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전기 1기가와트시(GWh)를 생산할 때 석탄은 탄소를 평균 888톤 배출한다. 같은 화석연료인 석유(733톤)보다 많다. 태양광(85톤)·수력(26톤)·풍력(26톤)과는 비교가 어렵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발전소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탈원자력발전’ 또는 ‘탈탈원전’을 두고 논쟁이 거센 사이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를 위한 대책 논의는 매번 공론장에서 탈락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3년 뒤 폐쇄하는 태안석탄화력발전소를 찾아 직종별 비정규 노동자 5명을 인터뷰했다.<편집자>

김영훈(30·사진)씨. 그는 2016년부터 태안화력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한다. 2차 하청업체가 교체되더라도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대개 고용이 승계된다. 관행이다. 지금 일하는 곳은 아전이엔씨㈜다. 원청은 한전KPS다. 한전KPS는 그가 속한 아전이엔씨와 신한전설㈜을 하청업체로 두고 있다. 아전이엔씨는 전기를, 신한전설은 기계를 정비한다.

김씨는 태안화력 시설물 중에서도 9·10호기 터빈 전기시설을 정비한다. 발전소는 하도급이 일반화돼 있어 1차 하청과 2차 하청이 섞여 있지만 사실 이들이 하는 일은 크게 구분하기 어렵다.

벌써 7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발전소 일은 김영훈씨가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원래 문화콘텐츠 관련한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눈을 다치면서 어려움이 찾아왔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집에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아 얼른 독립해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장 취업해서 돈을 벌 곳이 어딜까 궁리해 보니 발전소가 있었다. “발전소는 안정적이라며 지인들이 추천했어요. 입사하면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을 줄 알았죠.”

입사하겠다고 한번 마음을 먹으니 군대에 가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군대도 발전소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병과를 찾았다. 그게 전기공사병이다. 그는 “발전소 입사 전에 기초적인 것들을 미리 공부하고 싶어서 전기공사병으로 입대했다”며 “공구를 다루는 법, 전기 차단기 같은 것의 메커니즘을 공부하고 또 직접 군대에서 실습도 하면서 전역 후에는 발전소에 입사했다”고 말했다.

“2차 하청 처우, 처음엔 편의점 알바 수준”

그렇지만 그의 노력은 배반당했다. 어려운 형편에 안정적인 삶을 꿈꾸며 군대도 발전소 업무에 맞는 ‘선행학습’을 했지만 여력이 없어 택한 협력업체행은 그에게 좌절감을 안겨 줬다. “빨리 취업해야 해서 협력업체로 입사했는데 막상 취업해 보니 전에 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다르지 않았어요. 이게 뭔가 싶었죠. 잘못 왔나 보다 생각했어요.”

발전산업은 오랜 동안 쪼개기 계약을 해 왔다. 2년간 한 업체에서 일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1년 단기계약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김씨는 “저보다 10년, 15년 더 일한 형들은 더 열악한 환경이었다”며 “당시에는 노조도 없어서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노조가 생기고, 처우가 조금씩 나아졌다. 그런데 2020년께 발전소가 문을 닫는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안정적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상은 협력업체였고, 그래도 직장은 계속 다닐 수 있겠지 했는데 폐쇄 이야기가 들렸어요. 불안했죠.”

그는 어떤 일을 하며 먹고살지 걱정이다. 그래도 이제 30대 초입이라 재취업 준비에 여유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년이 가까운 형들과 비교하면 재취업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는 있겠죠. 그렇지만 간과하는 게 있어요. 젊은 노동자라고 해서 결코 발전소 경력이 짧지 않다는 점이에요. 10년 가까이 혹은 10년 넘게 일한 경력을 다 버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쉬운가요?”

“경력 버리고 취업이나 하라는 정부”

현실적인 제약도 크다. 발전소가 있는 태안을 버리고 일자리가 많은 대도시로 이주할 수나 있을까. 생활비나 전셋값을 감안하면 그는 당장 살 곳을 구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될 게 뻔하다. 정부가 지원 대책이라도 내놓지 않는 한 대도시에서 생활하기란 불가능하다.

“정부가 말하는 건 경력을 미련 없이 버리고 취업하라는 거예요. 발전소 사람들은 전기나 기계쪽에서 이미 고급 엔지니어인데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재취업과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은 하고 있을까요?”

그가 막연히 떠올리는 것은 영상편집이나 코딩 같은 정보기술(IT) 분야다. 김씨는 “실제 해고 같은 일이 벌어지면 발전소 관련 민간기업에 취업하고 부업으로 유튜브 영상편집 같은 일을 병행하지 않을까요?” 하고 반문했다. 표정은 어두웠다.

발전소에서 미래를 찾지 못한 동료들은 이미 회사를 떠났다. 김씨는 “나이 한 살 차이 나는 92년생 형들은 비전이 없다며 태안화력을 떠나 민자발전소에 취업했다”며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비전이 있다고 보고 그쪽으로 입사했다”고 귀띔했다. 일한 경력과 스펙을 모두 팽개치긴 아까워 택한 일이라고 한다.

노동자들은 새로 자격증을 따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발전설비 관련 자격증이다. 태양광과 풍력이 인기가 있다. 수력과 연료전지 같은 자격증도 있다. 자격별로 기사·산업기사·기능사로 구분하는 국가공인자격이다. 그러나 대규모 인력을 고용해 정비를 하는 석탄화력발전소와 달리 태양광발전은 정비에 쏟는 인력과 예산이 적다. 중국산 태양광발전 설비를 국내에 수입해 조립·판매하는 민간업자가 태양광 설치 후 정비도 같이 하는 방식이라 대규모 인력채용을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일자리를 믿고 이주까지 결정하라는 것은 무리다.

“화학물질 청소할 때마다 슬러지 나온다”

발전소는 문을 닫고, 갈 곳은 없는 김씨 같은 2차 하청 노동자에게 기후위기는 가혹하다. 그럼에도 그들 역시 폐쇄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들 스스로 발전소가 얼마나 많은 위험물질을 내뿜고 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김씨는 “2016년부터 일하면서 안에서 지켜본 발전소는 결코 깨끗하지 않다”며 “먼지를 청소하고 화학물질을 청소할 때마다 대량의 슬러지(sludge)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리 청정시스템을 도입해 희석해도 굴뚝으로 내뿜는 연기가 완벽히 환경에 무해하다고 말할 수 없다”며 “이런 것을 눈으로 보고 있는 노동자가 탄소배출 문제에 눈감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바라는 것은 한 가지다. 참여다. 3년 앞으로 다가온 태안화력 폐쇄에 공감하고 있으니 그 안의 노동자도 생각해 달라는 얘기다. 그는 “발전소에서 나쁜 먼지, 유해한 탄소와 함께 호흡하는 노동자로서 우리도 빨리 발전소를 벗어나고 싶다”며 “이런 노동자도 고려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