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참담하고 부끄럽다’ 지난주 수요일(13일)에 읽었던 기사 제목이다. 포털뉴스에서 제목에 끌려 나는 마지막 줄까지 읽고서 문자메시지로 저장해 두기까지 했다. 18일 출근해서 <매일노동뉴스>를 펼쳤다가 이에 대한 칼럼을 봤다. 저장해 둘 만큼, 곰곰이 생각해 볼 정도로 곱씹고픈 뉴스였음에 틀림없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2.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상대로 연세대 재학생들이 고소와 민사소송을 잇달아 제기하자 졸업생들이 13일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후배들의 행위에 대한 선배들이 성명을 통해 입장을 밝힌 것이다. 나는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한 부분에 꽂혔다. 입장문에서 연세대 졸업생 2천373명은 “재학생 3명의 고소 사건에 졸업생으로서 매우 참담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밝혔다.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지지하고 그 투쟁에 연대하지 못할망정, 오히려 그 노동자들을 비난하고 그들을 상대로 고소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다니 졸업생으로서 이런 재학생의 행위가 너무도 참담하고 부끄럽다는 것이다. 이런 졸업생의 참담함과 부끄러움에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자본의 가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타인을 위한 지지와 연대가 너무도 옳은 것이라고 전제하고서 이렇게 당당히 후배들을 질타하는 선배들의 입장 표명은 정말 오랜만이다. ‘노동자’ ‘민중’ 이런 단어 하나만으로도 심장이 붉게 뛰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입장문의 졸업생 대부분은 그 시절에 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소외된 계급·계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명제였던 때가 있었지만. 오늘은 더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참담하고 부끄럽다는 말에 놀랐다. 잊혀지고 파묻혔던 시절이 되살아나는 듯해서 나는 소중히 읽어 나갔다. 그 시절에 읽었다면, 정치경제학과 철학·사회과학을 학습한 단어와 분석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고 대단하게 여기진 않았겠지만 오늘은 명문이라도 되는 양 정말 소중하게 한 줄 한 줄 빠짐없이 읽어 나갔다.

“불편에 대한 책임을 잘못된 곳에 묻는 무지, 눈앞의 손해만 보고 구조적 모순은 보지 못하는 시야의 협소함,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는 마음이 안타깝다” “확성기의 소리가 불편했다면 확성기를 가지고 백양로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방치한 학교측에 책임을 묻고 분노해야 한다”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할 책임과 결정권은 학교에 있다” “학생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갔을 때 받을 정당한 임금, 부당하게 해고당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전장치, 쉴 수 있는 일요일과 휴가가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며 시장의 법칙을 뛰어넘어 불편에 대항하는 목소리와 연대가 모든 구성원 삶의 최저선을 끌어올렸기 때문” “이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최저선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3. ‘연세대 청소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까닭’이란 제목으로 류하경 변호사가 18일자 <매일노동뉴스>에 쓴 칼럼에서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요구와 쟁의행위를 읽을 수 있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쟁의행위는 시급 440원 인상, 샤워실 설치, 퇴사자 공석에 신규채용 3가지 요구를 위해서다. 여기서도 노동자들은 용역업체 소속이다. 지방노동위원회의 권고안을 용역업체가 거부했는데 이는 원청인 학교측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용역업체로서는 원청 사업주가 노동자들의 인건비 등 용역경비를 지급해야 하는 것이니 원청이 들어주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 할 것이고, 원청은 자신이 사용자가 아니라며 법적 책임이 없다고 변명할 것이고, 그래서 이 나라의 수많은 용역노동자들의 투쟁처럼 진행돼 온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류 변호사는 칼럼에 “용역업체에 요구를 하면 ‘우리는 학교에서 내려주는 돈으로만 운영을 하기 때문에 당신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고 하고, 학교에 요구를 하면 ‘우리는 법적인 사용자가 아니니까 업체에 가서 말하라’고 한다. 책임 떠넘기기 핑퐁판 위의 하청노동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썼다.

실질적 권한을 가진 자와 법적 책임자의 분리가 여기서도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통해 일정한 경우 실질적 권한을 가진 자가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지도록 했지만, 연세대 청소노동자의 경우처럼 대부분의 용역노동자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열악한 용역 노동자들의 법적 지위 내지 법적 현실이 더욱더 노동자들의 투쟁을 비난에 몰아넣고 있다. 학교 소속 노동자도 아닌데, 학교에서 쟁의행위로 학생들의 학습권을 방해하고 있다는 식의 비난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난은 낯설지 않다. 2003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사내하청노조를 조직해서 쟁의행위를 하기 시작했을 때 들었던 비난이다. 당시 원청 현대차는 쟁의행위 중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현대차 자신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공장임을 내세워 쟁의행위 중단 및 출입 금지 가처분 등 소송을 제기했다. 사측 관리자 등도 고소와 고발, 손해배상 등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에는 정규직 조합원이 민사소송을 제기한 기억은 없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이 나라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 투쟁이 전개됐다. 그 투쟁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원청 사업주가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즉 원청노동자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일부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비정규직으로 남아 오늘도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자의 무책임에 고통받고 있다. 이렇게 보면 오늘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들만의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는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 모두의 투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4. 이렇게 용역업체 노동자 모두의 투쟁이라고 본다면, 연대의 목소리는 너무도 보잘 것이 없다. 연세대에서는 졸업생들이 참담하고 부끄럽다고 입장을 밝히면서 소송 지원 등 연대의 행동에 나섰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다. 일부 재학생들이 용역노동자들을 상대로 고소하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돼 졸업생들의 연대 목소리를 냈지만, 다른 사업장들에서는 그렇지 않다. 설사 재학생들이 고소와 소송을 했더라도 참담하고 부끄럽다는 입장을 밝힌 졸업생들이 있다는 걸 나는 알지 못한다. 졸업생들의 목소리만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가 내야 할 목소리였다. 우리의 사업장에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아닌 그들로 다른 취급을 해 왔다. 그들 중 일부만 파견 노동자로 인정해서 우리 취급을 해 줬을 뿐이다.

한동안 세상을 바꿀 듯한 기세로 치열하게 전개됐던 비정규직 투쟁도 사그라진 오늘, 사용자 자본을 위한 것만 자유로 외쳐지고 있다. 기업을 위한 것 말고는 자유가 없다. 노동자의 자유에 대한 보수와 반동의 목소리만 들린다. 노동자투쟁의 목소리는 제대로 울려 퍼지지도 않는다. 재학생들이 고소하고 소송하면 보도되고, 졸업생들이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연대해야 크게 보도되는 정도다. 어디서도 용역노동자에 연대하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그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삭감하려는 시도만 노동시장 구조개혁 등 노동개혁의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1주일이 아닌 1개월 단위로 해서 연장근로 제한을 완화하는 등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기업 현실에 맞게 개정하겠다는 등 윤석열 정부는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 기업의 자유를 위해 달려 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고용노동부는 전문가들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구성해서 노동개혁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서 18일 <매일노동뉴스>는 “재계서 받아 전문가에 설계 맡기는 ‘윤석열표 노동개혁’”이라고 비판했다. 너무도 뒤쳐져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로 나아가기에도 바빠야 할 이 나라에서 이런 노동개혁이라니. 나는 참담하고 부끄럽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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