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2018년 12월10일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사망당시 24세)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나홀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사고 당시 김씨는 고작 5일간의 교육을 받고 수킬로미터에 이르는 연료운반설비 점검 작업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한전의 자회사인 발전 5사는 경상정비와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수십개 민간업체와 한전 자회사인 한전KPS에 위탁한다. 한전KPS가 다시 업무의 일부를 재하청하고 민간업체들이 마찬가지로 업무를 2차 하청업체에 주면서 ‘발전사→1차 하청·한전KPS→2차 하청’으로 이어지는 외주화 구조가 형성된다. 연료·환경설비 운전은 1차 하청, 경상정비 업무는 2차 하청까지 외주화하는 구조다. 고 김용균씨는 서부발전이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외주 준 1차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소속이었다.

김용균씨 사망 이후 우리 사회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2019년 4월 출범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4개월간 조사하며 확인한 사고의 주된 원인이 ‘위험의 외주화’였기 때문이다. 위험의 외주화란 위험한 업무가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현상이다.

특별조사위는 7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펴내며 발전산업 분야별로 산재 실태와 개선점을 찾아냈다. 보고서에는 22개 권고안도 첨부됐다. 2019년 12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특별조사위 권고안을 바탕으로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특별조사위의 첫번째 권고는 발전소의 연료·환경설비 운전 및 경상정비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7천명의 화력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는 단 한 명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고 있다. 정규직화 논의는 5년간 공회전을 거듭해 왔다. 발전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제 정규직 전환은커녕, 발전소 폐쇄를 앞두며 일자리 보전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뀐 정부 탓 멈춰 버린 정규직화 논의

특별조사위는 종합보고서를 펴내며 연료·환경설비 운전 비정규직을 5개 발전회사가 직접고용하고, 경상정비 비정규직은 한전KPS를 재공영화해 정규직화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후 당정이 발표한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에는 경상정비 분야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화가 아닌 처우개선 수준에 머무른 대책이 담겼다.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의 경우 하나의 공공기관을 만들어 정규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경상정비 분야는 민간위탁 계약기간을 연장하는 고용안정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데 그친 것이다. 2018년 기준 경상정비 비정규직은 발전소 비정규직의 50%에 달했다.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은 출발부터 ‘반쪽짜리’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현되지 못했다. 연료·환경설비 운전 노·사·전 협의체는 2003년 민영화된 한전산업개발을 재공영화해 공공기관으로 지정한 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고 2020년 결정했다.

그런데 한전산업개발의 대주주인 한국자유총연맹(지분 31% 보유)과 주식 매수자인 한전(지분 29% 보유)이 가격협상을 5년째 ‘진행 중’인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정권이 교체되면서 정규직화 논의가 사실상 엎어졌다고 지적했다. 한전이 ‘방만경영’ 공기업으로 지목되는 바람에 지분 매수에 부담을 가진다는 것이다. 자유총연맹 역시 한전산업개발로부터 매년 나오는 수십억 원의 배당금을 포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노동계는 한전산업개발 재공영화가 불가능할 경우 별도의 한전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발전사 직접고용도 제안했지만 윤석열 정부 하에서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경상정비 분야 노·사·전 협의체는 지난 2021년 하청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하청사와 발전사의 계약기간을 6년으로 연장하라고 결정했다. 또 노무비 착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임단가를 만들어 발전사가 하청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내용의 연구용역 결과가 도출됐으나 정부에서 승인이 되지 않고 있다.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노조대표자회의 간사는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고용안정 방안이나 노임단가 적용을 환영할 입장이 아니기도 하고 (연구용역을 승인해야 할) 산업통상자원부도 큰 의지가 없는 상황”이라며 “발전소 폐쇄가 다가올수록 정규직화를 강하게 요구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규직화가 안 되니까 아무런 논의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발전소 폐쇄 앞두고 쪼개기 계약 만연

정규직 전환 논의가 더딘 만큼 발전소 폐쇄는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

김영훈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은 2차 하청업체 ‘한강’ 소속 노동자다. 서부발전이 한전KPS에 경상정비 업무를 외주하고 한전KPS가 다시 2차 하청업체 ‘한강’에 일을 준 구조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그는 “발전소 폐쇄 이야기가 없었을 때는 정규직 전환 투쟁을 했던 건데 이제는 고용이 불안하니 고용을 유지해 달라 이야기하는 상황이 돼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고 토로했다.

태안화력발전소는 2025년부터 순차적으로 노후화된 발전소를 폐쇄할 계획이다. 총 10호기 중 1~4호기가 우선 폐쇄 대상으로 꼽힌다. 발전소 폐쇄 이야기가 나오면서 한전KPS는 2차 하청업체들과 쪼개기 계약을 시작했다. 연 단위로 이뤄지던 계약은 7개월, 2개월로 쪼개졌다. 이달 말에 계약종료를 앞둔 김영훈 지회장은 “2개월 정도 계약이 연장될 것 같다”며 “계약이 종료되면 당장 아르바이트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담당하는 발전소 여덟기에는 가장 오래된 1~4호기가 포함돼 있다. 전기팀 소속인 그와 함께 일하는 전기팀·기계팀 동료는 40여명. 발전소 폐쇄가 진행되면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어야 한다. 그 순서는 2차 하청→1차 하청→정규직 순임을 그는 알고 있다.

8천 비정규직 앞날 불투명
“갈 길 먼 정의로운 전환

지난해 12월 결성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 모임’(정태모)에는 6개 지부·지회가 뭉쳤다. 노동자들은 공공주도의 재생에너지 확대와 단 한 명의 해고도 없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모였다.

태안군은 지난해 2월 ‘태안군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민·관 협의회 구성 및 운영 조례’를 제정하며 태안군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민·관 협의회라는 거버넌스를 시도했다. 군 관계자와 군의원, 발전사업자와 협력업체 노동자, 소상공인 등이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정태모 소속 노동자 회원도 4명이 협의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협의회의 주된 논의 주제는 정의로운 전환기금 사용이다. 충남도와 태안군은 약 25억원의 기금을 만들어 태안발전소가 폐쇄되는 2025년까지 기금을 정의로운 전환에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6월 태안군이 발표한 기금 사용계획은 기금의 본래 목적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거세다. 신산업 먹거리라며 드론테마파크를 조성한다든지, 버스터미널 주변에 정의로운 전환을 홍보하는 전광판을 설치한다거나 해수욕장 주변에 조명을 설치하는 등 지역 관광자원 개발에 치우친 사용 계획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1일 열린 회의에서 태안군 공무원은 “귀농·귀촌”이라는 대안을 가져오기도 했다. 발전소 폐쇄 후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발전소 노동자에게 융자 지원 등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안군에서 운영하는 귀농 프로그램 지원 자격에 발전소 노동자는 해당되지 않았다. 한평생 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농업 분야로 전환한다는 발상 자체도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다.

지난해 6월 기준 석탄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은 청소·경비·시설 자회사 노동자를 포함해 8천278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7천명이 기술직 비정규 노동자다. 정규직은 1만3천577명 정도다. 김영훈 지회장은 “태안군도 충청남도도 정부도 적극적이지 않다. 정태모를 통해 군과 이야기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만 2천명 정도 비정규직이 있다고 봐요. 4명 가족이라면 8천~1만명이 발전소에 영향을 받는 거죠. 발전소가 폐쇄되면 1만명이 지역을 떠나요. 애들도 학교를 떠나고 지역소멸도 야기할 거라고 이야기하죠. 그런데 그 누구도 적극적이지 않아요. 조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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