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21일 민주노총과 강은미·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국회에서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기훈 기자>

2021년 기준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8천278명이다. 발전 5사 자회사 소속으로 일터가 화력발전소인 시설·청소·경비 노동자 1천278명을 포함한 숫자다. 경상정비 업무와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 등을 하는 기술직 화력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는 7천명 정도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 노동자 고 김용균씨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면서 7천여명의 발전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다. 경상정비 분야와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에 각각 노·사·전문가 협의체가 구성돼 정규직 전환 논의를 시작했다.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발전사의 업무 외주화 현황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전의 자회사인 발전 5사는 경상정비 업무와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수십개 민간업체와 한전 자회사인 한전KPS에 위탁한다. 한전KPS가 다시 업무의 일부를 재하청하고 민간업체들이 마찬가지로 업무를 2차 하청업체에 외주화하면서 ‘발전사→1차 협력사·한전KPS→2차 협력사’로 이어지는 업무 외주화 구조가 나타난다.

발전사의 주요 1차 협력사로는 한전산업개발·금화PSC·수산인더스트리·OES·일진파워·한국플랜트서비스·원프랜트·우진엔텍이 있다. 이들 협력사는 지역기업으로 대개 규모가 영세한 2차 하청업체에 다시 업무를 준다. 고 김용균씨의 경우 서부발전이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외주 준 1차 협력사인 한국발전기술 소속이었다.

한전산업개발 재공영화 4년째 공회전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노·사·전 협의체는 2020년 해당 분야에서 점유율이 가장 높은 한전산업개발을 다시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정규직화를 결정했다. 재공영화한 한전산업개발이 발전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취지다. 1992년 한전의 자회사로 설립된 한전산업개발은 2003년 민영화됐다.

그런데 한전산업개발 대주주 한국자유총연맹과 주식 매수자인 한전이 가격협상을 매듭짓지 못하면서 재공영화 논의는 4년째 공회전하고 있다. 2021년 자유총연맹과 한전은 주식양수도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여러차례 공문을 주고 받았다. 한전산업개발 지분은 자유총연맹이 31%로 최대주주고, 한전이 29%를 보유하고 있다. 한전은 단 2%만 사들이면 최대주주가 되지만 자유총연맹은 지분 전체를 넘기는 것이 유리하다. 지난해 12월 강석호 자유총연맹 총재가 취임하면서 주식 양도를 재검토하려는 분위기도 있다.

자유총연맹은 지난달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서에서 “최근 한전의 재정상태가 어려워져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며 “연맹에서는 기존의 협상 방식만을 고수하지 않고 다른 방안도 검토할 수 있도록 용역자문사를 통해 의뢰했다”고 답했다. 이어 “한전과의 협상이 어려워진다면 근로자들이 우려하는 작업장 내 근로환경 개선 강화와 고용안정을 위한 경영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재공영화가 이뤄진 이후에도 정규직화를 안심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용혜인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에서 한전산업개발이 재공영화되더라도 발전소 정규직화는 극히 일부로 제한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2차 하청 노동자나 기술직을 제외한 각 협력사의 소수 직군까지 모두 한전산업개발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다.

2차 하청 임금 발전회사 정규직의 30%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석탄화력발전산업 노동인권 실태조사’에는 “하청 및 자회사 노동자들은 더 열악하고 오염도가 높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지만 그에 대한 안전조치나 장비 지급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노동자들은 부실한 작업 장비를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거나 청소도구를 개인 비용으로 마련했다”고 명시돼 있다. 원·하청 간 임금 격차도 상당하다. 발전사 정규직은 1명당 평균 8천700만원의 연봉을 받았지만 경상정비 2차 협력사 노동자는 2천689만원 수준으로 발전사 정규직의 31% 수준에 머물렀다.

문재인 정부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으로 생겨난 발전 5사의 자회사 노동자들은 처우가 일부 개선됐다. 서부발전은 코웨포서비스, 중부발전은 중부발전서비스, 남부발전은 코스포서비스, 동서발전은 EWP서비스, 남동발전은 코엔서비스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청소·시설·경비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화력·LNG 등 여러 발전소에 파견돼 5개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지난해 기준 총 2천776명이다. 자회사 전환 뒤에는 복지 3종 세트(급식비·복지포인트·명절상여금)를 중심으로 점진적인 처우개선이 이뤄졌다. 급식비는 월 14만원, 복지포인트는 연 50만원, 명절상여금은 연 100만원이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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