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며칠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온 31.5℃에 습도는 80%, 또 하루는 36.7℃에 습도는 43%. 두 날짜 모두 온열질환에 노출될 만한 상태다. 하루는 습도가 너무 높아 체온이 올라가는 상태며, 또 하루는 폭염경보에 해당하는 온도다. 이곳은 쿠팡 물류센터였다. 정신없이 컨베이어가 움직이기에 노동자들은 온몸이 땀으로 젖도록 일을 한다. 컨베이어에서 일하지 않는 노동자도 하루 2만보 이상을 찍을 만큼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상하차를 하는 노동자들은 더할 나위 없이 노동강도가 높다. 그런데 이 현장에는 냉방시설이 없다. 그나마 폭염경보라도 내려야 점심시간 전에 15분의 휴게시간이 주어지고, 멀어서 가기 힘든 휴게실 대신 일하는 곳 바닥에서 쉬기도 한다.

쿠팡은 노동자들이 시원하게 일할 수 있도록 냉방대책을 마련했다고 했다. 쿠팡 뉴스룸에 따르면 선풍기와 서큘레이터·에어컨 2만대를 설치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쿠팡 물류센터가 얼마나 쾌적한지를 자랑하며 안성 물류센터의 내부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안성 물류센터 한 곳을 제외하고, 100개가 넘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에어컨을 구경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안성센터에 천정형 에어컨을 설치한 것을 보면 다른 곳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텐데, 왜 다른 물류센터에는 에어컨 소식이 감감한지 궁금하다. 노동자들이 선풍기와 서큘레이터를 구경한 적은 있다 하나 이조차도 전기 문제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사용을 해도 더위를 식히는 데 별다른 소용이 없다는 게 현장노동자들의 증언이다.

더불어 쿠팡은 얼음물 200만개와 아이스크림 100만개를 지급한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언제라도 얼음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 놓았다고 자랑도 했다. 200만개라고 하니 대단히 많아 보이지만, 현재 쿠팡 물류센터에는 4만명 가까운 노동자가 일을 한다. 더운 여름이 50일 정도라고 가정하면, 얼음물은 한 사람당 하루에 한 개밖에 지급이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이스크림은 이틀에 한 개 꼴이다. 실제로도 노동자들은 얼음물을 하루에 한 개만 지급하며, 혹서기에는 두 개씩 지급한다는 공지를 받았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혹시라도 얼음물을 더 가져갈까 봐 냉동고에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는데, 이 정도면 쿠팡의 폭염대책은 노동자 우롱에 가깝다. 생색은 내는데 알맹이는 없는 쿠팡의 폭염대책을 도대체 어찌해야 하나.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지난해 6월에 노조를 만들고 15차례 교섭을 했다. 그런데 노조 인정에 대해서도, 노조의 요구인 냉난방 시설과 휴게시간에 대해서도 쿠팡 풀필먼트 사측은 단 한 번도 안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교섭은 결렬됐고 조정도 중지됐다. 게다가 사측은 노조간부인 교섭위원과 집단괴롭힘 피해자를 ‘계약기간 만료’라는 이름으로 해고했다. 노동자들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완강한 태도가 확인된다. 무더위를 견디기 힘든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을까 봐 ‘올바른 근로문화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결근과 조퇴를 통제하겠다는 쿠팡. 쿠팡은 노동자가 존엄과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잊고 있는 게 아닐까. 기업이 이토록 성장하기까지 땀 흘려 온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쿠팡은 과연 제대로 된 기업일까.

쿠팡의 노동자들이 무더위 속에서 일하는 데에는 고용노동부의 책임도 크다. 최근 5년간 여름철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29명에 달한다고 한다. 대다수는 건설노동자들이지만, 물류센터 등의 작업장에서도 온열질환 노동자가 계속 발생한다. 노동부는 고온의 실내 환경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물류센터 등에서 작업장 내 냉방장치 설치 등 별도의 예방조치를 하고, 휴게시간 보장 조치도 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현장의 노동자들이 냉난방시설 설치를 호소하고 있는데 정작 노동부는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 손을 놓고 있다. 노동자들이 언제까지 이런 당연한 요구를 하면서 농성을 해야 하고, 해고를 당해야 할까. ‘폭염대응 특별단속’을 하려면 지금 문제가 되는 현장에서부터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정부도 제 역할을 하지 않고 회사도 답하지 않으니, 노동자들이 물류센터에 직접 에어컨을 설치하러 가겠다고 한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20일부터 잠실 본사를 출발해 23일 동탄 물류센터에 도착하는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지금도 얼음물 하나로 9시간을 버티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에게 시원한 연대의 바람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노동자를 갈아서 이윤을 남기는 쿠팡에 항의하고, 노동자에게 냉방시설이 필요하다고 외치면 좋겠다.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그 일터는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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