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혜 안전관리 노동자

“에쓰오일에 불났다. 너네 직장은 별일 없제?” 친구가 보낸 문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문자와 동시에 전송된 동영상에선 몇 번 스쳐 지나간 에쓰오일 울산공장이 폭발사고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차에 전국 안전관리자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을 봤다. 많은 안전관리자가 ‘에쓰오일에서도 저런 큰 사고가 나냐’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에쓰오일은 안전관리 수준이 높은 업체다. 휘발성 물질, 석유류 제품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폭발 화재사고는 전국 방송을 타고 말았다. 하청노동자 한 명 사망, 원·하청 노동자 아홉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콤프레셔에 연결된 배관 밸브를 풀던 중 부탄이 누출되면서 폭발했다는 내용도 함께 실렸다.

비상이 걸리고 말았다. 회사에선 원청 공장장이 안전규정을 강화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공장 정기 보수공사 기간이었다. 석유화학업체·발전소 등은 봄가을 주기로 설비 전체를 정비하는데 바로 그 시기다. 이때는 2주에서 3주 정도 공장 가동이 정지된다. 기간 내 설비 정비를 마쳐야 하다 보니 산재사고 위험도가 높아진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된 이후, 공장 내 안전규정이 강화되고 있었던 와중이었다. 업무량이 급속도로 불어나고 말았다.

기존에는 수리 구간을 플러싱(FLUSHING)이나 퍼지(PURGE)하면 기본 안전장구(안전벨트와 보안면 또는 보안경, 장갑류)만 착용하고 작업이 진행됐다. 플러싱은 질소 등으로 잔여물을 제거하는 절차, 퍼지는 스팀으로 잔여물을 제거하는 절차다. 하지만 각 화학물에 알맞는 안전장구류를 착용하지 않으면 작업허가서를 발급하지 않도록 바뀌었다. 이전 정기수리에 비해 안전 관리비 사용액이 두 배가량 불었다. 발주 당시 안전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말았다.

안전장구류 가짓수가 늘어나면서, 작업 속도도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장구류를 챙기는 데 걸리는 시간, 작업자들이 안전장구류를 입는 시간,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대해 이전보다 더욱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났다. 또한 원청 안전팀과 안전감시단(원청 안전팀 업무를 보조하는 전문업체)의 현장 감시 수위도 높아졌으며, 심지어 생산팀까지 안전 최우선을 방침으로 하면서 작업 소요시간이 늘어났다.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준비할 게 많아졌다.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저녁 8~9시에 퇴근했다.

상당히 난감해졌다. 이미 최저입찰에 준하는 수준으로 공사를 따서 작업을 수행하는 데다, 정기수리 특성상 정해진 기한 내 끝내야 한다. 안전관리가 우선임에도,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안전팀과 안전감시단에서 보낸 지적조치 요구 전화를 한 시간당 네댓 통씩 받았다. 공사 기간 내내 물건을 옮기다 허리나 발목을 삐끗한다거나, 분진이 눈에 들어갔다거나 하는 부상사고가 한두 건씩 발생했다.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원청 관리자가 “오늘 따라 엄청 날이 서 있으시네요. 좀 풀면서 하시죠”라고 할 정도였다.

나만 이런가 싶었지만, 다른 업체 안전 담당자들도 마주칠 때마다 고충을 호소했다. 안전관리자 한 명이 하기엔 업무가 많아 야근이나 조근이 일상화된 상태였다. 수시로 고용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에서 현장 안전관리 실태조사를 이유로 방문했다. 에쓰오일 폭발 화재사고 이후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울산지청장이 직접 석유화학공단 주요 대공장 안전실태를 점검하러 방문하기도 했다. 안전관리자 입장에서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혹여나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구속까지 될 수 있으니, 날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안전관리자는 “요즘 안전관리자 수요가 늘어서 좋은데, 일이 너무 많아서 가끔 못해 먹겠다 싶을 때도 있다”며 토로하기도 했다.

안전관리 인원은 한정적이다. 비용도 한정적이다. 산재사고 예방과 대응을 위한 여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안전한 일터는 당연히 필요하다. 누구든 일하다 죽거나 다치지 않아야 한다. 안전관리자로 일하면서 매일같이 일터에서 죽은 노동자들의 소식을 접한다. 적게는 하루 한 건에서 많게는 네다섯 건씩 떨어져 죽고, 깔려 죽고, 불타 죽고, 치여 죽는 소식들이 매일 올라온다.

산재 위험에 노출된 순간도 많았다. 고압이 머리를 스치면서 안전모에 금이 간 적 있었으며, 작업 전 뜨겁게 달궈진 설비가 식었는지 확인하던 중 손바닥을 데었고, 날카로운 물건에 베여 팔뚝에 꽤 큰 흉터가 생겼다. 늘 산재를 마주하는 삶이다. ‘안전한 일터’를 갈망할 수밖에 없다.

안전관리는 결국 비용과 인력의 문제다. 안전관리계통 자격증을 소지한 안전관리자가 각 작업에 맞는 안전교육을 진행하고, 작업을 준비한다. 작업이 시작되면 현장을 돌면서 작업자들이 안전수칙을 지키고 있는지, 작업장 안전상태는 나은지 꾸준히 확인하고 각 상황에 맞는 안전장구류들을 구매·관리해야 한다. 결국 다 돈이다.

산재사고의 대부분은 하청·중소사업장에서 발생한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웬만한 위험업무들을 전문 하청업체에 외주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하청업체가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하는 것 외에도 원청에서, 더 나아가선 국가 정책으로 하청·중소기업의 안전관리 개선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상반기 정기 보수는 끝났다. 하지만 이 기조로 크고 작은 공사들이 진행된다면, 결국 하청업체와 그 직원들에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부담을 계속 지게 할 수는 없다. ‘일터에서 일하다 죽었다’는 소식만큼 ‘일터가 어떻게 안전하게 될 수 있는지’ 많은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

안전관리 노동자 (heine030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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