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은, 또 연기는 하늘로 솟았다. 곧, 아스라이 사라졌다. 한때 굳세어 하늘 향해 뻗던 나무는 재가 되어 풀풀 날렸다. 탄내 진동했다. 그 뒤로 평택 아니 울산, 또 어디라도 다를 바 없는 철탑이 우뚝. 2012년 노동의 증표가 섰다. 불같이 살던 이가 하늘로 올랐다. 가난한 사람들의 정당을 꿈꿨던 사회주의자는 이제 장작처럼 말라 벽제화장터 불길을 향했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용산참사 유족, 탈핵 활동가들이 사이도 좋아 이웃사촌. 여기는 대한문 앞 농성촌. 눈 내리는 밤은 언제나 참기 힘든 추위에 떨지만, 어깨 맞대 오손도손. 폭설에는 내 손이 네 손. 제집 앞 쌓인 눈 아니라도 누구랄 것 없어 힘 모은다. 합판에 각목으로 어느새 뚝딱, 눈삽 들고 눈 모은다. 눈치껏 힘 보태
밀고 보니 머리통이 닮았다고, 그건 하나같이 반골의 모양새라며 누군가 농담했다. 허허, 평화로이 웃음 짓던 사람은 문정현 신부였다. 울먹이던 사람들 가만 안아 위로하던 사람은 문규현 신부였다. 제주 강정 앞바다 된바람 맞아 버티던 사람들, 29일 서울 여의도 칼바람 길 한가운데 섰다. 잘라낼 머리칼도 많지 않아 금방이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부지
여긴 대한문 허름한 비닐집도 아니고 평택, 울산 어디 철탑 위 까치집도 아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474호,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실에 농성장이 들어섰다. 공식 명칭은 '함께 살자! 농성촌 국회 출장소'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용산참사 유가족,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이 모여 27일 오전 개소식을 했다. 신경민 민주통합당 의원은
다 떨구고 이제 겨울인데 어디 보자 하나 둘 셋. 다 떠나간 공장 인근 저기 봐라 하나 둘 셋. 비바람 세찬 어느 밤이면, 눈보라 거센 어느 날이면 후두두 떨어질 것을 알지만 그래도 보라 저기 하나 둘 셋. 아직은 하나 둘 셋. 앙상한 철골조 위에 매달려 흔들리는구나, 버티는구나. 오, 형님은 마지막 잎새 하나 둘 셋, 몸소 철탑에 그렸구나.
저기 철탑은 최병승 천의봉이 오른 송전탑이 아니다. 공장 담벼락 안에 서 있으며 사다리 잘려 나간 지가 오래, 철조망도 모자라 감시카메라 눈초리까지 매서워 해고자, 비정규 노동자 몇몇이 오르지 못할 철탑이다. 까치집 땅으로부터 아득한 농성 철탑 아니지만 수만 볼트 전깃줄 지고 서 있기는 다름없어 철탑은 매한가지다. 같은 일을 한다. 이 겨울, 사람들은 울산
떨어져 나뭇잎 말라가는, 가을은 무릇 독서의 계절. 발걸음 분주히 사람들 흘러가고 빌딩 숲 헤친 바람 낙엽 쓸어 날리는데, 거기 대한문 앞자리 돌부처 닮아 사람들 밥을 굶는다. 바스락 마른 잎 부서지고, 부스럭 책장이 넘어간다. 부산스레 들락거리던 왕궁 문지기들이 떠나고 '니 하오', '아리가또', '원더풀', 저마다 북적이던 인파도 물러가면 그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이 쌍용차 문제 국정조사 등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1일로 23일째다. 일일 동조 단식도 이어지고 있다. 초겨울 날씨를 보인 1일 대한문 앞 농성장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저기 12만 볼트 송전탑에 까치집. 씻지를 못해 머리에도 까치집. 회유와 협박에는 황소고집,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최병승씨와 천의봉씨가 철탑에 올라 꿈쩍 않는다. 그 아래 천막집이 줄지었다. 집회가 잇따랐다. 지난 26일 서울·부산·전주·아산 또 어디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 목 꺾어 바라봤고, 목청껏 외쳤다. "
가을바람에 낙엽 떨구듯 거기 농성장 나무처럼 한 자리 오래 버틴 사람들 고개를 떨궜다. 우수수, 낙엽처럼 눈물도 떨궜다. 어느덧 찬 바람에 파르르 떨었다. 스물둘 다음은 스물셋이라고, 어려울 것도 없는 수를 세다 사람들 치를 떨었다. 새로울 것도 없어 숫자만 다른 까만색 근조 현수막을 매달았고 추모 리본을 가슴팍에 달았으며 향을 피웠고 명복을 빌었다. 주섬
세계적인 석학 에릭 홉스봄이 세상을 떠났고 세계를 무대로 싸이가 떴다. 말춤에 세상이 떠들썩했으며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가 그래도 추석이라고 떠들석 북적였다. 그리고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도장리 어디 앞마당이 또한 시끌벅적 난리였다. 지치지 않는 꼬마 녀석들 씻지도 않은 채 종일 울고불고 뛰고 쫓고 맞고 터지다 보면 아침 해가 어느덧 서산에 붉었다. 세상
계산기 두드리면 답이 나온다. 사칙연산 제아무리 복잡해도 척척, 계산기는 틀림없다. 거짓말 않는다. 거짓말은 사람이 한다. 회사는 어려웠고, 정리해고는 필연이었다고 청문회 증인들은 말했다. 계산기 탁탁 두드리니 답이 딱. 사람들은 잘렸고 거짓말처럼 죽어갔다. 죽자고 덤빈 사람들이 아직 살아 거리를 떠돈 지가 3년이다. 응급환자 수송을 위한 헬기를 도입하려
내가 언제 힘써 뛰어오르긴 했더냐 하는 표정으로 무심히 날아올라 거기 멈춘 선글라스 아저씨. 포즈라고는 손가락 두 개 '브이'밖엔 모르는 등산바지 중년. 하나 둘만 알고 셋은 미처 몰라 타이밍 놓친 저기 끝에 두 남자 사람. 애초 뛸 생각도 없어 왼쪽 끝자리 어정쩡, 대충 폼만 잡은 자. 무릎 접고 빵야 빵야, 점프란 이런 것이다 보여 준 학습지 선생님
화이트 밸런스, 색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이다. 흰색을 기준 삼는다. 갖가지 색은 그 기준에 맞춰 비로소 제 성질을 찾는다. 그제서야 어울려 조화롭다. 틀어지면 볼썽사납다. 디지털 시대, 영상 제작의 숙명이다. 시청자와 독자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이다. 저기 흰 옷 입은 강기갑 대표 곡기 끊고 앉아 제 탓을 오래 했다. 물과 소금도 내치면서 '백의종군
사정없는 된바람은 지붕을 날리고 아름드리나무를 꺾었으며 기어이 사람 목숨을 끊고 말았다. 성난 자연 앞에 무력한 사람들, 신문지 창에 발라 가며 숨죽였다. 몸 사렸다. 같은 처지 누구에게나 안부를 물었고 손 맞잡아 바람을 견뎠다. 사정없는 직장폐쇄, 그리고 이어진 용역경비 폭력 앞에 깨지고 부러지고 쫓겼지만 사람들 거기 맞섰다. 멀리서 찾아 어깨 비볐다.
된더위가 길었고 빗줄기가 주룩 죽 또 길었다. 젖은 폐지는 무거웠고 유모차 밀던 할매 한 발짝이 따라 무거웠다. 어느 골목 미끄런 비탈을 오르다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할매, 삼선 슬리퍼 바닥이 닳도록 바삐 헤맸다. 부지런 떨지 않고는 허탕이다. 찌글찌글 고철이며 소주 맥주병 찾아 영등포 시장 골목을 돌았다. 돌고 돌아 유행 탄 꽃무늬 몸뻬에 조끼 걸치
천막은 찢기고 부러져 흉물스레 저기 남았다. 새터 찾아 떠돈 이들이 또한 밤새 버텨 저기 남았다. 잊힐까 두려운 이들의 숙명, 밀고 당기는 난리 통이 저들의 머물 곳이다. 대한문 앞, 오랜 풍경처럼 익숙해진 자리 떠나 여의도를 찾았다. 영정과 촛불, 향로 따위 많지도 않은 살림을 듬성 꾸렸다. 천막을 뚝딱 지었다. 그러자 난리 통, 지난밤 물고 뜯긴 상처가
너무 늦어 미안하다고, 거기 대한문 스물둘의 영정 앞에 가만 앉아 한상균 전 지부장이 말했다. 막걸리가 좋겠다며 한 컵 가득 따라 상에 올렸다. 향을 피웠고 두 번 절했다. 3년 만이다. 아니, 영정 앞엔 처음이다. 두툼하던 방명록을 뒤적뒤적, 9일 향내 짙은 천막 앞을 서성이던 한 전 지부장은 내내 말수 적었다. 길게 자란 수염을 가끔 만졌다. 입술 자주
검은 옷 입고 저들은 그 새벽, 충성스런 사냥개처럼 짖고, 물고, 뜯었다. 모란시장 팔려가던 개처럼 차에 실려 향한 곳은 안산, 평택, 또 어디 땀냄새며 분진 가득한 공장. 일당 몇 만원 벌기란 쉽지 않아 저들은 그곳 노동자 여럿을 곤봉으로 내리쳤으며 날카로운 자동차 부품을 던져 기어이 피를 봐야만 했다. 평균 연령 44살, 오랜 일터에서 죽지 않으려 노동
수십 아니 수백 번, 기자회견이 직업인 사람들. 혹시 몰라줄까, 작은 손팻말 잘 보이도록 들고 섰으니 그건 직업병이다. 짧은 머리 어찌 저리도 닮았나. 반백의 머리칼, 그래도 숱 걱정은 없던지 날리던 비를 그냥 맞고 섰다. 택시 몰던 아버지는 딸을 먼저 보냈고, 자동차 만들던 노동자는 동료를 잃었다. 탈상은 아직 멀었던지 길바닥 어딘가 헤매기를 수년째, 황