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정부·여당이 50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검찰을 중심으로 이미 법을 무력화하려는 행태가 반복해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사업주들이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보다 중대재해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거나 실태 숨기기에 급급한 현장 취재기자의 경험도 공유됐다. 회사를 지배·운영하는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산재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없다는 주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반복하는 형국이다.

“작업 지휘하는 원청 법인에 면죄부 준 판결”

김용균재단은 지난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김용균 대법판결’을 주제로 집담회를 개최했다. 중대재해 사고를 최근 집중적으로 취재해 온 현장 기자들, 김용균 재판의 변호인단, 발전노동자 등이 최근 중대재해 사건을 특징을 짚어보고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로 꾸며졌다.

만담회 개최 하루 전날 대법원은 한국발전기술 소속 고 김용균씨가 2018년 12월 숨진 사건과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용균 특조위 간사를 맡았던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김용균씨 죽음은) 시설 점검 과정의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시설 자체가 주는 위험으로부터 야기된 사고라 보는 것이 훨씬 실체에 부합한다”며 “그런데 시설과 작업 과정의 문제 등 위험을 불러왔던 주체인 법인(한국서부발전)이 무죄 선고를 받았고, 결국 중간관리자 처벌로만 그쳤다”고 안타까워했다. 이태성 발전비정규노조대표자회의 간사는 “재판 과정에서 사측은 2인1조로 일해야 하는 중대한 현장이 아니라고 계속 주장했다”며 “컨베이어벨트에 머리를 넣고 석탄을 치울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는 점을 부인하고, 결국 사고 책임을 용균에게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 책임 노동자에 전가”
사용자 행태 여기저기서 발견

사고 책임을 당사자로 넘기는 사용자측의 모습은 최근 중대재해 사고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다 2020년 10월12일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장덕준씨 사고와 관련해 최근 쿠팡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는 그의 사망원인을 “과도한 체중감량”이라고 주장했다. 장씨 유족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변론에서 쿠팡측 변호인단이 이같이 주장한 사실을 본지 홍준표 기자가 취재를 통해 확인했다. 홍 기자는 이날 집담회에서 “쿠측은 다이어트로 숨졌다고 주장하기 위해 고인의 온라인 물품 구매내역 전체를 확인하자고 요구하는 등 상식 밖의 모습을 보였다”며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모습을 보며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SPC그룹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온 장현은 한겨레 기자는 지난해 10월 평택 SPL 제빵공장 사망사고와 관련해 “소스배합 작업 과정은 매우 위험하지만 위험성평가는 없었고, 설비위험평가는 했지만 미미한 위험이라고 판단해 조치를 하지 않았고,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해서 장시간 노동을 했고, 안전작업표준서도 없는 등 안전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발생했다”며 “(올해 8월 발생한) 성남 샤니 제빵공장 중대재해를 취재했을 때 사측이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 전념하기보다는 취재거부 등 외부 노출을 막는 것만 강화한 모습을 보고 매우 속상했다”고 취재 과정을 소개했다. “안전을 강화하라고 했더니 언론통제를 강화한 것이냐”는 한탄이 참가자들 속에서 이어졌다. 권영국 변호사는 “책임 없는 자율은 사기라는 점을 위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며 “그런데도 노동부는 책임을 어떻게 물어서 재해를 예방할 것인지는 살피지 않고 자율 방임으로 가겠다고만 한다”고 비판했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검찰은 구형 낮추고, 법원은 처벌 낮추고

중대재해처벌법 흔들기가 법제정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김용균씨 사건에서 유족을 지원한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은 “중대재해처벌법 기소 1호 사건 당사자인 두성기업이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 판결의 처벌 수위는 산업안전보건법과 다르지 않았다”며 “최근 판결을 보면 법원이 중대재해를 중대한 범죄라고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토로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대검찰청은 중대재해처벌법 구형을 2년6월에서 4년 사이에서 하기로 지침을 정했지만 최근 사건을 보면 검찰 구형은 대부분 2년으로 나온다”며 “정부·대검찰청 차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법 집행과정에서 무력화하고 있고 이는 검찰 구형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낮은 형량을 구형하고, 집행유예 등 낮은 선고를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취지를 실종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참가자들은 원청 대표와 법인에게 면죄부를 준 김용균씨 재판 결과가 속상하지만 한편으로는 희망도 보인다고 전망했다. 원청을 무죄로 본 판결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만담회에는 이은주 정의당 의원과 전주희 전 김용균특조위 위원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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