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오늘)

“비상식적인 언행으로 진정인을 압박하고 괴롭힌 사실이 인정되므로 위 판단요소 ②(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을 것)와 ③(신체적·정신적 고통 야기 등)에 해당하나 ①(관계의 우위)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어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 끝.”

최근에 대리했던 직장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결과 통지문서의 일부다. 공교롭게도 이 건도 지난 7월5일자 노노모의 노동에세이(노동부 의정부지청의 이상한 법집행)에서 언급된 노동지청에서 처리한 사건이다. 위 신고사건 처리결과 통지에 따를 때 내 의뢰인은 괴롭힘 피해자는 맞지만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는 아니다. 이 괴상한 결과 통지를 놓고 ‘법이란 게 이리도 테크니컬한 것이랍니다’라고 설명한들, 직장에서 극도의 괴롭힘 피해를 입은 노동자가 납득할 수 있을까.

‘지위의 우위’를 전제한 직장 내 성희롱 정의 규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2조2호)과 달리 직장내 괴롭힘 정의 규정(근로기준법 76조의2)은 ‘지위의 우위’뿐 아니라 ‘관계의 우위’도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행위자에게 지위의 우위가 없어도 다양한 관계 속에서 직장내 괴롭힘은 일어날 수 있으며, 이러한 괴롭힘도 적극적으로 법의 영역으로 포섭하기 위한 의도일 게다. 그런데 ‘관계의 우위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아니고, “관계의 우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군색한 이유로 “괴롭힌 사실이 인정”됨에도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행정종결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법의 입법 취지는 물론이고 노동지청의 존재 목적에도 위배되는 그릇된 행정처리라고 생각한다.

괴롭힘의 사전적 정의가 “가까운 관계의 사람이 상대편에게 정신적·육체적인 고통을 줘 학대하는 행위”(네이버 국어사전)인 점을 감안할 때, 괴롭힘 행위자에게 어느 정도의 우위성은 애초부터 전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위 사건 같이 “비상식적인 언행으로 진정인을 압박하고 괴롭힌 사실이 인정”된다면, “비상식적인 언행으로 진정인을 압박”한 사람에게 우위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처리한 노동지청은 “관계의 우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행정편의적 논리로 이 사건이 괴롭힘은 맞지만 직장내 괴롭힘은 아니라는 난삽한 결론에 도달했다.

한국경총 노동경제연구원의 이준희 박사의 논문 ‘고용노동부 직장내 괴롭힘 대응·예방매뉴얼의 문제점과 개선방안’(강원법학, 강원대학교 비교법학연구소, 2019. 10.) 192면에는 “관계 등의 우위는 지위 이외의 폭넓은 괴롭힘 제압 수단을 포괄하기 위한 기술이므로 넓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별히 우위를 점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초래된 힘의 불균형 상황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 문장에 대해 논문의 저자는 위 논문 같은 면 각주32번에서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형사처벌규정이 아니”라고 부연한다. 직장내 괴롭힘 인정은 형사처벌규정이 아니므로, 관계의 우위 여부를 좁게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이 사건의 출석 조사과정에서 담당 근로감독관은 진정인측에 피신고인에게 관계의 우위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물었고, 진정인측은 여러 이유들을 사실관계와 증거를 통해 제시하는 과정에서 피신고인이 여성인 진정인에 비해 나이가 더 많은 남성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그러자 근로감독관은 “요즘 세상에 남성이 여성에 비해 우위에 있냐?”고 소리쳤다. 진정인이 호소한 여러 괴롭힘 피해 중 성적 괴롭힘 피해도 있었다. 성적 괴롭힘의 대부분이 여전히 남성에 의해 여성에게 자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근로감독관의 이 같은 발언은 지극히 부적절해 보인다.

노동부가 2020년 12월 발간한 ‘직장내 괴롭힘 예방·대응매뉴얼’ 11면에는 ‘관계의 우위성’에 대해 “사실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관계가 포함될 수 있”다고 전제하며, “연령·학벌·성별·출신 지역·인종 등 인적 속성”을 그중 하나로 예시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2020구합74627 판결도 행위자가 피해자보다 직급이 낮다고 하더라도 관계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며 직장내 괴롭힘을 인정한 바 있다.

“비상식적인 언행으로 진정인을 압박하고 괴롭힌 사실”이 괴롭힘은 맞지만 직장내 괴롭힘은 아니라는 결론은, 비상식적인 판단으로 진정인을 또다시 괴롭게 하는 일일 수 있다. 해당 노동지청 홈페이지의 기관장 인사말에는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적혀 있다. 각성을 엄중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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