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근로감독이란 말은 영어 labour inspection에서 온 말이다. 여기서 labour를 한국 정부는 노동이 아니라 근로로 번역하고 있다. 한국 노동법에서 ‘근로’는 정체가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근로기준법 하나만 보더라도 근로는 조항에 따라 노동(labour)이 됐다가, 일(work)이 됐다가 고용(employment)이 되기도 한다. 노동과 일과 고용은 엄연히 그 뜻이 다르지만 한국의 노동법에서는 노동과 일과 고용이 서로 뒤섞여 뒤죽박죽이다.

재미난 사실은 labour inspection을 근로감독으로 번역하는 한국 정부가 근로감독이 핵심 축을 이루는 labour administration은 근로행정이 아니라 노동행정으로 번역한다는 점이다. 영어로 같은 labour를 두고 근로와 노동으로 나눠 번역하는 이유를 제대로 아는 이는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노동법 학자들도 일을 뜻하는 work를 노동으로 번역하는 수준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국노총에서 근무하던 시절이다. 재벌그룹 LG에서 노사관계라는 말이 노동자와 사용자를 대립시키는 개념이라며 이를 대체하겠다고 노경관계라는 말을 개발했다. 사용자는 노동자를 부린다는 뜻인데, 자신들은 노동자를 부리지 않으니 사용자가 아니라 경영이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필자가 보기엔 노경관계라는 개념이야말로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 볼 때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기업을 경영하는 주체에서 노동을 배제하고 노동과 경영을 대립시키기 때문이다. 노동과 대립하는 것은 자본이고 사용자지 경영이 아니다. 아무튼 당시 한국노총 간부였던 이정식 장관이 한 말이 필자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노사관계를 노경관계로 부르려면 차라리 근경관계라 부르세요.”

근로감독을 일본에서는 노동기준감독(勞動基準監督)이라 한다. 당연히 한국의 근로감독관은 일본의 경우 노동기준감독관(勞動基準監督官)이 된다. 근로감독이라 하면 무엇을 감독할지가 애매모호하다. 노동을 감독하는지, 일을 감독하는지, 고용을 감독하는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감독 대상이 분명하다. 노동기준, 한국으로 치면 근로기준법을 집중적으로 감독하는 것이다. 감독이란 “어떤 일을 잘못이 없도록 보살펴 단속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노동기준감독은 노동기준에서 잘못이 없도록 보살피고 단속하는 노동행정의 업무가 된다. 재미난 사실은 일본의 노동기준감독관들은 한국과 달리 집단적 노사관계와 관련된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노동기준법과 노동안전위생법 등의 개별적 노동관계 업무에 집중한다. 일본에서 노조 문제 등 집단적 노사관계는 노동위원회에서 처리한다.

중국에서는 근로감독을 노동감찰(勞動監察)이라 한다. inspection을 한국과 일본에서는 감독으로 번역하는 데 반해, 한자 문명권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감찰로 번역하는 게 인상적이다. 한국적 맥락에서 보면 감독과 경찰이 결합된 개념이다. 노동감찰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은 인력자원사회보장부의 노동보장감찰국(勞動保障監察局)이다. 노동보장은 노동과 사회보장의 줄인 말이다. 노동법령과 사회보장법령의 준수 여부를 감찰한다는 뜻으로 관련 업무는 노동보장감찰원(勞動保障監察局)이 수행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47년 ‘근로감독’ 협약 81호를 채택했고 지금까지 148개 회원국이 비준했다. 일본은 1953년 10월20일 비준했고, 한국은 1992년 12월9일 비준했다. 중국은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근로감독체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조정(coordination) 역할이 중요하다. 여기서 조정이라 함은 중앙정부 부처들 사이의 조정,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조정, 그리고 정부와 노사단체와의 협력 등을 일컫는다. 특히 노사단체와의 협력은 단체 회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이들의 인식 수준을 높임으로써 사업장에서의 법률 준수를 촉진할 수 있다.

ILO는 “근로감독은 노동행정의 핵심 부분이다. 노동법 집행과 효과적인 준수라는 기본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근로감독은 작업장에서 공정성을 보증하고 경제발전의 증진을 돕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근로감독기관의 효과성을 개선하기 위해 경찰·사회보장기관·국세청 등과의 협업(collaboration)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행정기관들과 합동 감독(joint inspection)을 수행함으로써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ILO 창설의 근거가 된 베르사유조약 13장(노동)은 “고용된 자들의 보호를 위한 법률의 집행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감독체제를 도입할 것을 규정했다. 그 연장선에서 ILO는 1919년 ‘근로감독(보건서비스)’ 권고 5호를, 1923년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률 집행을 확보하는 감독체제 조직을 위한 일반 원칙”을 담은 권고 20호를, 1947년 ‘공업과 상업 부문의 근로감독’ 협약 81호를, 1969년 ‘농업 근로감독’ 협약 129호를, 그리고 1995년에 근로감독 협약 81호에 관한 의정서(Protocol)를 채택했다. 이들 협약과 권고는 한국의 근로감독체제가 나아갈 방향과 실천할 과제를 제시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근로감독은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 감독관 제도에 관한 법률 조항은 노동법의 기원을 이룬다. 근로감독제도의 등장으로 국가는 노동자를 억압하는 도구에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도구로 전환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노동자를 위한 노동행정의 구현에서 근로감독은 핵심적인 지위를 갖는다. 한국의 노동행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한국의 근로감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라는 질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근로감독 협약 81호의 비준 서른 돌을 맞이한 지금이야 말로 한국의 근로감독체제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따질 적기라고 생각한다.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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