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가현 노동활동가
▲ 이가현 노동활동가

자긍심의 달(Pride Month)인 6월이 되자 모든 것에 무지개가 덮였다. 내가 다니고 있는 베를린의 한 대학교 정문에도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렸다. 자주 가는 마트에도, 길거리의 흔한 술집에도, 카페에도, 서점도, 부동산 업체의 창문에도, 화장품 가게의 제품들에도, 아시아 마트의 사케에도 무지개가 입혀졌다. 지나다 들른 대형 옷가게에서는 무지개가 그려진 특별 제품들을 내놓았다. ‘좋은 의미니까’라고 스스로 정당화하며 생각이 없던 소비를 하나둘 했다.

런던에서 열리는 성소수자 축제(London Pride)에 참여하고자 비행기를 탔다. 성소수자 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를 다룬 영화 <런던 프라이드>를 감명 깊게 봤다. 그래서 런던 프라이드에 참여하고, 실제로 그 운동이 있었던 장소 중 한 곳인 서점(Gay’s The Word)에 방문하고 싶었다. 탑승장에서부터 무지개 가방과 옷들이 눈에 띄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비행기를 타시나 보다’ 하는 생각에 혼자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축제는 여행을 만들기도 한다.

광장 근처 지하철에 도착하자, 런던시장의 환영 입간판이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이했다. ‘여기 런던에서 당신은, 진정한 당신이 될 수 있고, 당신이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사랑할 수 있습니다’는 말에서 런던 사람을 사랑하는 시장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광장에는 런던 광역경찰청의 부스가 있었다. 안전한 도시 만들기와 범죄 피해 대처 방법을 홍보하고, 경찰청의 무지개팔찌를 나눠 줬다. 돌아다니는 경찰들의 어깨에는 무지개 견장이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온 도시가 사람들을 환영하고 존중하고 보호한다’는 안전한 감각을 느꼈다.

축제의 규모가 큰 만큼 상업화가 많이 되기도 했다. 테러 위험 때문에 축제의 중심 무대가 열리는 광장에서는 소지품 검사와 금속 탐지를 철저하게 했다. 물을 포함한 모든 액체는 반입이 불가하다. 모든 음료를 버리고 광장에 들어선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코카콜라 직원들이었다. 재활용하는 친환경 기업임을 내세우며 사람들에게 콜라를 나눠 줬다. 광장 곳곳에는 병원을 비롯한 기업들의 홍보부스가 있었다. 대형마트 체인, 게임회사, 항공사, IT 회사 등 많은 기업이 축제의 공식 후원사이며 행진에도 돈을 내고 참가한다. 윤리적인 기업임을 홍보할 기회를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축제에는 노동조합도 있었다. 최근 영국의 철도해운노조(RMT)는 기차 운행의 80%를 감축한 대규모 파업을 했다. 30년 만의 일이다. 철도해운노조는 행진에 참여하며 ‘일자리와 서비스의 감축이 아닌 이윤의 감축’ ‘평등을 위해 싸우자’는 현수막을 들었고,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로 그들을 지지했다. 대학노조(UCU), 철도기관사노조(ASLEF), 고위공무원노조(FDA) 등도 참여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노동조합은 행진과 부스에 모두 참여한 공공서비스노조(UNISON)였다. 조합원이 140만명인 영국 노동조합으로, 회원의 70% 이상이 여성이다. 그들은 직장에서 레즈비언·게이·트랜스젠더·바이섹슈얼·논바이너리가 마주하는 문제들을 각각 설명하고, 당사자가 노동조합에서 할 수 있는 것과 받을 수 있는 도움을 알렸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연대하는 방법도 안내했다. 노동조합과 성소수자 운동이 함께해야 하는 이유도 설명했다. 공공서비스 예산이 삭감되면, 성소수자를 위한 복지도 타격을 입는다.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면, 성소수자를 향한 직장내 괴롭힘도 증가한다. 그렇기에 성소수자의 평등을 위해서 활동하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며, 공공서비스를 함께 지켜야 한다.

그들의 활동 중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윤리적 조달’ 프로젝트다. 영국과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성소수자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축제에서 판매·사용·홍보되는 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가려지고 있다. 공급업체가 윤리적으로 상품을 생산하고 있는지,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는지, 안전한 노동환경을 조성하는지, 노동권을 보장하고 있는지, 유색인종과 여성·성소수자·이주민을 기업이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즉 ‘라벨 뒤에 가려진 노동’을 봐야 하며, 축제 주최측은 기업들이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기업들로부터 윤리적 조달을 위한 약속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대형 의류업체인 프라이마크(Primark)는 성소수자 단체(Stonewall)와 함께 무지개 의류 상품을 제작해 유럽과 미국 매장에서 판매했다. 수익의 20%는 단체가 받는다. 그러나 무지개 옷들은 성소수자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 처벌받는 미얀마·중국·터키 같은 나라들에서 만들어졌다. ‘기금을 받아 성소수자 지원에 사용하니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거 서울퀴어퍼레이드는 대리모 사업체를 자회사로 둔 회사의 후원을 받기로 했다가, 논란 끝에 후원 계약을 해지했다. 올해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노출 전 예방요법에 사용하는 약값을 내리지 않고 특허를 유지하는 제약회사가 행진 차량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여성인권과 건강권에도 윤리적 조달 프로젝트를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퀴어퍼레이드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애초 6일간 광장을 사용하는 것을 계획했는데, 서울시 열린광장시민위원회는 이를 하루로 제한했다.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신체 과다 노출’을 경고하며 “계도조치와 현장 채증을 하겠다”고 한다. 서울시민이 서울에서 안전함을 느끼게 서울시의 역할을 다하기보다는, 축제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막기보다는, 내년 축제를 막을 명분을 쌓을 궁리만 하고 있다.

이번 서울퀴어퍼레이드의 표어는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다. 한국에서도 그간 노동운동과 성소수자 운동 사이의 많은 연대가 있었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를 지지하기 위한 ‘퀴어버스’가 있었고,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성소수자 축제 참여가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공동행동과 연대가 있었다. 런던에서 나의 짧은 축제 참여의 결론도 그러하다. 함께 할수록 우리는 더 넓어지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노동 분야에서 계속 활동하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드러내는 ‘우리’의 축제를 응원한다.

노동활동가 (bethemi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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