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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연가
   
살얼음 낀 돌바닥에 미끄러지듯 엎어져 사람 꼴을 바닥에 새긴다. 흰옷이며 노조 조끼엔 땅의 흔적을 새긴다. 땀 흘린다. 입김 토해 가며 꾸역꾸역 나아간다. 죽비 소리를 따랐다. 팻말 든 사람들이 뒤따랐다. 비릿한 돌바닥 냄새를 맡으며 얼굴이 차차 붉었다. 눈 녹아 젖은 바닥 걱정에 껴입은 우비가 금세 번거로웠다. 돌아보니 어느새 멀리도 왔다. 4천300여일이라고 셈했다. 10년이 넘었다고도 했다. 엎드려 나아가던 길 한편 서울광장에 대형 성탄 트리가 섰다. 구세군 종소리가 죽비 소리에 섞였다. 겨울이면 어김없던 어느 오래된 캐럴이 화장품 가게 앞에서 구수했다. 시디에 새긴 왕년의 디바 목소리가 늙지 않아 여전했다. 체력이 점점 좋아진다고, 얼굴 벌건 지부장이 쉬는 틈에 너스레 떨었다. 죽비가 올랐다. 지나는 길 광화문광장에 어느 노조 천막이 오도카니 섰다. 색 바래고 끝이 갈라진 깃발이 바람에 울었다. 거기 들던 사람은 지금 75미터 굴뚝에 올라 산다. 408일의 지난 고공농성 기록에 아랫자리를 더하고 있다. 일어나고 엎어지던 길옆으로 기타 모형 매달린 비닐 집이 가깝다. 정리해고 싸움 10년이라고 새긴 팻말이 문에 붙었다. 11년이라고도 했다. 옛 궁궐 돌담길 따라 기어간 끝에 얼기설기 지은 뼈대 없는 농성장에 이르렀다. 누구나의 성탄이라고, 거기에도 작은 트리가 반짝거렸다. 정리해고 철회라고 성탄 소망을 옆에 새겼다. 1천일을 앞뒀다. 겨울, 광화문을 떠나지 못해 저마다 청춘을 거기 새기는 사람들이 있다.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온다. 세밑 세종로길 바닥에 사람 꼴을 새기는 오체투지 행진이 있다. 순례길 따라 늘어선 낡은 천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정기훈  photo@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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