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전기 1기가와트시(GWh)를 생산할 때 석탄은 탄소를 평균 888톤 배출한다. 같은 화석연료인 석유(733톤)보다 많다. 태양광(85톤)·수력(26톤)·풍력(26톤)과는 비교가 어렵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발전소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탈원자력발전’ 또는 ‘탈탈원전’을 두고 논쟁이 거센 사이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를 위한 대책 논의는 매번 공론장에서 탈락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3년 뒤 폐쇄하는 태안석탄화력발전소를 찾아 직종별 비정규 노동자 5명을 인터뷰했다.<편집자>

김창용(60·사진)씨는 청소노동자다. 그를 비롯한 청소노동자 130명은 태안화력 행정동과 발전동 청소를 담당한다. 청소 복장은 다소 독특하다. 김씨는 “안전모를 쓰고 안전화를 신고 안전장구를 챙긴 채 청소를 한다”고 말했다. 안전모와 안전화를 챙긴다는 건 사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기계부속이 떨어지거나 하는 사고가 간간이 있다고 한다. 발전소 정비 때는 청소도 관리·감독 아래 진행한다. 이래저래 익숙한 형태의 청소업무는 아닌 셈이다.

일하는 방식은 같다. 오전 7시30분 조회를 하고 9시30분까지 2시간 동안 청소를 한다. 일반 사무실로 따지면 출근 전 청소인 셈인데 발전소는 24시간 교대근무가 이뤄지는 곳이라 큰 의미는 없다. 그래도 ‘9 to 6’로 일하는 전일제 노동자도 있어 이를 기준으로 청소업무가 짜인다. 9시30분부터 10시까지 쉬었다가 다시 10시부터 정오까지 2차 청소를 한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1시부터 3시30분까지 내리 청소한다.

그가 맡은 구역은 발전소 9·10호기 건물 1층과 안쪽 세탁소·샤워장이다. 그는 “현장에서는 소음도 크고 안전모나 귀마개 같은 것을 착용하고 일해야 하니 쉽지 않다”며 “그래서 발전 현장과 행정동 사무실을 1년 단위로 오가며 일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처음 발전소에 들어온 건 8년 전인 2015년께다. 생소했다고 한다. “일이 어렵지 않고 시간도 잘 가고 단순노동이니까 쉽게 할 수 있다고 해서 갔는데 듣도 보도 못한 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모자와 마스크에 장구까지 챙겨 일하니까 어려웠죠. 건물이 흔들리는 것 같아 그런 것이냐고 동료에게 물었더니 아니래요. 내가 흔들린 거였어요. 생소했으니까. 이 곳을 계속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지금까지 왔네요. 이젠 요령도 좀 생겼어요.”

그가 일한 8년간 청소용역업체는 세 번 바뀌었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으로 설립한 한국서부발전 자회사 코웨포서비스㈜ 소속이다. 청소는 물론 시설·경비 업무를 전담하는 자회사다. 많은 게 좋아졌다. 김씨는 “일단 월급이 많이 올랐고 복지도 괜찮아졌고, 일하는 환경도 개선이 많이 됐다”고 전했다.

가뭄에 말라가는 논밭 “기후위기 눈에 보여”

그가 태안화력에서 일하게 된 경로는 다소 이채롭다. 그는 원래 서울 태생이다. 남편이 필리핀에서 사업을 해 11년 정도를 필리핀에서 살았다. 그러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사업이 어려워져 2013년께 귀국했다. 돌아와 터를 잡은 곳이 서산군이다.

“시가가 서산이었어요. 서산에 내려와 보니 작물에 필요한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들어 물을 대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생각했죠. 저야 어느 정도 살았으니 상관없다고 해도 손녀딸이 살 때는 기후가 어떻게 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서산에서 전원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귀국 후 그는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일했다. 캐셔는 아니고 상품판매 노동자였다. 2년 정도 일했는데 제법 힘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농협에서 근무한다고 했지만 마트는 주말도 없고 밤 늦게 10시까지 일해야 해서 어려움이 많았다”며 “발전소는 청소업무라 심리적 저항감은 있었지만 빨간날 다 쉬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어서 매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발전소 청소일을 소개한 이는 같이 마트에서 일하다 먼저 발전소로 이직한 다른 노동자였다.

기후변화는 이제 기후위기가 돼 다시 그를 찾아왔다. 그는 발전소 폐쇄 소식을 접한 때를 정확히 기억하진 못했다. 2~3년 정도 됐다고 했다. “5년 지나면 폐쇄한다고 하더라고요.” 소식을 들은 그는 퍼뜩 ‘후임’ 걱정을 했다. “나는 이미 예순한 살이고, 5년 뒤면 정년퇴직을 할 테니 괜찮겠죠. 근데 사실 태안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발전소만한 직장이 없어요. 일이 쉬운 것도, 편한 것도 아니지만 정말 이 정도 직장은 태안에서 구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태안의 젊은이들이 걱정이에요. 10년 이상은 더 다녀야 할 텐데요.”

“정년 앞둬 난 괜찮아도, 젊은이들은 어쩌죠”

지역일자리는 말라 간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모를 태안화력 자회사에 사람들이 몰리는 까닭이다. 김씨는 “30대 후반부터 지원서를 넣는다”며 “발전소가 폐쇄하면 저 친구들은 어떻게 할까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태안화력 청소노동자 지원율은 거의 100 대 1에 가깝다.

지역에 터전을 둔 폐쇄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에게 재배치는 가혹하다. 지난달 사회공공연구원이 내놓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안정 방안연구에 따르면 그와 같은 발전소 자회사 노동자는 2천678명이다. 이 가운데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2022년 기준 1천263명이다. 2021년에는 1천278명이었지만 발전소 폐쇄가 이어지면서 131명이 재배치됐다. 정년퇴직 5명, 계약해지 4명이다. 6명은 발전소 폐쇄와 무관하게 발전소를 떠났다.

재배치 과정은 비극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울산석탄화력발전소 4·5·6호기 폐쇄 과정에서 청소업무를 담당한 자회사는 감축인원을 노조가 정하도록 했다. “네가 가라” “내가 왜 가느냐”는 다툼은 1년을 끌었다고 한다. 아비규환이었을까. 정년(65세)을 넘긴 촉탁직 노동자들이 재배치를 자청해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끝은 아니었다. 보고서는 “강제 퇴사자로도 필요한 만큼의 인력이 줄어들지 않자 회사는 ‘일자리 나누기’를 명분으로 노동자 임금을 삭감했다”고 적었다. 당연히 남은 노동자는 격무에 시달렸다. 김씨가 말했다. “내 생활 터전이 여긴데 나 혼자만 외지에 가서 일하는 게 말이 되나요?”

그와 같은 처지의 노동자라고 재취업에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대안이 없을 따름이다. 그는 “밭에서 김이나 매야겠죠”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일자리가 부족한 지역, 여성노동자, 고령의 나이, 특출하지 않은 전문성 같은 요소는 기후위기 산업전환 국면에서 여전히 청소노동자를 약자로 끌어내렸다.

그나마 대안으로 각광을 받는 게 요양보호사라고 한다. 김씨는 “노후 일감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도 있는데 회사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이 뚜렷한 게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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