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6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 앞에서 열린 고 김용균 5주기 추모제 자리에서 아들의 모습을 딴 동상을 만지고 있다. <정기훈 기자>

“오늘도 안녕, 하십니까.”

고 김용균씨의 동료인 김영훈 발전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이 청중의 안부를 물으며 입을 뗐다. 6일 오후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열린 고 김용균 5주기 추모제. “노래와 치킨을 좋아하던 김용균 동지”를 추억하며 김 지회장은 발언을 이어 갔다.

“발전소의 모든 이들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일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은 감전·폭발·질식·추락·깔림·절단 등 여전히 많은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여전히 발전소는 다단계 하도급과 불법파견이 만연하고 현장에선 위험의 외주화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2018년 12월10일 새벽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하청사인 한국발전기술 소속 김용균(사망 당시 24세)씨는 홀로 일하다 석탄을 이송하던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추모제에 참가한 이들은 “누구도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로운 전환서 소외된 발전 비정규직 8천명

5년이 지난 지금, 김용균의 동료들은 고용불안에 노출돼 있다.

2020년 12월31일자로 보령화력발전소 1·2호 발전기가 가동을 멈추자 지역 일자리가 줄면서 인구 유출이 빠르게 일어났다. 2020년 10만명이던 보령 지역 인구는 올해 10월 기준 9만6천68명으로 감소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피할 수 없는 과제라지만 그 후과를 견디는 건 오로지 지역의 몫이다.

태안화력발전소의 경우 10기 중 2기가 2025년까지, 2032년까지 6기가 발전을 종료한다. 지난해 6월 기준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1만3천577명이고 비정규 노동자는 8천278명에 달한다. 이태성 발전비정규노조대표자회의 간사는 “정부 계획대로라면 2034년까지 LNG 발전소 24기가 건설되지만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LNG 건설 시기 간 불일치가 발생하면서 대량해고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며 “고용보장을 기본원칙으로 삼고 발전사·국회·지역사회·노조·행정부 등과 함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훈 지회장은 “오랫동안 발전소에서 일해 온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도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일이 얼마나 사람과 환경에 유해한지 잘 알고 있어 발전소 폐쇄에 동의하지만 대책 없는 폐쇄는 해고라는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다”며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6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에서 열린 고 김용균 5주기 추모제 참석자들이 발전소 안 사고 장소에 마련된 분향소에 헌화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6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에서 열린 고 김용균 5주기 추모제 참석자들이 발전소 안 사고 장소에 마련된 분향소에 헌화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용균이가 만든 법, 개악에 혈안된 정부”
“기업 어려움이 자식 잃은 부모에 비하나”

김용균이 숨지고 1년이 조금 지난 2020년 1월16일,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다. 마찬가지로 제2의 김용균을 막자며 제정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년 뒤 시행됐다. 그런데 그 중대재해처벌법은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위기를 맞고 있다.

당정은 최근 50명(억)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추모제에 참가한 산재 유가족은 “김용균법의 후퇴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산재 사고사망자는 총 9천380명으로 이 중 50명 미만 사업장 소속이 7천138명으로 76%를 차지한다.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50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2년 유예해서는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2020년 5월 광주의 폐자재처리공장 조선우드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재순씨의 아버지 김선양씨도 추모제에 나와 “용균이가 죽고 수많은 법들이 만들어져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죽임 당하지 않을거라 믿었다”며 “만들어 놓은 법을 개악하기 위해 혈안이 된 정부가 나라인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이어 “오늘도 현장 어디에선가는 다녀올게라는 말이 유가족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 되는 노동자가 있을 것”이라며 “50명 미만 사업장, 공사액 50억원 이하 건설현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 투쟁을 계속 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기업의 사기를 꺾는다 한들 자식 잃은 부모에 비할 수 있겠냐”며 “수십년 전 영국은 기업살인법을 적용하고도 잘만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왜 나라 망할 것처럼 난리를 피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문했다. 김 이사장은 “법과 제도와 구조가 허술하다 보니 기업은 허점을 틈타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사고 당사자 잘못이라 우긴다”며 “기업 경영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바로 세워 산재로 죽어 간 고인 앞에서 잘못을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추모제 참가자들은 발전소 앞 추모제가 끝난 뒤 김용균씨가 사망한 9·10호기 트랜스퍼타워까지 행진해 헌화한 뒤 마무리 집회를 마쳤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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