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녔다던 언젠가의 도시 전설은 이제 괴담의 양념이 됐다. 동네 꼬마들도 법정관리며 구조조정을 말한다. 어른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다닌다. 문 닫은 배 공장 앞 불 꺼진 식당 출입문 앞에 급전 일수 명함이 쌓인다. 잔뜩 웅크린 길고양이가 제자리인 양 거기서 껌뻑껌뻑 졸고 앉았다. 그 앞 북적이던 정형외과 의원 대기실이 한가롭다. 삐뚤게 내려앉은 호프집 간판이 바람에 삐걱거렸다. 짠내 품은 봄바람이 억셌다. 어김없이 선거철, 희망찬 미래는 여기저기 나붙은 정치인 현수막에 담겼다. 조선업 살리겠다던 오랜 약속은
배 짓는 공장 요란한 쇳소리에 자주 사람의 비명이 섞였다. 끼이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떨어지는 사고가 잦았다. 불꽃 튀는 사선에서 기고 오르고 등 굽어 가며 기름밥을 벌었다. 죽지 않고 살아 그럴싸한 제집을 마련했고 거기서 사람을, 또 사랑을 키워 갔다. 기저귀 사고 학원비 내고 이자 원금 갚느라 빠듯했지만, 종종 다 같이 고깃집 들러 불도 쬈다. 할부로 마
3·1절 보수집회 참가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벌인 폭력·방화와 관련해 4·16연대와 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일 기자회견을 열어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무죄석방운동본부' 회원들은 지난 1일 집회를 마치고 행진하던 중 광화문광장에 있던 촛불집회 기념 시설물과 세월호 추모 전시물을 넘어뜨려 부수고 불태웠다. 이 과정에서 시설물 파괴를 말리던 세월호 천막상황실 당직자가 집단폭행을 당했다. 4·16연대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극우테러이자 방화테러"
까치집은 흔하다. 근린공원이며 주택가 나무 위에 크고 작은 둥지가 많다. 거기 매해 고쳐 가며 오랫동안 까치가 산다. 텃새다. 익숙해 관심 끌 일도 없다. 고압선 주변 전신주에 지은 둥지가 정전사고를 일으켜 가끔 뉴스에 오른다. 설날 즈음이면 노래 배운 아이들이 반짝 관심을 둔다. 굴뚝도 흔하다. 크고 작은 공장에, 또 주택가 한편에 열병합발전소 굴뚝이 적지 않다. 겨울이면 연기 더욱 선명해 눈에 띈다. 대개는 익숙한 풍경에 그쳐 관심 끌 일이 없다. 언젠가부터 연기 나오지 않는 굴뚝에 사람이 올라 산다는 뉴스가 돌았고, 설날 즈음
인천광역시 서구 가정동, 경인고속도로 서인천 나들목 옆에 한국지엠 사원아파트가 있다. 지도엔 대우자동차가정아파트로 나온다. 동네 주민도 그렇게 부른다. 버스정류장 이름에도, 그 앞 슈퍼마켓 간판에도 대우가 붙었다. 단지 안 주차장에 빼곡한 차 머리엔 똑같은 상표가 붙었는데, 종종 대우차 시절의 것도 보였다. 외벽엔 글로벌 자동차기업의 마크가 선명하다. 회사
광장에 비둘기 한 마리 잔뜩 움츠린 채 꼼짝하지 않는다. 햇볕 아래에서 추위를 피한다.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30년 전 88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3천여마리의 비둘기가 날아올랐다. 평화의 상징이었다. 성화대에 앉았던 몇 마리가 화염 속에서 타들어 갔다. 88년 비둘기 참사로 불린다. 동물 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오늘날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비둘기 모양 풍선
옛 조선의 궁궐 문 앞에 수문장 교대의식 재연배우가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두 시간에 1만원 하는 한복 빌려 입은 관광객들이 그 옆자리에서 환한 표정으로 사진을 남긴다. 두꺼운 점퍼 겹쳐 입고 시린 손 녹여 가며 부리나케 자릴 뜬다. 바람에 날린 깃발이 뺨을 때려도, 옷자락이 뒤집어져도 문지기는 가만 섰다. 근엄한 표정에 변화가 없다. 옛 왕실의 권위를
농성장 비닐에 바람 들어 풍선처럼 부풀었다. 비정규직 철폐 부푼 꿈 새긴 조끼 입고 사람이 거기 산다. 정규직 전환하랬더니 대량해고 사태가 잇따른다. 풍선효과다. 한껏 부풀었던 기대만큼 분노가 높아 말이 점차 사납다. 북극발 한파 속 칼바람 사나운 길에 이글루 짓고 버텨 시위한다. 고난을 스피커 삼았다. 오랜 학습효과다. 여기저기 노숙농성장이 불룩, 풍선처럼 부푼다.
정동길 어느 수도회 건물 1층 카페에서 노동조합총연맹의 간부가 휴지 조각에 글을 적는다. 기자들이 묻고 위원장이 답했는데, 궁금한 것도 할 말도 적지 않았다. 받아 적느라 네모난 휴지 여러 장이 어느새 빼곡하다. 받아치느라 노트북컴퓨터 타자 소리 요란한 카페에서 그 모습이 낯설었다. 익숙했던 손글씨가 유물 같다. 연인과 마주 앉아 마냥 설레었던 찻집에서 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17일 오후 연세대 신촌캠퍼스 학생회관 앞에서 인력감축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했다. 연세대와 고려대·홍익대 조합원 300여명과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했다. 연세대는 재정상 어려움을 이유로 지난해 말 정년퇴직한 전일제 청소·경비 노동자 결원 30여명을 충원하지 않기로 했다. 무인경비시스템을 확대하고 단시간 청소 알바를 고용할 방침이다. 연세대분회 조합원들은 구조조정 중단과 총장 면담을 요구하며 지난 16일 대학 본관에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한 조합원이 알바천국
날이 부쩍 추워 전화드리니 나는 괜찮다고 엄마는 말했다. 따뜻한 방에서 잘 지내니 너나 잘 챙겨 입고, 잘 먹고 다니라고 밀린 잔소리를 풀어낸다. 어쩌다 들른 시골집 마루는 언제나 냉골이다. 구석자리 작은 전기장판이 그나마 앉을 자리다. 보일러는 장식이다. 뻔한 거짓말이 오랜 일이다. 어릴 적 곶감 좀 달라면 엄마는 없다고 잘랐다. 며칠 뒤 제사상엔 뽀얗게
서울시내 대학가와 빌딩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핑계로 인력을 감축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청소·경비노동자들이 고용노동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지부장 장성기)는 1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규모 기업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앞세워 청소·경비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하고 있다”며 “노동부가 기업들의 꼼수에 단호히 대처하라”고 촉구했다.홍익대가 이달 1일 기존보다 줄어든 인원으로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어 청소노동자 4명이 해고됐다. 여의도 동아빌딩은 10일 5명을 감축했고, 세종로 대우빌딩에서는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 앞에 선 소녀처럼 언니는 두 손 모아 바라고 섰다. 노조 사람한테서 노동청장 면담 결과를 전해 듣는데 웃음이 빵 터졌다. 청사에 들어가 큰소리 뻥뻥 치고 나온 뒤다. 진정서에 사연과 바람과 원청이며 하청회사 주소 따위 꾹꾹 눌러 적는데 질서를 지키라고 누가 뭐라기에, 법을 지키라고, 불법을 가만두냐고 또박또박 따져 물었다. 꾹 참고 오
살얼음 낀 돌바닥에 미끄러지듯 엎어져 사람 꼴을 바닥에 새긴다. 흰옷이며 노조 조끼엔 땅의 흔적을 새긴다. 땀 흘린다. 입김 토해 가며 꾸역꾸역 나아간다. 죽비 소리를 따랐다. 팻말 든 사람들이 뒤따랐다. 비릿한 돌바닥 냄새를 맡으며 얼굴이 차차 붉었다. 눈 녹아 젖은 바닥 걱정에 껴입은 우비가 금세 번거로웠다. 돌아보니 어느새 멀리도 왔다. 4천300여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비정규직대책한국교회연대·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소속 종교인들이 KTX 해고승무원과 함께 19일 KTX 승무원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서울역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9월에 이어 두 번째다. 이들은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한 승무업무 외주화 문제를 바로잡고 승무원을 직접고용해 승객 안전을 제대로 책임질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KTX 승무원 문제를 전향적으
해거름, 어린이집 향해 뛰다 걷다 경보하느라 아빠는 숨 가쁘다. 발이 꼬인다. 언 땅을 밟고 허둥댄다. 돌아온 슈퍼맨은 하원 시간 맞추느라 쩔쩔맨다. 슈퍼 가자고 징징대는 아이와 씨름하느라 길에서 떤다. 눈에서 레이저를 쏜다. 아빠 왔다 소리가 제일 반가웠을 아이한테 못할 말을 하고 만다. 코로 먹는지 눈으로 먹는지 저녁밥을 때우니 잘 시간이다. 놀겠다고
원조 롱패딩돌고 도는 게 유행이다. 알 수 없는 게 또 유행이다. 요즘 멋 좀 안다는 사람들이 즐겨 입는 롱패딩이 그렇다. 코치들이 길에 넘친다. 동계올림픽 개최국의 위엄이다. 걸을 수 있는 동계 산악용 침낭이다. 산악지형이 7할 이상인 나라의 흔한 거리 풍경이다. 한 번 입으면 벗을 수 없다니, 사람들은 겨울 시즌 마감 할인을 기다려 막차에 오른다. 과연 추위를 나기에 그만한 게 없어 겨울 농성 나선 해고자들은 진작부터 롱패딩을 챙겨 입었다. 여기가 원조 집 중 하나다. 좀 낫다뿐이지, 실은 한파 경보에 얼어 죽지 않을 만큼이었다
잎 다 떨군 나뭇가지에 바람 들면 바싹 말라 오그라든 잎새 몇 개가 겨우 매달려 볼품없이 떤다. 언제 가을이 오긴 했냐고 사람들은 흐린 기억을 믿지 못해 사시나무 떨듯 흔들린다. 빌딩 숲 바람길에 선다. 겨울, 나무는 지푸라기 옷을 두른다. 잠복소다. 겨우내 추위를 피해 숨어든 벌레를 잡을 덫이다. 노조에 든 사람들이 잔뜩 껴입고 그 위에 조끼를 걸친다.
집 짓는 현장에서 미장일했던 아버지는 겨울이면 집에서 소일하며 지냈다. 일감이 없다고, 추운 날엔 시멘트가 잘 굳지 않아서라고 얼핏 들었다. 손 굳을까 걱정 많던 당신은 쉬질 않고 이것저것 만들고 집구석을 고치느라 바빴다. 노느라 종일 밖에서 바빴던 내가 손 빨간 채 돌아오면 아버지는 석유곤로 심지 통을 슬쩍 들어 불을 올렸다. 둘러앉아 손을 녹였다. 석유
여기저기 또 삐죽, 가시처럼 솟았다. 금세 바람 차고 밤이 길다. 가시밭길이다. 잔뜩 껴입은 사람들이 그 아래 비닐 치고 머문다. 자주 목 꺾어 안부를 살핀다. 엄마 손 잡고 찾은 아이가 먼발치 아빠와 수인사를 나눈다. 전화 소리엔 된바람이 섞여 웅웅거린다. 노동기본권 쟁취며 법 개정 요구 담은 현수막이 내내 운다. 외줄 타고 밥이 오른다. 똥이 내려온다. 에어매트 바람 넣는 송풍기가 밤낮없이 돈다. 농성장은 국회와 가까워 눈엣가시다. 계산기 소리가 요란스러워 해결이 아직 멀었다. 해가 짧았다. 농성이 하루 또 무심코 길었다. 노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