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 다 떨군 나뭇가지에 바람 들면 바싹 말라 오그라든 잎새 몇 개가 겨우 매달려 볼품없이 떤다. 언제 가을이 오긴 했냐고 사람들은 흐린 기억을 믿지 못해 사시나무 떨듯 흔들린다. 빌딩 숲 바람길에 선다. 겨울, 나무는 지푸라기 옷을 두른다. 잠복소다. 겨우내 추위를 피해 숨어든 벌레를 잡을 덫이다. 노조에 든 사람들이 잔뜩 껴입고 그 위에 조끼를 걸친다. 추위 피해 숨어들 아랫목 따위가 길에 없어 꼭 붙어 앉아 서로를 바람막이 삼았다. 일벌레처럼 살았지만 겨울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목소리 내기도 어려웠다. 기껏 개미 목소리였다. 일손을 놓고 길에 나와서야 큰소리 원 없이 높았다. 어느 해충 박멸회사 본사 빌딩이 그 앞에 높았다. 쫄지 말자고 위원장이 소리쳤다. 노조 만들던 과정 곱씹던 지부장은 말이 자주 끊겼다. 눈이 붉었다. 핫팩 내려 둔 사람들이 박수 쳐 응원했다. 우리는 벌레가 아니라고 현수막 걸어 선언했다. 사람 중심 경영을 회사에 요구했다. 노조 가입으로 살길 찾자고 팻말 들어 외쳤다. 첫 파업 나선 조끼 입은 해충 전문가들이 겨울 높다란 빌딩에 잠복소처럼 붙어 온갖 병해충 포집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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