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전기 1기가와트시(GWh)를 생산할 때 석탄은 탄소를 평균 888톤 배출한다. 같은 화석연료인 석유(733톤)보다 많다. 태양광(85톤)·수력(26톤)·풍력(26톤)과는 비교가 어렵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발전소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탈원자력발전’ 또는 ‘탈탈원전’을 두고 논쟁이 거센 사이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를 위한 대책 논의는 매번 공론장에서 탈락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3년 뒤 폐쇄하는 태안석탄화력발전소를 찾아 직종별 비정규 노동자 5명을 인터뷰했다.<편집자>

“고물상이나 해야죠.”

조철(44·사진)씨가 쓴웃음을 지었다. “발전소를 폐쇄하면 무슨 일을 하시겠느냐”는 물음에 되돌아온 대답이다. 단단한 조씨의 눈빛은 감정을 읽기 어려웠다. 고개를 숙이고 반찬을 뒤적였다. 다음 질문을 생각하느라 진땀이 흘렀다. 지난 1일 오전 8시께 전날 밤 근무를 마치고 나온 조씨를 태안화력 인근 식당에서 만났다.

한전산업개발 소속인 그가 하는 일은 석탄을 하역장에서 저탄장으로 옮기고, 다시 저탄장에서 보일러로 옮기는 컨베이어벨트 연료운전이다. 석탄 옮기는 일을 운탄이라고 한다. 연료운전이라고 해서 한 곳에 앉아 일하는 건 아니다.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걸으며 운탄 과정을 지켜본다. 때로 흘러나온 탄을 다시 정비하기도 하고, 고장이나 안전 우려가 있으면 제어실과 소통해 안전을 확보한다. 발전소를 24시간 가동하려면 이 운탄과 연료운전도 모두 24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는 4조2교대 근무를 한다.

조씨의 삶에서 태안화력이 차지하는 부분은 크다. 1992년 태안화력 첫 삽을 뜰 때 학생이던 그는 대학 졸업 직후에는 사설 경비업체에서 일했다. 업체는 보령에 있었지만 입사 뒤 고향으로 가고 싶어 발령을 졸랐다고 한다. 2005년께 태안으로 돌아온 그는 4년을 더 일하고 2009년 발전소에 입사했다. 정확히는 한전산업개발에 입사했다.

“아버지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에게 발전소 들어가면 장가도 갈 수 있고 다 잘 될 거라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었어요.” 조씨가 말했다. “같이 발전소를 다니는 친구들도 서너 명 있고, 와서 사귄 사람도 있죠. 한 3년 전부터는 아내도 발전소에서 일해요.”

실제 발전소에서 일한 뒤 그는 지역사회 활동이 늘었다. 동네 방범대나 체육대회 같은 행사에 참여하고, 학교 운영위원회 등에도 나간다. 발전소가 발전기금을 매년 내놓는 덕에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교육 여건도 좋은 편이다.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발전소 문 닫는 것 사람들이랑 이야기하죠. 누구네는 아버지가 농사를 짓고 계시니 괜찮겠다, 누구네는 어업을 하고 있으니 괜찮다는 투로 장난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저희 부모님이 식당을 하고 계시는데 그래서 괜찮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죠.”

속내는 다르다. 조씨는 “막막하다”고 말했다. “승진을 하든 뭘 하든 근무지가 바뀌는 사람들을 봤는데 사람이 할 짓이 아니더라고요. 가족이 다 태안에 있는데 이주하는 게 쉽지 않아서 재배치한다고 하면 그만둘 사람도 많을 거예요.”

2025년부터 발전소 줄줄이 폐쇄
노동자 2천856명, 갈 곳이 없다

최근 발전노동자의 요청에 따라 사회공공연구원이 수행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안정 방안연구’에 따르면 연료운전과 발전소 정비를 주업으로 하는 한전산업개발에서 조씨와 같은 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지난해 기준 2천342명이다. 발전소 정비업무에 배치된 노동자는 514명이다. 본사 행정업무 등을 담당하는 노동자를 제외하고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3천119명 가운데 절대적인 비중(91.6%)을 차지한다.

발전소가 문을 닫으면 노동자 2천342명은 갈 곳이 없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태안화력은 2025년 12월 1·2호기 가동을 멈춘다. 이듬해 3호기를, 2027년 4호기를 폐쇄한다. 연료운전은 석탄을 연료로 쓰는 발전소에만 있는 공정이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지어도 자리가 없다.

실제 사례는 이런 우려를 방증한다. 한전산업개발은 앞서 보령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과정에서 연료운전 업무를 하는 32명과 정비업무를 하는 10명을 자체적으로 재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한전산업개발은 퇴사예정자를 폐쇄를 앞둔 1·2호기에 사전 재배치하는 방식을 썼다. 퇴사가 얼마 남지 않은 노동자를 폐쇄되는 곳에 배치해 ‘자연소멸’하도록 한 셈이다. 한전산업개발은 본사 차원에서 재교육도 하고 있지만 소멸이 확실한 연료운전은 배제하고 정비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나마 한전산업개발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전국 단위 사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산업개발은 태안화력을 비롯해 전국 13개 발전소에 사업소를 두고 있다. 적어도 재배치할 수 있는 곳이 12곳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연료운전 직무를 하고 있는 다른 협력사는 사정이 다르다. 금화PSC는 사업소가 태안 한 곳에만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연료운전 노동자는 85명이다. 이 밖에 △수산인더스트리 세 곳(192명) △OES 한 곳(2명) △일진파워 한 곳(65명)이다. 이곳의 ‘조씨들’은 재배치조차 기대할 수 없는 셈이다.

▲ 이재 기자
▲ 이재 기자

미세먼지 비난 위 덮친 기후위기
“위험성 알게 돼, 폐쇄 방침 동의”

그래서 이들에게는 기후위기가 현실이다. 조씨가 유령처럼 떠돌던 발전소 폐쇄 이야기를 정확하게 접한 건 2021년이다. 조씨는 “뉴스에서도 나오긴 했지만 멀게 느껴졌는데 노조를 통해서 폐쇄가 확정됐다고 처음 접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미세먼지나 기후위기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2015년께 정부는 기승을 부리는 미세먼지를 해결하겠다며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추진하고 석탄화력발전소 발전량을 줄였다. 각 발전소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저탄장을 옥내화하고 사용 후 석탄을 재(회)처리하는 시설도 보완했다. 야외에 석탄을 두면 대기오염 물질이 나오니 이를 차단하기 위해 옥내화한 조치인데, 잔뜩 쌓인 석탄 무더기에 벽을 세우고 천장을 두르니 옥내 저탄장은 매우 위험한 작업장이 돼 버렸다. 그래도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서라면 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이런 식으로 워낙 “두들겨 맞다 보니” 기후위기도 미세먼지의 또 다른 이름인가 보다 했단다. 그런데 아니었다.

조씨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발전소 주변에서 폐암·간암 같은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발전소 배출 물질이 나쁜 것이고, 기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실제 한 환경단체 조사에 따르면 충남 석탄화력발전소 네 곳의 반경 2킬로미터 이내 주민의 갑상샘암을 제외한 모든 암 발병률은 다른 충남도민보다 남성은 40.3%, 여성은 23.4% 높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이를 악물고 발전소 폐쇄를 이야기한다. “내심으론 석탄발전을 몇 년 더 했으면 좋겠지만 기후위기 상황에서 그렇게는 함부로 말할 수 없죠. 그래서 고용을 좀 유지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석탄화력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 같은 게 대기를 오염시키고 온도를 높여 북극 얼음이 녹고 한다는 거잖아요. 현업이 있으니까 세세하게 알 수는 없죠. 그렇지만 폐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신뢰해요. 폐쇄하면? 갈 곳도 없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나 고물상이나 해야죠. 저거(발전소) 폐쇄하면 철거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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