떠난 노동자들은 조선업계가 전 세계 수주실적 1위를 탈환한 현재에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하청노동자들의 상황은 외면당하고 있다. 어려울 때 책임을 전가하던 사측은 지금도 위기를 가장하며 하청노동자들의 요구에 귀를 닫고 있다. 파업으로 하루에 2천600억원을 손해 보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 말이 사실이면 조합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서로 윈-윈일 텐데 말이다.

정부마저도 ‘관계부처 합동 담화문’ 등을 통해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불법이라고 비난하며 숟가락을 얻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담화문의 마무리는 취약 근로자 처우개선을 위해 힘쓰겠다는 말로 끝이 난다. 그들이 말하는 취약계층 근로자에 조선하청 노동자들은 제외돼 있다는 말인지 되묻고 싶다.

하청노동자들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무임금이 원칙인 파업에 돌입한 이유는 자명하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다. 요구사항도 간명하다. 업황이 좋지 않을 때 후려쳤던 임금을 회복해 달라는 거다.

이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정부와 사용자는 더 이상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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