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옛 조선의 궁궐 문 앞에 수문장 교대의식 재연배우가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두 시간에 1만원 하는 한복 빌려 입은 관광객들이 그 옆자리에서 환한 표정으로 사진을 남긴다. 두꺼운 점퍼 겹쳐 입고 시린 손 녹여 가며 부리나케 자릴 뜬다. 바람에 날린 깃발이 뺨을 때려도, 옷자락이 뒤집어져도 문지기는 가만 섰다. 근엄한 표정에 변화가 없다. 옛 왕실의 권위를 연기하느라 볼이 언다. 코가 빨갛다. 북극발 한파에 밖에 선 누구나가 추웠는데 시린 발 동동거릴 수도 없어 문지기는 꼼짝없이 겨울, 왕국을 지킨다. 대책은 내복 두 겹과 핫팩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아파트와 대학과 빌딩 문 앞을 지키는 경비노동자들은 해고 칼바람에 떤다. 겨울이면 재연된다. 대책은 무급휴식시간 늘리기 따위 꼼수에 그쳤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종종 무력화됐다. 감시·단속 노동자 처지가 이 겨울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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