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의 정규직화 약속을 6년 넘게 기다려 온 삼척그린파워(삼척화력발전소)의 발전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놓였다. 한국남부발전이 지난달 기습적으로 연료·환경설비 운전분야 용역업체를 경쟁입찰로 모집하겠다는 공고를 띄웠기 때문이다. 2018년 고 김용균씨 사망 이후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대책이 추진됐지만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위험의 외주화가 또다시 반복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연말 업무 마지막 날 기습 입찰한 남부발전

2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9일 한국남부발전은 삼척화력발전소의 연료·환경설비 운전분야(160명) 하청업체를 경쟁입찰한다는 공고를 발표했다.

입찰 분야는 석탄취급설비(106명)와 (석탄)회처리설비(54명)로 이들 모두 2019년 정부가 발표한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에서는 정규직화 대상이다. 발전소 공정은 연료·환경설비 운전과 경상정비 업무로 나뉜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나 홀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씨는 연료·환경설비 운전분야 하청노동자였다. 고인의 사인으로 ‘위험의 외주화’가 꼽히자 정부는 경상정비 분야의 하청노동자들에겐 계약 연장을 보장했고 연료·환경설비 운전분야 노동자들은 노·사·전문가 협의체에 따라 하나의 공공기관으로 정규직 전환하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협의체는 한전의 자회사로 세워졌다가 한국자유총연맹에 매각돼 민영화된 한전산업개발을 다시 공기업으로 만들어 연료·환경설비 운전분야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도록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한전산업개발 대주주인 한국자유총연맹과 지분을 사들여야 하는 한전이 주식양수도협력 업무협약(MOU)을 2021년 12월 체결하고도 3년 넘게 지분인수 논의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분인수 논의가 현재까지 지지부진하면서 한전산업개발의 재공영화와 연료·환경설비 운전분야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도 지연되는 상태다.

고용승계 사실상 불가능 … 정규직화 기다리다 일자리 잃을 판

6년 동안 정규직화를 기다려온 노동자들에게 입찰공고는 날벼락이다. 이번 입찰은 공개경쟁입찰로 인건비를 최저가에 맞춘 업체에게 용역이 낙찰된다. 기존 업체들의 입찰은 불투명하다. 남부발전은 입찰공고에 “근로자의 고용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안내 문구를 넣었지만 의무조항이 아니다. 신규 용역업체는 인건비를 최저로 맞춰 이윤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경력직인 기존 인원의 고용승계를 반길 리 없다. 160명의 하청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남부발전이 경쟁입찰을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해 7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발전사에 “경쟁입찰 계획이 있는지” 물었을 때 발전사가 답변한 내용 때문이다. 남동발전의 경우 “정규직 전환 대상사업소에 대한 경쟁입찰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반면 남부발전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서 “운전분야 정규직화 관련해 한전-자유총연맹 협상이 한전 주관으로 진행 중”이라고 얼버무렸다. 남부발전이 경쟁입찰을 염두에 둔 상태였다면 노·사·전문가 협의체 등을 통해 노조쪽에 이를 알리고 논의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남부발전은 새해를 앞두고 기습 입찰공고를 택했다.

남부발전 “기존 업체가 계약 연장 거부”

남부발전 발전처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석탄취급설비 업무를 맡은 삼성중공업에서 계약이 만료된 2021년부터 계약종료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신규 입찰공고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이번에 입찰공고로 나온 석탄취급설비 업무를 담당하던 곳은 남부발전과 직접 계약을 맺은 1차 하청업체인 삼성중공업이다. 삼성중공업은 해당 업무에서 손을 떼고 싶어 했지만 남부발전측 요구로 현재까지 계약을 연장했다는 것이 관계자 설명이다. 바꿔말하면 이와 관련해 대책을 마련할 시간이 2년 가까이 있었다는 의미다.

노조는 삼성중공업이 계약을 거부했다면 석탄취급설비 분야만 신규입찰 공고를 내면 되는데 회처리설비까지 공고를 함께 낸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회처리설비는 또 다른 1차 하청업체인 일진파워의 물량인데 계약연장 의사가 있던 업무까지 입찰에 내몰렸다는 것이다.

조진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은 “남부발전은 수의계약을 할 경우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지만 노·사·전문가 협의체 권고에 따라 고용안정을 위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며 “다른 발전사들도 수의계약을 했지만 문제된 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2019년 발표된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은 당정이 함께했고 2021년 이행점검회의는 모두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정부 관계부처가 참여했다. 모두가 정부가 한 ‘약속’이었다.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노조대표자회의 간사는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않는데 앞으로 정부 대책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노동자의 고용 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만큼 정부가 빠르게 결론을 내 정규직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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