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이 7일  오전 원청업체인 한국서부발전의 김병숙 전 사장의 무죄를 확정했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선고 직후 연 기자회견 자리에서 대법원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이 7일  오전 원청업체인 한국서부발전의 김병숙 전 사장의 무죄를 확정했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선고 직후 연 기자회견 자리에서 대법원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불복합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제 아들이 죽었습니다. 당신들 아들이 죽으면 법정에서 그렇게 결론 내릴 겁니까. 이런 식으로 재판할 것 같으면 당장 옷을 벗으십시오. 이게 합당한 판결입니까.”

상고 기각” 주문에 김미숙 이사장 ‘털썩’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7일 오전 아들의 사망과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게 무죄가 확정되자 텅 빈 대법관석을 향해 울부짖었다.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인 김용균씨가 2018년 12월10일 홀로 태안화력발전소 내 컨베이어벨트에서 낙탄을 제거하던 중 벨트에 끼어 세상을 떠난 지 5년 만이다. 긴 시간 법정 싸움을 이어 온 김 이사장은 대법원이 끝내 원청 대표의 책임을 외면했다고 흐느꼈다.

잔인한 하루였다. “2023도2580 검찰과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한다.” 이날 오전 10시34분께 대법관의 짧은 주문 낭독과 함께 방청석에서는 ‘아’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김 이사장은 그대로 몸이 굳었다. 김씨 5주기 추모기간 중이었다. ‘오늘도 안녕’이라고 적힌 점퍼를 입고 오전 10시께 대법원에 도착한 김 이사장은 선고를 앞두고 침묵했다. 함께 온 변호사들과 노동자들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김씨 사건은 형사판결 중 가장 마지막에 선고됐다. 김 이사장은 주심인 이동원 대법관이 정면으로 보이는 방청석 가장 앞자리에 앉아 대법관을 응시했다. 중간에 잠시 휴정하자 법정이 술렁이기도 했다. 이내 사건번호가 들리자 모두 숨을 죽였다. “기각.” 대법관의 한마디에 김 이사장은 흐느끼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법원 경위들도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 법정은 울음바다가 됐다.

판결문 겨우 ‘세 쪽’, 내용은 사실상 전무

이날 선고는 예상보다 빨랐다. 올해 2월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지 10개월 만의 결론이다. 통상 1년 넘게 심리하는 선례를 봤을 때 이례적이다. 1·2심 모두 원청 대표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무와 하청노동자와의 실질적인 고용관계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대법원 판결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특히 김씨 사고는 실질적인 경영책임자에게 사고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계기가 됐기에 사법부의 최종 판단에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대법원(주심 이동원 대법관)은 결국 원청인 서부발전 대표에게 ‘면죄부’를 줬다. 대법원 판단은 사실상 없었다. 판결문은 세 쪽에 불과했다. 대법원은 검사의 상고 이유에 대해 2심 판결 내용을 나열하며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의 사업주·고의·안전조치의무 위반·인과관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피고인들의 상고이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김병숙 전 대표와 서부발전 법인은 무죄가 확정됐다. 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받은 권유환 전 태안발전본부장도 혐의를 벗었다. 나머지 서부발전 관계자 6명만 금고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백남호 전 대표도 2심에서 감형된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최종 형량으로 결정됐다. 하청 관계자 5명은 벌금형이나 금고형의 집행유예가, 한국발전기술 법인은 벌금 1천200만원이 확정됐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원·하청 고용관계, 구체적 의무 모두 부정

‘부실한’ 판결 내용은 대법원이 이번주 초 홈페이지에 ‘사건 쟁점’을 구체적으로 게시한 것과 상반된다. 대법원은 △원청 대표와 본부장의 구체적·직접적인 주의의무 인정 여부 △원청과 피해자 사이에 실질적 고용관계 인정 여부 △원청의 안전조치의무 인정 여부 등을 쟁점으로 올렸다. 모두 원심이 부정했던 핵심 쟁점이다.

그러나 상고 기각에 따라 원청 대표에 대한 책임은 지워졌다. 2심이 판단한 대로 원청과 하청노동자의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인정되지 않았고, 원청 대표의 ‘구체적·직접적인’ 안전조치의무 역시 모두 부정됐다. 원청의 구체적인 지시·감독을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인 고용관계는 형성되지 않았다는 상반된 해석을 대법원이 그대로 따랐다.

2심은 김 전 대표가 보고받은 하청의 안전사고도 ‘일반적인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구체적인 컨베이어벨트 설비의 형태나 작업방식이 (과거 안전사고를 보고받은 것과) 다른 컨베이어벨트까지 김 전 대표가 사고예방에 대해 인식할 수 없다는 논리다. 결과적으로 검찰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 위반으로 기소한 5가지 내용 중 2가지(물림점 방호조치의무·2인1조 근무조치의무 위반)만 인정됐다. 재판부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태만한 결과가 경합·중첩돼 일어난 사고이므로, 책임자 개개인의 과실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원청 지시에도 책임 무시” 법조계·노동계 규탄

법조계는 대법원 판결을 규탄했다. 유족을 지원한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검찰이 열심히 수사해 충분한 증거와 법리가 갖춰진 사건이었다. 단순히 옛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돼 한계가 있는 게 아니다”며 “그럼에도 법원은 위탁계약이라는 형식에 갇혀 눈을 감았다. 김용균 죽음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 확인했고, 오늘 판결은 법원의 실패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용균 특조위 간사를 맡았던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법원이 산재 사망사고에 대해 깃털과 같은 판결을 해 왔기 때문에 일터가 전혀 위험에서 벗어나 있지 않음을 대법원 판결이 그대로 드러냈다”며 “법원의 잘못된 관행이 매우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민변 노동위원회는 논평을 내고 “구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 대법원은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개별 작업을 구체적으로 지시·감독했다는 사정이 있으면 사고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봐 왔다”며 “그런데 대법원은 왜 원청이 위험한 작업에 관한 지시를 내리고 보고받았음에도 책임이 없다고 봤나. 젊은 노동자의 죽음에 무성의하다는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다.

노동계의 비판도 이어졌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김씨 사망은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가 낳은 결과”라며 “원청의 고용관계를 형식적이고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한 판결로,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전후에 따라 유·무죄를 가른 기계적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자식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지난 5년간 소송을 이어간 유족의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저버렸고, 제2·제3의 김용균이 없기를 갈망한 노동자의 염원을 끝내 외면했다”고 꼬집었다.

▲ 정기훈 기자

오열한 어머니 “용균아, 미안하다”

김미숙 이사장은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 이사장은 “김병숙 전 서부발전 대표가 현장을 몰랐다면 그만큼 안전에 관심이 없었다는 증거가 아니냐”며 “그런데도 무죄라고 한다면 앞으로 다른 사업주들은 아무리 많은 사람을 안전보장 없이 죽여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시선은 끝까지 대법원을 향했다. 김미숙 이사장은 상고 이후 매일 1인 시위를 이어 갔고, 선고 사흘 전에는 노동자 60명이 쓴 편지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대법원 본관에 적힌 ‘자유·평등·정의’ 문구가 김 이사장 눈망울에 맺혔다. 이내 울음을 삼키고 소리쳤다. “용균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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