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최근 한 SF소설을 읽다가, 참 진부하나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건 무엇인가?’

종교를 믿는 이들은 신을 올려다볼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으며, 인간은 신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면 된다고 하면서. 그러면 이성이 반기를 들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다.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신의 말씀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뜻한 바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대답 역시 만족스럽지 않다. 인간은 이성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감정에 쉽게 휩싸인다. 이성으로 설명하기 힘든 무의식도 있다. 자칭 이성적이라는 인간이 전쟁·폭력·빈곤·불평등·차별·혐오 등 어리석은 짓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나.

미래에 인간을 완벽하게 흉내 낸 인공지능이 만들어진다면, 혹은 인간을 복제하는 게 가능해진다면 인간을 정의하는 일은 한층 더 어려워질 것이다. 어떤 식으로 정의 내리려 한들 다음과 같은 반론에 직면할 터이니. “인공지능이나 복제 인간도 그런데? 그러면 이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야?”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울 때는 한번쯤 질문에 대해 질문해 보는 것도 좋다. 질문의 테두리에 갇혀 사고를 한정 짓지 말자는 말이다.

꼭 한 줄의 명료한 문장으로 복잡한 인간 존재를 정의 내릴 필요는 없다. 인간 한 명 한 명은 그 나름의 이야기를 가진다. 끝까지 스스로를 써내려 가다가 결국 스러지는 존재다. 중요한 건 각자의 개별성을 그대로 존중하는 것, 그리고 다수가 공유하는 공통의 이야기를 의식하고 그것에 참여하며 함께 써내려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는 ‘노동자를 노동자이게 하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노동자는 사용자가 마치 시혜를 베풀 듯 체결한 근로계약서 없이는 노동자로 인정받기 힘들다. 형식이 실질을 우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법의 한계 역시 분명해 보인다. 판결을 기다리는 건 지난한 과정이며, 법은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기에 너무나도 굼뜨다.

노동자를 노동자이게 하는 건 그들이 행하는 매일의 노동에, 그러며 맺는 관계에, 자신과 동료의 노동을 지키고 다듬어 가는 행동에 있다. 노동자의 이야기는 사용자도 법과 제도도 아닌 노동자가 스스로 써내려 가는 것이다.

노동하기 전과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어느 노동을 하든 그렇다. 우리는 자신이 행하는 노동에 물들 수밖에 없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노동에 맞춰 생활 습관, 신체, 인간관계, 진로, 사고 패턴, 성격 등이 변한다. 인생의 상당 부분을 노동을 준비하고 하면서 보내는데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노동이 빈곤해서는 안 된다. 빈곤한 노동은 노동자를 빈곤하게 만든다. 빈곤한 노동은 단지 물질적 보상이 빈곤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억지로 버티는 노동, 육체를 아프게 하는 노동,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노동, 노동자가 주체가 될 수 없는 노동을 아우른다. 이러한 노동은 건강하지 않다. 노동자의 삶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무기력하게 만든다.

우리는 건강한 노동을 지키기 위해, 혹은 쟁취하기 위해 때로는 싸울 줄 알아야 한다. 그 싸움은 임금이나 고용안정과 같은 생존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나라는 존재를 긍정하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써내려 나가며, 인간으로서 존엄과 자긍심을 지키는 투쟁이다.

노동하기 전과 후의 나가 다른 사람이듯, 투쟁하기 전과 후의 나 역시 다른 사람이다. 투쟁으로 인해 나의 노동이 변한 결과 때문이기도 하고, 투쟁 자체의 경험에서 오는 자극 때문이기도 하다. 투쟁은 노동을 잠시 잊게 한다. 이는 더 나은 노동을 바라는, 긍정을 위한 부정이다. 노동자는 투쟁하며, 자신의 노동과 노동하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목놓아 외치고 결연히 행동한다. 자립하는 주체로서 자유롭다. 때로는 투쟁을 축제처럼 즐긴다. 웃고 노래 부르고 춤춘다. 노동하며 쌓인 울분을 해소한다. 이렇게 투쟁의 뜨거움을 맛본 노동자는 결코 투쟁 전과 같을 수 없다.

노동자의 이야기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었다. 하루하루 묵묵히 노동하며 써내려 왔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한편에서는 노동자를 부정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노동을 쪼개고, 노동에 회칠했다. 그러나 노동하고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노동자는 노동자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를 노동자이게 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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