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준 아유 대표

비어 있는 내공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농사에 필요한 내공이 있고 어부에게는 고기잡이 내공이 있다.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투자 내공이 필요하고 정치하는 사람에게는 정치 내공이 필요하다. 노동하는 사람에게도 내공이 필요하다. 단지 일에 대한 숙련이나 성실성만 가지면 일하는 기계가 될 수 있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해 노동에 대한 모든 권리를 챙기는 노동권 내공이 필요하다.

태극권·당랑권·소림권·태권을 비롯한 무술도 훈련을 통해 연마하면 내공이 높아지듯이 노동권도 경험하면서 내공이 쌓인다. 그러나 모든 노동시민에게 보장된 노동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기본인 노동 3권을 누리는 사람들 비율이 낮다. 많은 시민이 노동권 내공을 쌓을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노동권이 무엇인지 들을 기회도 그다지 많지 않다.

노동권은 첫째로 특별하다. 노동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러나 흔하다. 아니 흔해야 한다. 노동하는 시민이 다수이기 때문에 다수가 누려야 할 사회적 권리다. 셋째로 뜨겁다. 사용자의 소유권과 부딪치기 때문이다. 한눈팔면 잃는다. 넷째로 ‘떼’다. 노동자 개인은 돈 많은 사용자에 비해 약하기에 뭉쳐야 한다. 단단하게 뭉칠 줄 아는 관계력이 중요하다. 다섯째로 수준이 있다. 기본인 생존권, 좀 나간 노동 3권, 높은 수준의 공동결정권 등이 있다. 낮은 수준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지속적 향상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권 지우개

야구선수의 꿈을 가진 사람은 야구공과 글러브를 애지중지한다. 그러나 그 꿈을 버리면 야구공과 글러브도 팽개친다. 꼭 이런 모양새였다. 민주화를 향해 맹렬하게 질주하던 시절 노동자 민중이 주인 되는 혁명을 추구했던 사람들은 꿈을 버리면서 노동자도 버렸다. 혁명의 꿈을 버리지 않으면 노동권에 충실할까. 노동자 권리보다 정치적 동원에 골몰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이들에게 노동자 권리는 정치적 동원을 위한 사탕일 뿐이다. 그들은 야구장을 가지고 싶을 뿐 야구에 별 관심이 없다. 자기 목적에 가려 노동권을 보지 못한다.

노동권 초급과정은 자주적으로 단결해 노조를 만드는 것이다. 중급은 단체교섭을 통해 교섭력의 내공을 쌓는 것이다. 고급은 단체행동을 통해 다양한 투쟁을 경험하는 것이다. 단결하고 교섭하고 행동한 끝에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노동권 초단을 딴 셈이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비롯해 험한 파도를 만날 수도 있지만 단결하고 교섭하고 행동하며 내공이 쌓이면 웬만한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노동권 고수가 된다.

그렇다면 크고 오래된 대기업 민주노조는 노동권 고수일까. 외환위기와 함께 닥친 실업공포로 정신적 피폭상태를 경험한 그들의 노동권 내공은 상처를 입었다. 통상적으로 불안과 공포는 그것으로부터의 탈출에 집착하는 심리를 만든다. 시야는 좁아진다. 생존경쟁에 빠지면 생존본능이 강화된다. 불평등과 차별에 저항하며 노동권 고수가 된 것이 아니라 생존경쟁을 겪으며 흔들렸다. 노동권 수호자가 돼야 할 노조가 실리에 붙잡히면 이기적 집단 이미지에 갇힌다. 이런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지금 다가온 복합위기에서 후퇴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권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이터치

기술을 앞세워 하이테크로 내달리는 시대다. 재화와 서비스를 비롯한 가치를 노동이 아닌 기계나 인공지능이 생산한다는 주장이 강해질수록 노동은 찌그러든다. 기업이 고기술에 집착할수록 기계·로봇·인공지능이 노동을 밀어낸다. 쉽게 대체되는 것은 쉽게 버려진다. 대체 가능한 노동자는 외면당한다. 하지만 노동시민은 언제나 사회의 다수다. 하이테크가 부각될수록 노동권이 중요해진다. 플랫폼노동·돌봄노동 등 노동권 사각지대 현실이 잘 보여준다.

‘소유권-기술력-하이테크’가 한 쌍을 이룬다면 ‘노동권-관계력-하이터치’가 하나의 쌍을 이룬다. 자본은 더 많은 소유를 위해 기술력에 집중하면서 하이테크 시대로 나아간다. 노동권은 더 탄탄하게 뭉치는 관계력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고 돌보는 하이터치다. 하이터치는 서로를 존중하는 따스한 감각이 흐르는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돌보는 고도의 접촉이다.

노동권을 임금인상과 같은 물질적 문제나 조직력과 같은 물리력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격한 투쟁을 겪은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의 심리상담을 위해 설치했던 ‘와락’을 비롯한 사례들이 심리적 요소의 중요함을 보여준다. 무권리 노동자는 두려움을 넘어 동료와 공감하는 마음 상승이 있어야 임금인상도 할 노조로 뭉친다. 하이터치는 심리적이고도 물리적이며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다양한 것으로 이뤄진다.

21세기 노동권 고수

BTS가 빌보드 차트를 휩쓸면 팬의 기분은 좋아질 수 있지만 직접 이익을 얻는 것은 소속사다.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이 돼 팬에게 기쁨을 줄지 모르지만 팬의 일상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유명 정치인의 일부 측근들에게는 이익이 돌아오겠지만 지지자의 삶이 바뀌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노동과정에서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노동시민에게는 바로 그 일상을 바꿀 ‘노동권 고수’가 필요하다.

폭력에 맞서 강력한 전투가 필요했던 시대에 노동권 고수는 전위투사였다. 노동정책에 관한 연구자도 노동권에 기여한다. 대중운동이 약해지고 법에 의존하게 되면 노무사나 변호사 역할이 커진다. 그러나 노동시민의 관계를 잇고 튼튼하게 하는 관계력 충만한 사람들이 진정한 노동권 고수다. 노동권은 집단적 힘을 통해 발휘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떼’를 이루는 네 번째 특성 때문에 노동권 내공은 혼자 쌓을 수 없다. 노동권 고수는 홀로 빛나는 스타가 아니라 여럿이 연결된 관계다.

자본증식을 닮은 조직확대는 낡은 관행의 전파에 머물러 변화된 산업과 무노조 상태에 놓인 상황을 돌파할 질적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기존 노조들의 ‘조직화’에는 기존 생각을 전파하고 기존 방식으로 조직을 만들고 기존 방식으로 실천하려는 경향이 있다. 당사자의 생각을 발견하고 당사자에 맞는 조직화를 찾고 스스로에게 맞게 실천하는 ‘자력화’가 필요하다. 조직화가 기성노조 확대라면 자력화는 새로운 권리주체의 탄생이다. 자력화는 가려진 존재가 모여 서로에게 기여하고 서로의 존재에 감사할 시공간을 여는 것이다. 외부에서 들어가는 조직화는 아웃사이드-인(Outside-In)에 가깝다면 자력화는 인사이드-아웃(Inside-Out) 전략에 가깝다.

최근엔 아마존이나 애플에서 노조설립을 주도한 미국의 20대 유니온 세대를 한국 언론이 소개한다. 세계적으로 하이테크 시대에 새로운 산업들에서 노조를 만들고, 플랫폼이나 돌봄노동을 비롯한 노동권 사각지대에서 노동권 내공이 축적되고 있다. 기후위기를 맞아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성장의 포로가 된 노동이 아니라 생태계와 공존하는 성숙한 노동윤리를 가진 새로운 주체들이 탄생할 조건이 될 것이다.

노동권 고수들은 결코 신비롭게 등장하지 않는다. 대리운전, 라이더, 물류센터, 제빵기사 노조, 조선소 하청노조 등 관심과 연대가 모이는 새로운 주체들의 투쟁에서 노동권 내공을 축적하는 노력이 이어진다. 요란한 관심을 끌지 않지만 무노조 공장들에서 성공적으로 노조를 만들어 착실하게 노동권 내공을 쌓아 가는 곳들도 있다. 일상이 이어지는 바로 곁의 노동현장에서 노동권 고수들이 성장한다.

아유 대표 (jogjun@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